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보훈의 문제에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그 경박함이야말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제일 먼저 척결해야 할 구태(舊態)입니다. 역사와 보훈의 문제를 처리하는 데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편향을 모두 경계해야 합니다.
김원웅씨는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 출신이죠. 광주학살의 원흉들에게 부역한 전력이 있는 분이 어떻게 '광복회장'을 할 수가 있나요? 이러니 대한민국 역사가 왜곡이 되는 겁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친일파들은 물론이고 군부독재, 학살정권의 부역자들도 철저히 청산해야 합니다. 부역자들이 출세하도록 방치하는 한, 대한민국은 기회주의자들이 판치는 나라가 될 겁니다.
이승만이 국부라고 광복절에 건국절 데모를 하는 국가주의 변태들과, 5.18 광주에서도 불렀던 애국가까지 청산하자고 주장하는 민족주의 변태들의 싸움. 둘 다 청산 대상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견을 가진 이를 종북좌빨로 몰아 토벌전을 벌이는 극우 반공주의 변태들과, 이견을 가진 이를 토착왜구로 몰아 청산전을 벌이는 극우 민족주의 변태들. 둘 다 이 나라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역사와 보훈의 문제를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이 논의는 역사학계에 맡겨야 합니다. 백선엽처럼 친일을 했으나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 김원봉처럼 독립운동을 했으나 북한정권의 출범에 도움을 준 이들처럼,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명과 암의 이중규정을 받는 이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애매한 경우에 '보훈'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는 학계와 시민사회의 논의에 맡기고, 거기서 도출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처리하는 게 옳습니다. 법을 만들더라도 그 합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힘으로, 즉 의회 다수의 힘으로 해결할 경우 정권 바뀔 때마다 파묘를 했다가 안장을 했다가 다시 파묘를 했다가 안장을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질 겁니다.
김원웅씨가 좋은 문제제기를 했어요. 민주당에서는 두 가지를 대답해야 합니다. (1) 우리 민족이 한국전쟁 때, 70년대 민주화 운동 때, 광주 5·18 항쟁 때도 불렀던 애국가를 공식적으로 폐기할 의사가 있는지. (2) 박정희도 만주군관학교 들어가려고 혈서까지 쓴 악질 친일파인데, 앞으로 국립묘지에서 박정희도 파묘할 것인지, 이 두 가지 물음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답하기를 바랍니다.
김원웅씨의 도발적 발언은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지지율이 떨어지니 다시 '토착왜구' 프레이밍을 깔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역사와 보훈의 문제에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그 경박함이야말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제일 먼저 척결해야 할 구태입니다. 그런 식의 접근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동체를 통합시키는 게 아니라, 쓸 데 없는 이념논쟁으로 몰아가 공동체를 분열시킬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