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변천-송두리째 무너지는 전통윤리1
효란 타고나는가, 가르쳐지는가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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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 변천-송두리째 무너지는 전통윤리1
  [수렵채취기, 농업시대,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의 효]
  
  [효란 타고나는가, 가르쳐지는가]
  
  효는 부모에 대한 의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모성애와 더불어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흔히 말해진다. 그런 측면이 분명 강하다.
   그러나 바람난 어머니가 자식을 내팽개치고 도망을 가서 평생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10대 미혼모가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경우도 있고 ,뱃속에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갓난아이보다 더 여린 자기 자식을 태연히 유산시키는 경우도 있다.
  
   일본인이 중국의 남경에서 수십만의 양민을 학살할 때 가장 사람들의 치를 떨게 한 것이 임신부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서 공중으로 던져 총검으로 꽂아 죽인 일이었다. 왜구들도 명(明) 나라에서 그런 짓을 자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과학의 힘을 빌어, 산아 제한이라는 명분으로 어머니와 의사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뱃속의 아이를 토막쳐서 죽여 버린다. 자식에게 이 세상 어디보다 애착이 강했고 헌신적이었던 한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보다 3배나 많은 뱃속의 아이를 유산시킨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하지 않는가.
  과연 인간에게 모성애가 본능인가라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효는 더 말할 것도 없다. 10대의 자식이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에게 떼쓰고 욕하고 때리는 일이 우리나라에도 1990년대에 등장했다. 일본에는 우리나라보다 20년 먼저 그런 일이 발생했다.
  부모를 죽이는 일이 성군(聖君)인 세종 때도 있었다. 이에 충격을 받아 오늘날로 말하면 만화 형식으로 낸 책이 바로 삼강행실도이다. 무지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 몰상식한 일은 아니더라도 자식이 부모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시집 장가간 뒤에도 부모에게 끝없이 손을 내밀기만 하는 우리 나라의 현 세태를 보면, 과연 효라는 것이 자연의 상태에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효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조선시대와 한국 현대의 효는 누가 봐도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평균 수명이 고작 35세를 넘지 못했는데도, 부모가 돌아가시면 죽은 부모를 생각하며 묘 곁에 초막을 짓고 각각 3년씩 6년을 살았다. 부모가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시면 기간이 단축되기도 했지만, 잘못하면 꼼짝 않고 6년을 내리 그렇게 살아야 했다.
  
   돌아가신 지 일주일도 안 되어 탈상까지 해 버리는 요즘과 비교해 보면 도저히 그것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수명이 길어졌으니까 한 3년 도 닦는 것도 괜찮을 법도 한데 말이다. 답답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한 3년 살고 나면 사람이 얼마나 성숙해질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말린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효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산소에서 3년간 시묘한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의 효심과 부모가 돌아가신 지 일주일도 안 되어 탈상하는 현대 한국인의 효심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만약 지금 사람이 그 때 태어났다면 군소리 않고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럼 무엇이 효를 시대마다 달라지게 할까. 이것을 제대로 알면 성큼 다가선 정보화 시대에 바람직한 부모 자식 관계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효는 문화 현상이다]
  
   일본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일화 중에 무사가 자기 아들의 배를 갈라 아들의 결백을 보여 주는 이야기가 있다. 이어 그는 의심을 한 이웃 사람을 단칼에 죽이고 자기도 스스로 배를 갈라 장렬하게 죽는다. 자기 아들이 이웃의 닭을 잡아먹었다든가 뭐 그런 의심을 받았다고 귀하디 귀한 아들의 배를 갈랐던 것이다.
  한국인은 이 말을 들으면 소름이 오싹 끼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비가 자식의 배를 갈라.
  그러나 일본인은 무사가 명예를 얼마나 귀중하게 여겼던가, 라며 숙연해진다.
  
   한국에는 병들어 다 죽어 가는 어머니에게 손가락을 물어 뜯어 그 피를 마시게 하여 그 어머니를 살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심지어 자식이 허벅지 살을 베어 주는 이야기까지 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하지만, 일본인은 괴성을 지른다. 무시무시하다며 눈을 감는다.
  
   삼국지에 보면 병법에 대해 까막눈인 유비를 도와 승승장구하게 하던 서서가 갑자기 사라지는 장면이 나온다. 어머니가 조조에게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신의 아큐 정전에 보면 자식이 아버지에게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한 마디도 않는 장면이 나온다. 중국에서는 자식의 피를 흘리는 일화는 잘 나오지 않는다.
   자식을 삶아서 주인에게 고기로 대접하는 역아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은 전쟁시기인 춘추 전국 시대의 일이므로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다.
  
   몽골에는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아버지의 첩을 모두 자기의 첩으로 삼는 전통이 있었다.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어머니와 동침하는 셈이다. 이를 증자팽모(蒸子烹母)라 했다. 한국인이나 중국인의 눈으로 보면 그런 몽골족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야만족이다. 짐승이다. 불효막심한 놈이다.
  그러나 몽골족에게 그것은 아버지의 첩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해 주는 것이므로 아주 좋은 일로 받아들여졌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로 비쳤다. 가문을 갈등 없이 고스란히 지키는 영웅으로 받들려졌다.
  
   서양에서는 희한한 이론이 나왔다. 저 유명한 프로이트의 이론이다. 이걸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어떻게 아들이 어머니에게 성욕을 품는단 말인가. 요상하게 그게 잠재의식이니, 무의식이니 하니까 혹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도무지 실감이 안 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말이다. 폴란드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가 내 생각에 영감을 불어 넣어 주긴 했다.)
  
   서양에서는 모자 관계가 별로 가깝지 않았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모자 관계가 유별났다. 참 자연스럽고 순수한 사랑으로 맺어진 아름다운 사이다.
   그러나 서양은 이 자연스럽고 순수한 사랑을 아버지가 강제로 막았다. 가능하면 모자가 가까이 있지 못하게 하고 부자(father and son)는 제법 친하게 지냈다. 자연스러운 관계를 부자연스럽게 만듦으로써 모자간에는 심리적으로 복잡하게(complex) 되었다.
  
   특히 아들이 그러했다. 어머니는 주는 사랑이라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아들은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사랑이라 슈퍼 에고(super ego: 사랑은 아버지에게 표현하라)와 리비도(libido: 사랑은 어머니에게 더 주고 싶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것을 프로이트가 있는 대로 뻥튀기를 해서 슈퍼 스타가 되었던 것이다.
  
   단 서양의 아버지는 모녀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는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이런 전통으로 지금도 서양은 모녀간이 그렇게 가까울 수가 없다. 그 결과 이 사이를 갈라놓는 사위는 장모와 아주 사이가 안 좋다. 사위는 지구 끝까지라도 장모를 피해 도망가려고 한다.
  사위는 백년지객인 우리 나라와 너무 대조적이다.
  서양의 장모와 사위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은 한국에서 절친한 모자 사이를 갈라놓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늘 암투를 벌이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프로이트의 이론이 일반성을 가지려면 서양의 모녀는 무의식적으로 동성연애를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서양인들은 다들 너무 같잖아 픽 웃어 버릴 것이다.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프로이트 이론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인에게 그것은 엄청나게 실감이 나는 이론이었다. 오죽 했으면 프로이트가 마르크스, 다윈과 더불어 19세기 이후 서양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이라고 할까.
  전세계적으로 그런 영향을 미쳤다고 서양인들은 주장하고 싶겠지만, 글쎄 나는 좀 회의적이다.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 이유는 서양에서의 효가 동양과 매우 달랐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잘 해주는 것이 큰 칭찬이 되었지만, 서양에서는 은연중에 이런 효에 일정한 선이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서양은 일본과 닮았던 것 같다.
  서양에서는 아들이 끝없이 아버지에게 잘해 주어야 했던 것이다. 조사는 안 해 봤지만, 모자 관계가 아주 좋은 이태리에서도 아마 프로이트가 그리 신통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이태리의 학자들과 예술인끼리 야단을 떨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상의 기술에서 효는 문화마다 매우 다르다는 결론을 내는 데 크게 무리가 없을 줄 안다.
  
  [수렵채취 시대의 효]
  
   인류가 이 땅에 등장한 지 대충 1백만 년(450만 년까지 끌어 올리는 사람이 있지만, 아직은 의심스러운 면이 많다)이라고 할 때, 이 중의 99%를 수렵채취 생활을 했다.
   이 기간이 가장 길었던 만큼 기억에선 사라졌지만, 효의 가장 원형적인 형태도 당연히 이 때에 등장해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오늘날 정확히 그 당시의 효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오늘날도 원시 생활을 하고 있는 종족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효는 가족 형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데 이 당시는 그 후 1만 년의 가족 형태와는 달리 모계 사회였다는 점이다. 아주 재미있는 현상 중에 하나는 현대 서구 사회는 모계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효도 수렵채취 시대의 것과 닮아갈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모계 사회에서는 효도 당연히 자식이 어머니에게 주고싶은 사랑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별 의식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도 이에 대해서 별로 섭섭한 생각을 않았을 것이다. 실지로 원시 생활을 하는 종족 중에 모계 사회를 이루고 있는 데서는 이런 현상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자식은 키워 주었으니 고맙다, 정이 들어 엄마가 좋다는 식이었다.
  따라서 거의 의무라는 생각을 않고 자연스럽게 스스로 활동해서 먹을 걸 구할 수 있으면 자기가 먹고 난 후에는 엄마에게 가져다 주었다. 엄마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자기도 먹지 않은 것을 먼저 엄마에게 가져다 주는 일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먹을 것이든 입을 것이든 예쁜 것이든 자기보다 먼저 자식에게 주었다. 이를 어릴 때부터 보아 왔기 때문에 자식은 그를 흉내냈다.
  아버지는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위해서 자식은 필요하면 다른 사람과 싸우기도 하면서 헌신적으로 엄마를 보살폈다.
  짐승이 가족을 위협해도 당연히 그 짐승을 물리치기 위해 목숨도 바쳤다.
  
   엄마에게 신경을 제일 많이 썼지만, 형이나 누나 동생도 차별하지 않았다. 하나의 공동체였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서로를 위했다.
  자연 안에서 다같이 평화롭게 살았다.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자식이든 어머니든 죽으면 슬퍼했지만, 그 슬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이 가족의 단위가 혈연을 중심으로 먹을 것이 넉넉하면 조금 커질 수도 있었다. 위험을 공동으로 방어할 목적으로 조금 커질 때도 있다. 그러면 아이를 낳은 사람은 모두 어머니가 되고 아이들은 모두 형제 자매가 된다.
   실지로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에서는 나이든 여자는 어머니 아니면 할머니다. 아주머니란 단어가 없다. 설령 자기를 낳지 않았다 해도 모두 서로가 차별하지 않고 대하기 때문에 공동의 어머니들과 공동의 할머니들에게 효도 거의 똑같이 표현한다.
  
   이 원시 공동체에서는 갈등과 소외라는 게 무언지 몰랐다.
  
  (나는 노자의 사상은 한 마디로 표현해서 구석기 시대에 존재했던 이 원시 공동체 생활에 대한 향수라고 본다. 노자는 신석기 시대까지는 용납하는 여유가 있었다.
  닭이 이웃 동네에서 꼬끼오하고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신석기 시대를 의미했던 것이다. 그 당시는 자기 가족이나 종족공동체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기들끼리 오순도순 살았다.
  먹을 것만 충분하면 전쟁도 없었다. 구석기 시대는 아예 인간끼리는 전쟁을 않았다. 동물과 싸우기에 급급했다.
  
   구약 성경에서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상황을 가만히 보면, 농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그들의 부모 아담과 하와가 나무 열매나 따먹고 짐승이나 잡아 먹던 구석기 시대를 지나, 농사를 짓고(카인) 목축을 하는(아벨) 신석기 시대로 접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자연히 농업이라는 신기술로 부가 쌓였을 것이다. 이렇게 쌓인 부에 대한 감사한 마음에 그들은 야훼에게 제물을 바쳤다.
  
   카인은 곡식을 재배했는데, 아마 그 때까지만 해도 농사 기술이 시원찮아 그저 들에 대충 뿌린 씨에서 나온 곡식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골랐다고 해도, 그가 바친 제물은 민망스러울 정도로 보잘것없었을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먹음직하게 달린 열매보다 훨씬 보기가 안 좋았을 것이다.
  
   대개 들에서 나는 열매를 그냥 뿌리면 거기서 나는 열매는 자연 상태보다 양은 많이 확보할 수 있을지라도 열등한 열매가 나오게 되어 있다. 감씨를 심으면 고욤나무가 나오는 것이 좋은 예이다.
  교잡이나 접붙이기를 통해서 씨앗을 개량하는 일은 대단한 농업 기술로, 이것은 수천 년의 경험을 통해서 확보한 획기적인 업적이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손으로 글을 쓰다가 컴퓨터를 개발해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 못지않은 대단한 업적이다.
  
   카인이 바친 제물과는 달리 아벨이 바친 동물은 아마 양이었겠지만, 살도 토실토실 찌고 단숨에 목숨을 끊어 피도 거의 안 묻고 깨끗했을 것이다. 첫 새끼였다고 하니까 한창 맛있을 때, 고기가 연한 상태인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중간 크기의 양 곧 새끼양과 어미 양 사이의 양을 바쳤을 것이다.
  구석기 시대에 힘들어 사냥한 것보다 훨씬 보기도 좋고 먹음직했을 것이다. 게다가 동생 아벨은 동물 기름을 야훼에게 바쳤다.
  
   마빈 해리스의 음식 문화에 관한 책을 보면 인류는 동물성 단백질과 동물성 지방을 섭취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과 전쟁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런 맛있는 동물성 지방을 본 카인의 마음에 어떤 충격이 가해졌을지 상상하기가 과히 어렵지 않다.
   카인이 보기에 분명히 야훼는 아벨의 제물을 훨씬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성경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진짜 이유는 아벨이 기른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양에 대한 탐욕이었을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나서 그 양들을 모두 차지했을 것이다. 동생보다 그 재산을 더 사랑했다는 말이다.
   카인이 원래 살던 곳을 떠난 이유는 둘이었다고 보여진다. 하나는 사람들의 비난을 피해 도망가기와 다른 하나는 동생한테 빼앗은 양떼를 잘 키울 풀밭을 구해서 이동하기였을 것이다.
  
   결국 농업의 시작으로 쌓인 부가 갈등 요인이 되어 형제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전쟁 기록이다.
  
   카인과 아벨의 골육 상잔은 '공동 생산 -- 공동 분배'의 구석기 시대의 윤리가 '개인 또는 가족 생산 -- 개인 또는 가족 소유'라는 신석기 시대의 윤리와 마주치면서 빚어진 비극이었던 셈이다.
  
   이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구석기 시대에는 전쟁이 없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말이다. 어쩌면 인간끼리의 전쟁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죽고 죽이는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대에 자기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섹시한 여자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과정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으로부터 강제로 부를 빼앗는 행위인 만큼, 부가 축적되지 않은 구석기 시대는 전쟁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고 본다.
   --계속--
  
  
[ 2006-10-04, 11: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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