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자유와 평등, 김일성의 공포와 기아
미국에 조지 워싱턴이 있다면 한국에는 이승만이 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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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은 불과 건국 2년 만에 자유와 평등의 토대를 굳건히 놓았다. 공산 침략(1950년)도 학생 데모(1960년)도 군사 쿠데타(1961년)도 감히 허물 수 없는 자유와 평등의 초석을 놓았다. 반면에 김일성은 약 50년에 걸쳐 만인평등의 지상낙원을 건설한다며 일일이 심지어 인민학교의 어린이들이 이 닦는 것까지 간섭했지만 공포와 기아의 지상연옥을 물샐틈없이 구축했을 뿐이다. 중공군의 소대장 노릇하다가 후에 소련군 대위로 변신한 김일성이 한 일이라곤 지옥에 떨어진 소련군의 대원수 스탈린도 부러워할 수령 동상과 에덴 동산 뺨치는 수령 별장을 무수히 만들어 고스란히 큰아들에게 물려 준 것밖에 없다. 지상낙원은 바로 김일성과 김정일 둘만의 것이다!

 김일성의 유일체제가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2천만 북한주민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공포와 기아가 횡행하는 이 지상연옥의 제2대 마왕이 바야흐로 대량살상무기와 주체사상으로 이승만의 자유와 평등을 무너뜨리고 박정희의 풍요만 쏙 빼 가서 대한민국을 통째로 접수하기 직전에 이르렀다고, 호탕하게 웃고 있다. 어림도 없는 수작! 이승만이 놓은 자유와 평등의 초석은 소련과 중공과 북한의 총과 대포가 한꺼번에 덤벼도 깰 수 없었는데, 그 위에 박정희의 풍요로 철골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슬래브지붕까지 얹어 세계가 부러워 하는 웅장한 초현대식 빌딩으로 변신한 대한민국이 그리 호락호락 무너질 리 없다.

 공포와 기아에 시달리는 2천만 중 2만 명도 지지하지 않고 자유와 평등과 풍요를 타고난  권리로 아는 5천만 중 50만 명도 동의하지 않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을 평화적으로 달성할 결정적 계기가 도래하리라고 믿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대한민국의 저력을 너무도 우습게 보고 있다. 소련과 중공이 거짓과 폭력으로 지금도 공포와 기아를 조성하면 모르겠거니와, 오래 전에 북한의 이 두 공산 종주국이 착한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미국의 일개 식민지로 오해했던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등과 풍요를 동경하는 마당에 언제까지나 속임수와 퍼 주기로 김일성의 동상과 김정일의 별장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북의 권력이 합작으로 급조한 민족공조의 둑은 이미 곳곳에 구멍이 나서 언제 터질지 모른다. 일단 임계점에 이르러 이 둑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가래가 아니라 전국의 포크레인을 총동원해도 새로 만들 수가 없다. 아마 이번의 평양 무도회는 일단 한 번 추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죽음의 춤(당스 마카브르 danse macabre)이 될 공산이 크다. 공포와 기아를 60년 동안 강요한 자들의 죄업과 북한 주민의 인권을 한사코 외면한 죄업으로 작지 않은 희생이 뒤따르겠지만, 이승만이 놓은 자유와 평등의 초석 위에 박정희가 거의 완성한 풍요의 집은 결국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는 모든 식구를 품에 안을 것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방패막이를 잘 이용하여 자유의 씨앗을 곳곳에 뿌렸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거주이전과 직업선택과 교육과 언론과 선거의 자유다.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똑같이 주었다. 김일성은 이들 중 어느 것도 북한 주민에게 주지 않았다. 거주이전이나 직업선택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약간의 성과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교육마저 성분에 따라 좌우되게 만들었고 교과과정을 철저히 통제하여 모든 학생을 유물론으로 세뇌시켰고 개인 우상숭배를 강요했다. 어디서 다수결은 얻어듣고 선거는 찬성 투표밖에 못하게 만들었다. 

 이승만은 해방 당시 한국은 문맹률이 78%나 되었고 전문대 이상 졸업자가 인구의 1%도 안 되었지만, 수돗물을 들이키고 구호식품으로 받은 옥수수로 멀건 죽을 끓여 먹더라도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필히 국민학교 6년은 이수하게 교육의 자유를 강제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리하여 국민학생은 1960년까지 총 360만 명으로 2.6배 증가했고, 중학생은 53만 명으로 10배 증가했고, 고등학생은 26만 명으로 3.1 배 증가했고, 대학생은 7800명에서 9만 8천 명으로 12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의 원조로 먹고 사는 나라였지만, 이승만은 재임 당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번째로 많은 원조를 갖은 방법으로 미국으로부터 우려내어(나중에는 베트남이 한국보다 더 많은 원조를 받음) 교육에 최우선적으로 투자했다. 이승만은 유물론이나 개인숭배가 아니라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가르쳤고, 60년대 경제개발의 일꾼을 양산하는 '교육기적'을 일으켰다.

 지도자로 입후보하거나 지도자를 뽑는 선거의 자유는 아시아 공산국가 중 개혁개방을 단행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중국과 베트남조차 아직 꿈도 못 꾸는 자유민주의 핵이다. 언론의 자유도 이 두 나라는 아직 요원하다. 이승만은 이 모든 자유를 한꺼번에 주권을 가진 국민에게 주었다. 비록 배는 고팠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승만의 등장과 더불어 누구나 조선시대의 신분제와 일제시대의 2등 국민의 설움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다. 이 자유로 그들은 심지어 이승만도 말년에 독재자라며 권좌에서 내쫓았다.

 이승만은 공산주의자의 구두선인 평등도 미국의 힘을 빌어 전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분과 성별과 기회와 경제의 평등이었다. 이 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이 경제적 평등이다. 그는 공산주의자 조봉암을 농림부장관으로 발탁하여 대부분 지주 출신으로 구성된 여야 의원의 갖은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6·25동란 이전에 전격적으로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프랑스와 일본과 대만과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일제시대만 해도 소작농은 매년 50% 이상을 소작료로 냈지만, 이승만은 매년 30%씩 5년만 내면 영원히 그 농지가 농민의 소유가 되도록 법으로 보장했다. 수천 년 동안 대를 이어 내려오던 지주는 그렇게 하여 완전히 몰락했다.

 반면에 김일성은,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의 '정읍 발언'이 있기 훨씬 전인 1945년 9월 20일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라'는 스탈린의 특별 지령을 받고 그 날로 바로 38선 이북에 공산 단독 정부를 세우기로 결정한 소련군 4만 명의 위세를 업고 그들의 충실한 꼭두각시가 된 김일성은 소련과 중공을 그대로 본받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농지정책의 소산인 협동농장을 만들어 북한의 유일 대지주로 군림했다. 협동농장에 편입된 북한의 농민은 일제시대의 소작농보다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친북좌파들은 아직도 정반대의 궤변으로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실패했다고 하고 김일성의 농지개혁은 성공했다고 우긴다. 이제 강만길 류의 민중사학도 역사학계의 공식 석상에서는 더 이상 이런 헛소리를 못한다. 모든 게 다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 농지개혁에 대해 철저한 왜곡으로 일관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허구가 아닌 역사로 알고 이승만을 일제시대의 악질 순사보다 더 미워하는 자들이 대다수 대한민국의 지식인이요 학생들이다. 자유의 가치를 모르고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자들의 비극이다.

 통일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북한에 이승만 식 농지개혁을 단행하는 일이다. 중국과 베트남을 보면 금방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이승만의 경제적 평등 정책 중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공산당의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선전선동을 한 마디 말도 않고 제도화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연공서열이다. 연공서열이란 공무원이든 노동자든 첫 월급이 제일 적고 마지막 월급이 제일 많은 제도를 말한다. 이건 일본의 제도로 자본주의의 제도가 아니다. 내용으로 보면 공산주의의 제도다. 일은 젊을 때 제일 많이 하고 제일 잘하지만, 그 때는 돈이 가장 적게 들 때니까 보수는 제일 적다. 그러나 늙으면 일은 못하더라도 쓰임새가 제일 많다. 이 때 돈을 제일 많이 받아간다. 1997년에 와서야 겨우 일부 회사에서 연공서열이 연봉제로 조정되었을 뿐, 한국에서는 아직도 연공서열이 기본이다. 이 제도는 직업의 안전성과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제도다. 일부 보완만 하면 된다.
 
 김일성은 말만 공산주의요 말만 절대평등이지 사실상 51개 계층을 만들어 성분과 지위와 권력이 모든 걸 결정하는 공포와 기아의 지옥을 만들었다. 북한에선 백발의 노인도 지위가 높으면 새파란 젊은이에게 말을 높이고 젊은것이 지위만 높으면 할아버지뻘인 노인에게도 말을 마구잡이로 놓는다. 그게 저들이 말하는 평등의 진실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얼마나 위대한 지도자인 줄 잘 모른다. 특히 이승만에 대해서 더욱 그러하다. 오로지 4·19의 잣대로만 보기 때문이다. 그런 4·19도 이승만이 제도화한 자유와 평등이 아니었으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올 수 없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오늘을 8월 15일! 일제의 사슬로부터 풀려난 날이자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1948년에 미군정으로부터 정식으로 주권을 온전히 되찾은 8월 15일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 조지 워싱턴이 있다면 한국에는 이승만이 있다. 
 
                       (2007. 8. 15.)


 

[ 2007-08-15, 17: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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