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왜 통일 못할까
민족공조? 대를 이어 같은 민족을 도합 6백만이나 학살한 세력이 어찌 같은 민족인가.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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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같은 게르만족에 같은 언어에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영토도 서로 이웃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왜 통일을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할까. 생각조차 못할까.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전쟁 때문이다. 1866년의 보오전쟁과 나치의 공작에 의한 1938년의 독일과의 강제합병 때문이다. 2차대전이 끝난 지 두 세대가 지났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아직도 나치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차대전 후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연합군은 오스트리아에서도 주둔했다. 1955년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합병하지 않고 영세중립국이 될 것을 선언함으로써 비로소 연합군의 부릅뜬 눈에서 벗어났다. 그것은 오스트리아가 간절히 바란 바였다.
  
   동족간의 전쟁, 특히 독재자가 일으킨 동족상잔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악몽이다. 동서독도 만약 남북한처럼 공산당의 기습에 따른 동족상잔을 겪었다면 통일되었을 리 만무하다.
  
   19세기 중엽 오스트리아는 대독일주의를 지향하고 프로이센은 소독일주의를 지향했다. 1278년에 들어선 합스부르크가는 유럽을 거의 대부분 차지하고 1918년 1차대전까지 존속했지만,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740년 이후다. 그 해 여성 계몽군주 마리아 테레지아가 즉위하여 봉건국가의 틀을 벗는 개혁을 단행하면서 당시 유럽과 중동에 걸쳐서 최대의 강국이었던 오스만 터키의 침략을 물리치고 유럽의 방패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합스부르크가로서는 당연히 오늘날의 독일인 프로이센 지역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와 마찬가지로 한 나라로 묶어 통치하길 원했다. 그것이 대독일주의다. 사실상 300여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던 프로이센은 그렇지 않았다. 그 지역을 한 국가로 통일하여 당당히 독립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갈등을 해결한 것이 1866년의 보오전쟁이다. 비스마르크는 여기서 혁혁한 공을 세워 독일 통일의 기초를 닦는다.
  
   1차대전 후 오스트리아는 오늘날의 중동부 유럽을 죄다 잃는다. 설상가상으로 오스트리아 출신인 화가 지망생의 간교한 술책에 의해 수상이 암살당하는 치욕을 겪고 1938년 독일제국에 강제합병 당한다. 유럽 최대의 국가였던 오스트리아 국민은 졸지에 나치 하의 2등 국민으로 전락한다. 이 치욕을 음악영화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저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이 때 광대망상증 환자가 내세운 것은 독일 존립의 기반인 소독일주의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꿈이었던 대독일주의였다. ‘위대한 지도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 게르만족이 군데군데 거주하는 유럽 전체를 한 국가로 통합하려고 캔버스와 팔레트 대신 탱크와 대포를 들고 설쳤다. 게르만족 최고, 하일(만세)! 유태인 거지발싸개, 죽여라!
  
   1866년 보오전쟁 때는 독일이 독립과 자유의 명분이 있었지만, 2차대전 때는 전쟁과 학살이라는 영원히 씻지 못할 오명이 있었을 뿐이다. 게르만족이 최고라는 민족주의는 유럽전체를 공포의 도가니에 집어넣고 유태인 6백만을 학살한 악몽으로 아직도 이따금 유럽인의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든다. 따라서 대독일주의를 내세우고 민족주의를 내세워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통일하겠다고 하면, 그 즉시 나치즘으로 몰리어 돌멩이 세례를 받는다. 미쳐서 빡빡머리(스킨헤드)족이 되지 않는 한 감히 누구도 그런 생각을 못한다.
  
   한민족은 어떠한가. 소련군 대위 출신으로 스탈린의 꼭두각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김일성이 소련과 중공의 힘을 빌려 미군이 철수한 틈을 타서 기습남침하여 300만을 학살한 지 아직 두 세대도 흐르지 않았다. 아직도 3백만의 슬픈 영혼이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당한 치욕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은 전쟁도 없었고 학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년간의 식민지 생활이 치욕스러워 다시는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통일, 좋다! 그러나 먼저 김일성의 침략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 사과는 석고대죄 방식으로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이 만든 개혁개방 정책을 그대로 따르고 무장을 해제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김정일 독재체제가 물러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더하여 3백만 아사에 대해서 죽음으로써, 상징적인 수준에서도 김정일을 포함한 몇 명의 자결로써 사과해야 한다. 이에 벗어나는 것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말하면 나치체제를 양국에 다시 도입하자는 말과 마찬가지다. 적화통일 이외 아무 것도 아니다.
  
   민족공조? 염라대왕의 귀에나 그 말을 속삭여라. 대를 이어 같은 민족을 도합 6백만이나 학살한 세력이 어찌 같은 민족인가. 원수도 그보다 더한 원수가 없다. 살인자도 같은 민족이면 무조건 용서하고 감옥은커녕 법원 근처에도 데려가지 않는 법이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있으며 그런 윤리가 세상 어디에 있는가?
  
   민족은 국민의 하위 개념이란 걸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삼천리금수강산이 반드시 다시 한 번 피로 목욕하고 시체로 뒤덮인다.
  
   (2006. 10. 20.)
  
[ 2006-10-20, 15: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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