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의 평등과 권력 앞의 평등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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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의 평등과 권력 앞의 평등
 
   평등만큼 지난 10년 이상 한국에서 인기를 끈 추상명사도 드물 것이다. 이 단어만큼 쓰는 사람에 따라 그 정의가 제 각각인 것도 드물다. 평등은 우익이 쓸 때와 좌익이 쓸 때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흔히 우익은 기회의 평등을, 좌익은 결과의 평등을 각각 당연시한다고 일컬어지지만, 이것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회의 평등은 사람은 타고난 능력이 다른 만큼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그 능력에 상응하는 기회를 주어야 하고 공정한 경쟁의 룰에 따른 개인의 노력을 인정하여 그 노력의 결과는 최대한 개인이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신 세금은 누진세를 적용하여 고소득자가 많이 내는 것에 동의한다. 그것으로 주로 저소득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복지에 쓰라고 한다.
  
   결과의 평등은 사람은 누구나 인격 내지 인간 존엄성의 측면에서 똑같이 소중한 존재이므로 능력과 무관하게, 또한 성취와 무관하게 똑같은 기회를 줘야 할 뿐만 아니라, 분배도 소유주나 임원, 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거의 동일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자본이나 설비, 기술혁신, 경영 등 소유주나 경영층이 기여한 부분보다 노동자들의 기여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동잉여가치설이다.
  
   이런 결과의 평등 이론에 따라 교육에서는 평준화 정책이 금과옥조다. 누구나 수업일수만 채우면 성적에 무관하게 중학교 고등학교 나아가 대학교에도 나란히 나란히 입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교조는 마침내 대학도 평준화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주식회사에서는 대표 소유주의 특권을 인정할 수 없다. 주식만큼 책임지고 주식만큼 의결권을 갖는다는 주식회사 본래의 의미가 급격히 퇴조하고 있다. 경영의 투명성, 지배구조의 개선, 출자총액 제한, 소액주주의 위상 제고, 노조의 경영 참여, 노동자의 직업 안정성 보장(사실상의 해고 금지), 국내 시장 보호 등이 결과의 평등에 입각한 것이다.
  
   좌익의 눈에 신자유주의는 결과의 평등을 압살하는 악의 원천이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에 필수적인 치열한 경쟁은 극도로 혐오하거나 두려워하지만, 노조원끼리의 협동과 단결은 대단히 중시한다. 그런데 협동과 단결은 생산성 향상과 노사간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보다 주로 노조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떼쓰기와 협박, 태업과 파업과 시위, 그리고 좌파이념을 전파하거나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치참여의 형태로 나타난다.
  
   기회의 평등을 원칙으로 하되 조세정책으로 결과의 평등을 상당 부분 인정하는 제도가 자유민주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하는 자본주의다.
   결과의 평등을 극단적으로 이념화하고 현실세계에 적용한 제도가 공산주의다. 공산주의에서는 기회의 평등도 극단적이다. 개인의 선호도에 관계없이 우르르 몰려서 공부하고 우르르 몰려서 일하고 우르르 몰려서 시위하고 우르르 몰려서 집단체조한다. 직장도 똑같은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당에서 누구든 제비뽑기로 아무 데나 보내는 대로 가야 한다.
  
   신병 훈련을 마친 군인을 한 줄로 세워 필요한 만큼 뚝뚝 잘라 이리저리 전후방의 각 부대로 보내는 것과 흡사하다. 복불복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힘없는 서민이나 운명의 여신이 이끄는 대로 가지, 힘센 자들은 노른자위를 골라서 간다. 서민이 운 좋다고 하는 것은 귀족자제 옆에 우연히 끼어 있다가 떡고물처럼 묻혀서 좋은 보직을 받는 것이다. 공산사회에서는 이것이 엄청 심하다. 당 간부 자제는 자본주의의 졸부 자식들 못지않게 놀고먹으며 눈 먼 돈 잘 생기는 곳으로 쏙쏙 보내진다. 좌익이 정치권력을 잡고 노조가 정치권력과 결탁된 나라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진다. 이들에게 세상은 지상낙원이다. 뒤로 호박씨 까는 것이 이들의 주특기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흔히 말하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으로는 평등의 개념을 분명히 나타낼 수 없다. 우익도 좌익도 결국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다 쓰기 때문이다. 쓰되 전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그 다름을 분명히 해야 비로소 평등의 추상성을 가능한 한 구체화할 수 있다.
  
   평등은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법 앞의 평등과 권력 앞의 평등으로 나눠야 한다. 법 앞의 평등이 대체로 우익이 주장하는 평등이고 권력 앞의 평등이 좌익이 사모하는 평등이다.
  
   참고로 대한민국 헌법은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하고 기회의 평등을 원칙으로 하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결과의 평등을 보완책으로 인정하고 있다. 핵심은 법 앞의 평등이다.
  
  (헌법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제23조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③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제31조 ①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32조 ①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 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제33조 ①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제34조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좌익 특히 한국의 좌익은 법을 기득권의 보호막이라고 보고 자신들의 탈법과 위법과 불법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재판관의 법률과 양심에 따른 판결에 따라 달게 되는 별의 개수는 좌익들에게 출세의 보증수표다. 선량한 시민을 프락치로 몰아 폭행한 죄로 별을 단 자가 후에 그것을 민주화 투쟁이라고 주장하여 방송도 타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가 마침내 장관이 된 경우도 있다. 정당이나 노조, 시민단체, 위원회 등을 통해서 권력을 장악하는 순간, 이들은 갑자기 법 위에 걸터앉아 나머지 것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직 대통령이든 현재의 재벌 총수든 이들의 권력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하물며 우익 야당, 정부의 고위 관료, 우익 언론, 중소기업 사장, 검찰, 경찰, 군대, 법원, 헌법재판소, 외국기업 등이야 정답을 불러 주면 그것을 베껴 쓰든지 복창해야 되지, 감히 법률이 어쩌고저쩌고 하다가는 이들의 시위와 폭언과 실력행사에 의해 묵사발이 된다.
  
   국회가 결정하고 대통령이 명령한 것도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시위와 선전선동과 폭력으로 뒤집어 버린다.
   “우리의 권력 앞에 모든 자들은 무릎을 꿇어라. 이것이 바로 평등이다. 우리는 절대선이다.”
  
   법치가 상식이 된 민주 국가에서 기존의 법 중에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모조리 악법으로 몰아 그 법을 어기는 것을 민주의 실현이라는 억지를 부린다. 그것이 바로 독재라는 것을 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공산독재가 바로 그 전형이다. 공산국가에서는 공산당이 절대선이기 때문에 당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무조건 옳고 무조건 인민에게 좋다. 권력서열이 1위부터 100위, 1000위, 10000위 등으로 칼같이 정해지고 그 권력 아래의 인간들은 모두 평등하다. 2위부터 나머지는 1위 앞에 평등하고 3위부터 나머지는 2위 앞에 평등한 것이다. 그것이 좌파가 주장하는 평등의 정체다. 권력 앞의 평등이다. 좌파의 권력 앞에 모든 생령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게 바로 저들이 말하는 평등의 정체다.
  
   구미에서는 민주 토대가 워낙 단단해서 좌파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지만, 중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등 민주 토대가 허약한 곳에서는 권력을 잡든 안 잡든 좌파는 늘 법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그것을 이들은 평등이라고 미화한다. 대학생은 우르르 몰려가서 총장을 무릎 꿇리고 노동자는 우르르 몰려가서 사장을 무릎 꿇린다. 시민운동가는 우르르 몰려가 경찰과 군대를 무릎 꿇린다. 위원회는 우르르 몰려가 법률을 무릎 꿇린다. 국회의원은 우르르 몰려가 헌법을 무릎 꿇린다. 우르르 몰려가면 만사형통한다.
  
   우르르 몰려가는 그들 사이는 평등한가. 천만에 그들 사이의 서열은 엄격하다. 노조 안에서 노조위원장은 하늘이다. 노조 임원도 까마득 높다. 위에서 결정하여 아래로 명령을 하달하면 나머지는 우르르 몰려가야 한다. 일체 딴 소리를 못한다. 전국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한총련의 회장도 하늘이다. 감히 아랫것들은 쳐다보지도 못한다. 결사적으로 보호한다.
  
   법을 우습게 알기 때문에 좌파는 이중 잣대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른다. 기업의 투명성은 당연시하지만 노조나 시민단체의 투명성은 신성모독이다. 기업의 완전경쟁은 당연시하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생존권 박탈이다. 기업 총수의 독단은 말도 안 되지만, 시민단체장의 독단은 구국의 결단이다. 정통우익의 부정은 빙산의 일각이지만, 친북좌익의 비리는 어물전의 꼴뚜기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 거기에 좌파도 없고 우파도 없다. 지위도 없고 재산도 없다. 잘못했으면 누구든 정당한 절차에 따라 벌을 받아야 한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판사든 기업총수든 깡패든 노동자든 농민이든 학생이든 교사든 남자든 여자든 잘못했으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대신 법을 어기지 않았으면 누구든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 혐의만으로는 그 어떤 사람도 죄인취급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방송에 한 번 뜨고 인터넷에 한 번 오르고 신문에 한 번 실리면, 여론재판에 의해 바로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편을 갈라서 ‘내 편’이면 어떤 잘못도, 명백한 국가반역죄도 용서하고 변호해 주고, ‘네 편’이면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눈 한 번 흘긴 것조차 대역죄를 저지르기라도 한 듯이 난리법석을 떨어 멀쩡한 사람을 생매장 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법을 어긴 적은 없으나 코드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편법이란 말로 옭아매어 기어코 구속시키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하면 법망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다. 그것은 정치권력이든 문화권력이든 권력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하면 부메랑으로 언젠가는 되돌아가서 자신들이 권력을 잃을 경우에 당할 수가 있다.
  
   법 앞의 평등은 민주고 권력 앞의 평등은 독재다. 법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지만, 권력은 사람에 따라 달리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성숙한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식 공산주의와 민족을 매개로 하고 진보를 위장막으로 하여 굳게 결합됨으로써 갈수록 혼란을 가중 시키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 평등이 자유를 능가하는 명분으로 올라섰는데, 그 평등의 개념이 권력 앞의 평등으로 급격히 퇴보하고 있다. 평등의 이름으로 갈등을 증폭시키고 평등의 이름으로 불평등을 당연시한다. 기회의 평등이든 결과의 평등이든 평등은 권력 앞의 평등으로 변질되어 대량생산되는 제품처럼 획일화로 치닫고 있다.
  
   (2006. 5. 26.)
[ 2006-05-26, 15: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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