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보다 무서운 것은 햇볕정책
북핵보다 무서운 것이 4개 더 있다-- 장거리포, 생화학탄, 땅굴, 햇볕정책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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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은 내가 마음먹기다.
  --핵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김정일)
  
   핵보다 무서운 것이 수도권을 겨냥한 장거리포이고 그보다 무서운 것이 생화학 무기이다. 이 생화학보다 무서운 것이 땅굴이고 땅굴보다 무서운 것이 햇볕정책이다.
  
   전 세계가 북한의 핵실험에 경악하지만, 한국은 라면 하나 사재지 않고 천하태평이다. 스타워즈 영화 예고편 보듯 멀뚱멀뚱 바라본다. 정부여당의 호언처럼 햇볕정책 탓이다. 햇볕파의 주장대로 그것은 남북 화해의 위대한 성과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안보불감증의 망국병이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접어들었음을 생생히 보여 준다. 황장엽의 말대로 햇볕정책은 적과 친구를 혼동하게 만든 마취제다.
  
   대북정책은 크게 3번 바뀌었다. 40년 반공정책에서 북방정책으로 바뀌어 불과 5년간 지속하다가 ‘민족을 이념(국민)’에 앞세우는 햇볕정책으로 바뀌어 14년이 지났다. 햇볕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김대중 정부였지만, 실지로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였다. 때마침 공산권의 몰락에 발맞춰 경제에 치중한(바보야, 문제는 경제거든!) 미국의 민주당 정책과 맞물리면서 대북정책은 한국의 안보에는 벌집처럼 숭숭 구멍을 내고 북한의 안보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할 만큼 빈 틈 없는 철옹성을 쌓는 것을 도시락 싸 들고 돈까지 사과 상자 째 바쳐 도와 주었다. 북한의 독재정권에는 당근만 주었던 것이다. 그 사이 광범위한 외곽부대를 거느리고 남북의 정권이 공조해서 한국의 역대 정권을 총공격하여 독재와 반민족과 분단의 원죄를 뒤집어 씌웠다. 이에 더하여 미국과 일본의 머리에 자주평화통일을 방해하는 제국주의의 빨간 모자를 씌웠다.
  
   와중에 부시 정부가 들어섰다. 처음에는 부시도 이전 정부가 저질러 놓은 일이지만 약속은 약속인지라 충실히 따랐다. 그러다가 북한이 핵 개발 중지 약속을 어긴 것을 자랑삼아 도리어 협박의 무기로 쓰려고 하자, 그 즉시로 당근을 끊고 여야 만장일치로 북한인권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한독재 두둔 북한인권 외면’이라는 햇볕정책의 정체가 국제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훤히 드러났다. 매끄럽기만 하던 한미공조에 민족공조의 모래가 뿌려지면서 요란한 불협화음이 매향리와 광화문과 자유공원과 평택에서 메아리쳤다.
  
   햇볕정책은 반공정책을 계승한 게 아니라 반공정책에 비수를 꽂은 술책이다. 북방정책을 계승한 것도 아니다. 북방정책은 당근으로 유혹하고 채찍으로 위협하여 바람을 물리치고 바람에 시달리던 나그네를 구원하는 것인데, 햇볕정책은 채찍은 남김없이 불태우고 당근만 바리바리 갖다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 곧 독재자의 선의를 무한정 믿고 그에게 달라는 대로 주고 나그네는 동정하는 척, 위하는 척, 민족으로 인정하는 척하는 정책이 햇볕정책이다. 민족의 가면을 쓰고 지옥의 고통에 허덕이는 민족은 데면데면 외면하는 것이 햇볕정책이다. 햇볕정책은 북한의 통일전선을 한국의 정부여당과 광범위한 문화권력이 이름만 바꾸어 대담무쌍하게 국가정책으로 채택한 것이다. 적화통일의 교두보인 통일전선을 충실히 계승하고 적극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간첩도 이보다 잘할 수는 없다!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
  
   반공정책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 북한인권 운동이다. 북풍한설에 시달리는 나그네를 형제자매처럼 돕고 바람을 몰아내고 나그네에게 직접 햇볕을 쪼이고 빵을 주려는 것이 북한인권운동이다. 북한인권운동의 전신인 반공정책은 북한을 탈출한 사람은 아낌없이 도왔지만, 북한인권운동의 방해자인 햇볕정책은 갖은 방법으로 탈북자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고 세상눈이 무서워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받아들인다. 인권탄압국가가 아니면 반대할 수 없는 UN의 대북한 인권결의도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워 기권이니, 불참이니, 하는 방식으로 외면한다. 그 특수성의 실체는 편지 한 통 주고받지 못하고 친척집에 단 한 명 찾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교묘하게 호도하는 사이비 남북화해다. 적화통일의 교두보인 통일전선이 무르익어간다는 의기양양함이다.
  
   깡패가 경찰에게 감히 덤비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것처럼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이 반국가단체인 북한 공산독재집단에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채찍을 휘둘러 감히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하고, 목숨을 걸고 어쩌다 탈출한 동족을 영웅으로 모시는 게 반공정책이었다. 민간인 차원의 북한인권운동은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탈출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압제에 시달리는 모든 주민의 고통을 덜어 주고 구출하자는 운동이다. 그 대상은 북한주민이기 때문에 노예로 전락한 그들의 목구멍에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는 쌀 한 톨 주지 않는 것이 북한인권운동이다. 주머닛돈이 쌈짓돈인 공산왕조에는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 것이 북한인권운동이다. 이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면서 ‘무조건 돕자’고 하는 자들은 또 다른 햇볕파이다. 사이비 북한인권운동가이다. 북한의 전 주민을 핵 인질로 삼고 감히 한국의 전 국민도 핵 인질로 확보하려는 수작에도 북한인권운동이 반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거창한 구호와는 달리 햇볕정책은 북한의 극소수 지배층을 위한 우회기습형의 술책이고 반공정책과 북방정책과 북한인권운동은 북한의 절대 다수 피지배층을 위한 정면돌파형의 정정당당한 정책이요 시민운동이다. 햇볕정책이 김정일 독재에 대해 한 마디 거슬리는 말을 못하고 북한인권 말만 나오면 선문답을 주고받고 탈북자에게 다투어 마이크를 들이대기는커녕 검은 안경을 쓰고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섬기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독이 동독 주민을 통일 전에 50만 명이나 받아들였지만, 한국은 동독보다 수십 배 극악하고 나치나 소비에트 독재보다 악랄하여 전국토가 수용소로 개조된 공산왕조 체제에서 탈출한 동족을 아직도 겨우 1만 명 정도 받아들였다.
  
   예전의 반공정책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면, 중국과 러시아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 북방정책을 충실히 계승했다면, 탈북자를 능히 1백만은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랬으면 10년 전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유통일을 이룩하고 지금쯤은 통일 후유증마저 거의 극복하고 중국.일본과 더불어 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다투고 있을지 모른다.
  
   햇볕파가 반공파를 악질 친일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그들이 적화동조세력(동아일보)이기 때문이다. 대북 지원에 대해서는 분배의 투명성이라는 촛불 하나 켜놓지 않고 김정일 독재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 시늉하고 북한 주민 300만 아사에 대해 증거 없다며 들은 척 만 척하는 것--이런 것들이 햇볕정책이 바로 통일전선의 일환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한국이 임진왜란 직전보다 더한 안보불감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것은 햇볕정책의 가장 큰 성과이다. 햇볕정책은 남북정상회담 이래로 정부여당만이 아니라 야당, 학계, 문화계, 교육계, 심지어 윤광웅 장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방부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김정일이 “통일은 내가 마음먹기다. 핵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라고 호언장담할 만하다. 그가 핵 단추에 왼손의 새끼손가락을 얹어 놓고 눈을 찡긋하며 오른손을 치켜들어 생화학탄을 장착한 장거리포를 몇 방 쏘고 땅굴에서 국군의 복장을 갖춘 특수부대를 우르르 내보내면, 혼비백산하여 바로 KBS가 통일선언을, 연방제통일선언을, 적화통일 선언을 할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고서야 대중 연설 한 번 한 적 없는 과묵한 성격에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햇볕정책으로 몽롱해진 한국은 미국만 없으면 언제라도 잡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그가 그런 말을 감히 입 밖에 낼 리 없다. 그런 말에도 TV의 무슨 방송 중 실수담 즐기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국의 4천8백만이 그에겐 얼마나 만만하게 보일까.
  
  ‘남조선은 내 손 안에 있소이다.’--이 말이 21세기 초 한반도의 4차원에는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중국의 송과 명은, 유럽의 프랑스와 영국은 평화 무드에 휩싸여 눈만 한 번 부릅떴어도 일망타진할 수 있었던 몽골과 여진, 게르만에게 아예 나라를 빼앗기거나 죽음의 고통을 맛보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도 마찬가지였다. 적을 전혀 모르면서 적을 깔보고 위정자들이 앞장서서 개다리 춤을 추며 평화의 노래를 열창하다가, ‘설마’에 나라의 운명을 맡겼다가 피와 시체로 금수강산을 어지럽혔던 것이다. 현재의 한국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
  
   (2006. 10. 19.)
[ 2006-10-19, 10: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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