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되고 싶었던 고양이, 말, 곰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는 예술인데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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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이란 호랑이가 구월산에서 왕 노릇하던 때 이야기랍니다.
  
   '걱정'이는 그 당시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에, 양반들의 위세에 모진 목숨을 간신히 부지하는 뭇 삶들을 늘 걱정하던 차, 인간들 속에 인간의 옷을 입고 살다가, 도저히 못 보아 줄 지경이 되자, 크게 떨치고 일어나 탐관오리와 양반들을 몇 명 물어 죽이고 아예 구월산에 들어가 인간의 탈을 벗고 원래의 호랑이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는 아예 거기서 새로운 왕국을 세워서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구월궁에서 그는 자기 식구가 살 호랑이 굴도 여럿 팠지만,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인간들이 살 집도 여러 채 지었답니다.
  
   그가 한 일은 여러분도 잘 아실 테니까 생략하겠습니다.
  
   '걱정'이는 그 크기만 해도 보통 호랑이의 세 배는 되는 데다 이빨은 다섯 배 날카롭고 발톱은 열 배 길고 다리 힘은 스무 배나 강해서, 감히 어느 누구도 건들지를 못했답니다.
  
   '걱정'이가 탐관오리를 몇 명 물어 죽일 때, 그 옆에 같이 있다가 다 죽어 가는 놈들을 할퀴어 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걱정'이와 같이 있어서 같은 호랑인가 했더니, 새끼 호랑인가 했더니, 여느 고양이보다는 좀 컸지만, 고양이란 게 이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걱정'이가 돌보아 주던 동안에는 그가 고양이라고 아무도 드러내놓고 말을 못했지요.
  
   '걱정 호랑이' 왕은 한 인간에게 우습게 술자리에서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걱정'이는 그 때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서림이란 놈이 '걱정'이에게 술을 권하는 척,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고 하지만, '걱정 호랑이' 왕이 한 팔을 슬쩍 휘두르기만 했어도 그는 그 자리서 죽었을 겁니다.
  
  
   문제는 이 구월궁을 호시탐탐 노리는 자가 셋이 있었다는 겁니다. 서림이는 결국 '걱정'이의 아들한테 잡아 먹혔고. '걱정'이의 숨겨 둔 아들 '꺽정'이도 대단했습니다. 벌떼같이 구월산을 에워싼 관군과 구월산 내에서의 새마 골짜기의 반란도 다 진압하고 철통같이 구월궁을 지켰으니까요. (옛날 왕이 통치하던 때는 성공 못하면 무조건 반란이 됩니다.)
  
   '걱정 호랑이' 왕의 숨겨 둔 아들 '꺽정' 때문에 왕의 자리에 못 올라간 말과 곰과 고양이는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이 곰은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 사회로 도망쳤고 말은 자기 집에 갇혔고 고양이는 뭐 꼼지락꼼지락하면서 그런 대로 잘 살았습니다.
  
   구월궁은 묘향산의 더 무시무시한 사자 왕국의 위협도 받았지만, 나날이 잘 살게 되었습니다. 잘 살게 되니까, '걱정' 왕 때도 그랬지만, 이제 지도자인 왕으로 더 이상 굳이 무시무시한 호랑이일 필요가 없다는 민심이 모락모락 피어났습니다. 예나 제나 민심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겁니다.
  
   '좋다, 그럼 내가 물러나지.'
   한 몇 년 만에 '걱정'의 아들, '꺽정'은 친구 '섭섭'이한테 자리를 물려 주었습니다. 이 친구는 알고 보니, 호랑이가 아니라 소였습니다. 그는 이제 동물끼리 서로 잡아먹지 말고 곡식과 풀만 먹자는 제의를 했습니다. 왕도 무시무시한 말이라며 산어른으로 바꾸자고 했습니다.
  
   참 말을 잘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큰 귀밑에 생쥐 한 마리를 감추고 있다가 그가 일러 준 대로 앵무새처럼 따라했습니다. '섭섭' 산어른은 무슨 말을 해도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뭐가 그리 섭섭한지 맛있는 풀과 콩과 밀을 잔뜩 받아먹고도 부탁을 들어 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도 곧 물러났습니다. 마침내 말이 우리에서 뛰쳐나와 구월궁의 동물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사정없이 제1대 왕 '걱정', 제2대 왕 '꺽정'을 독재자라고 욕하고, '섭섭' 산어른이 같이 일하자며 불러내 준 것도 조금도 감사하지 않고, 자기야말로 구월궁을 잘 다스릴 유일한 동물이라며, 자기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며 울부짖으며 신나게 달렸습니다. 참 멋있게 달렸습니다. 그가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면, 구월산의 풀과 나무와 꽃들까지 황홀해 했습니다.
  
   이 때 인간에 내려갔던 곰도 돌아왔습니다. 자기야말로 인간 세상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자기가 산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때 이들은 이름도 스스로 지어서 '푸른 말'이라 하고 '색동 곰'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각기 자기가 산어른이 되면 푸른 세상이 오고 색동 세상, 곧 무지개 세상이 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그 동안 쥐나 잡아먹으면서 가만히 눈치나 보던 고양이도 끼어 들었습니다. 한사코 자기가 호랑이라면서 자기를 구월궁을 가장 아끼는 제2의 '걱정' 호랑이로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섭섭'이 밑에 들어가 졸개들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잘 생긴 '푸른 말'이 결국 산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구월궁을 헐었습니다. 궁이란 말 자체가 독재자, '걱정'과 '꺽정'을 연상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섭섭' 전 산어른도 똑같은 놈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하여튼 '푸른 말'은 몇 년 동안 새로 만든다는 말만 하고 열심히 부수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구월산의 살림을 결딴내고는 쫓겨났습니다.
  
   '푸른 말'이 은근히 민,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하얀 말'과 무지개 찬란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색동 곰'이 서로를 비난하면서 다녔는데, '걱정 고양이'를 끌어들인 '색동 곰'이 결국 이겼습니다. 늦게사 '하얀 말'은 자기가 구월산을 결딴낸 '푸른 말'과 한 패가 아니라고 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겁니다.
  
   알고 보니 '색동 곰'은 그가 태어난 구월산 새마 골짜기는 완전히 자기편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구월궁 안에도 인간 흉내를 내는 동물들의 지지를 참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색동 곰'은 인간 사회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구월산이 새로 일어설 종자와 농기구를 빌려 왔습니다. 대신에 구월산의 풀과 나물, 돌, 금, 나무, 꽃씨 등을 많이 퍼 주었습니다.
  
   정말 웃기는 것은 '걱정 고양이'였습니다. 노골적으로 호랑이 행세를 했습니다. '하얀 말'도 2등은 했기 때문에 지지자가 여전히 상당한 편이었지만, 그는 '색동 곰'과 '걱정 고양이'에 의해 꼼짝 못했습니다. 이들의 졸개들끼리 만날 싸웠습니다.
  
   '하얀 말'은 씩씩 가쁜 숨만 내쉴 뿐이었습니다. '하얀 말'도 '푸른 말'처럼 생기기는 잘 생겼는데, 막상 말하는 걸 보면 개가 짖는 소리 비슷하게 말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어찌 들으면 수탉이 홰치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히힝, 컹, 꼬끼오! '걱정 고양이'는 자기는 '어흥'하는데 매양 '야옹'하는 소리밖에 안 나왔습니다. 산어른 '색동 곰'은 온갖 소리를 다 낼 줄 아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인간 말도 제법 잘했습니다.
  
   구월산은 완전히 '색동 곰'과 '걱정 고양이' 그리고 그 졸개들 세상이 되었습니다. 만날 이들도 '푸른 말'처럼 구월산 동물 세계를 인간 세계처럼 도덕과 인륜이 구월산 골짜기 물처럼 철철 넘쳐 흐르는 세계를 만든다는 말만 할 뿐, 구월산의 동물들과 인간들을 이간질해서 싸움이나 붙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구월궁은 묘향산의 사자궁과 손을 잡았습니다. 둘을 합해서 하나를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걱정 고양이'는 끝없이 이 쪽에 붙었다, 저 쪽에 붙었다가 했습니다. 이번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인 사자궁과 손을 잡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더니, 맛있는 생선을 주면서 달랬더니, 또 가만있었습니다.
  
   '하얀 말'도 갈팡질팡했습니다. 대체로 그는 반대였습니다. 점점 이 쪽 저 쪽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동물들과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새 산어른 '색동 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늘 그랬습니다. 분명히 거짓말 같은데, 나중에 그가 다시 이리 저리 꿰어 말을 맞추면 또 그럴 듯했습니다. 겉보기와 달리 그는 굉장히 머리가 좋은 곰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는 지능지수가 사람과 거의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구월산 동물의 왕국'이란 책에 이야기는 여기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아쉽게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긴, 뒷 얘기는 하나마나입니다. 왜냐하면 구월산에도 묘향산에도 그 당시 흔적은 거의 없는 걸 보아 둘 다 망했다는 거지요. 어떻게 망했는지는 고고학자, 역사학자 등과 같이 연구를 좀 해 봐야겠지요.
  
  속말 :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는 예술이다. 정치인 치고 이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2000. 8. 4.)
  
  
[ 2007-01-06, 01: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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