“우리 아버지가 30년 문어잡이만 한 어부예요"…커피점 아가씨의 얼굴에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여수 앞바다에 떠 있는 금오도를 가기 위해 선착장에서 기다릴 때였다. 선착장 근처의 단층 벽돌집 앞에 데크와 햇빛을 가리는 비닐투명 천막이 쳐져 있었다. 커피와 생과일 쥬스 그리고 문어 빵을 파는 커피점이었다. 문득 마음이 내키면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늙은 아내와 달랑 짐 하나만 들고 길을 나서곤 한다. 이미 60을 훌쩍 넘은 아내와 나는 몇 년 후면 이런 여행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집을 나서곤 한다.

커피점에서 나는 녹차라떼 아내는 과일 쥬스를 시키고 데크 위에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커피점 앞에는 활짝 웃는 한 남자의 얼굴이 담겨있는 광고깃발이 서 있었다. 30년 문어 잡이 외길인생만 걸었다는 어부의 얼굴이었다. 남도의 바닷가에서 다른 걸 쳐다보지도 않고 문어만 잡아온 인생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한눈팔지 않고 평생 자기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거 한번 들어 보세요 제가 만든 문어 빵이예요.”

커피점 아가씨가 꽃같이 활짝 핀 얼굴로 작은 문어빵 세 개를 탁자 위에 가져다 놓았다. 그 미소가 건강해 보였다. 옛날 내가 먹던 붕어빵과 비슷한 작은 물고기 모양이었다. 붕어빵 하나를 들고 반으로 쪼개어 입 속에 넣었다. 달콤한 맛과 함께 쫄깃쫄깃한 문어의 고소한 향기가 입안에 가득 퍼졌다. 일본의 길거리에서 파는 ‘타코야키’보다 입에 더 맛는 것 같았다. 타코야키는 그 속에 작은 문어 한 조각이었다. 그에 비해 문어빵은 문어가 훨씬 많이 들어 있었다. 내가 먹는 걸 보면서 커피점 아가씨가 상냥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가 30년 문어잡이만 한 어부예요. 매일 새벽에 바다에 나가 문어를 잡는 통들을 바다 속에 늘어놓고 다음날 새벽 동틀 무렵에 바다에 나가 그 그물을 걷어 들여오세요. 하루사이에 문어들이 그 통을 자기 집으로 삼으려고 들어와 앉는 거죠. 저는 우리 집 앞에서 아버지가 잡아온 문어로 이렇게 문어 빵을 만들어 팔아요.”

커피점 아가씨의 얼굴에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커피점 주위를 돌아보았다. 문어잡이 어부의 집과 담 없는 마당에 지어진 작은 창고가 보였다. 바닷가 작은 집에서 어부의 가족은 자기의 일에 만족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 보인다.

30년 문어잡이 어부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면서 똑같이 30년 변호사를 한 나를 돌이켜 본다. 그가 새벽이면 바다에 나가 문어를 잡듯이 나는 매일 글을 쓰고 법정에 나가 변론을 했다.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자유의 땅으로 옮겨주는 뱃사공같이 됐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대학시절 보았던 ‘빠삐용’이라는 영화에서 절해고도에 갇혀버린 주인공의 육지를 향한 선망의 표정이 가슴 깊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딸은 아빠의 변호사 생활을 어떻게 평가할까. 아빠가 삶 속에서 잡은 정신적 고기들로 빵 같은 글을 한 편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인 딸이 아버지를 가장 잘 알지도 모른다.

선착장에 배가 도착했다. 주변에서 갈매기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맴돌고 있다. 나는 매점에서 산 새우깡 봉지를 뜯어 새우깡을 손에 들고 갈매기들에게 보인다. 바람을 타고 가까이 온 갈매기와 눈과 눈이 마주친다. 먹이를 손에 든 나와 마음이 교류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금오도의 비렁길 근처 펜션의 방에 누워 바다를 본다. 다도해의 아름다운 회청색 바다와 점점이 들어찬 섬이 시야에 아름답게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