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학번인 내가 대학에 들어오던 시점부터 한국의 대통령은 노무현이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그 역시 임기 말을 맞고 있다. ‘노무현과 함께 한 4년’인 셈이다. 단지 이념의 문제만으로도 신나게 토론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일 나의 대학 시절, 단 한 명의 대통령이었던 그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잔뜩 던져다 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부터가 하나의 드라마였다. 좌파니 우파니 그런 식의 구분이 역겨울 뿐이었던 스무 살의 내게는 고졸에, 인권 변호사에, 5공 청문회 스타 출신인 후보가 온갖 역경을 뚫고 최고의 자리에 등극하는 그 과정 자체가 웬만한 영화 못지않았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신해철이며 이창동이 그를 지지했던 것도 컸다. 당시 내겐 투표권이 없었지만, 있었다고 한들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이 아직 건재한지는 모르겠지만, 2002년 당시 노무현을 반대하는 20대는 뭔가 기분 나쁜 녀석이었다. 적어도 그 때의 공기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렇게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취임 1년 뒤에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입학 후 나는 ‘자유주의’를 내 인식의 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떤 하나의 틀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은 다른 하나를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유주의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전체주의와 공동체주의, 민족주의며 사회주의 등의 이른바 좌파 사상과 결별을 선언한 셈이 되었다. 방황하던 정신이 명료하게 정착했던 그 무렵 노무현은 탄핵 위기에서 부활했고, 나는 잠시 잊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시저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카이사르는 이미 2천 년 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라고. 자유주의라는 면도날로 베어 본 참여정부의 각종 ‘선의(善意)’가 일을 더욱 그르쳤다는 것은 결과가 잘 말해주고 있다. 사실상 의도와 결과의 비대칭이야말로 참여정부의 성과를 규정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2004년 9월은 내가 1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던 시점이자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던 때다. ‘성매매’라는 음지(陰地)의 소재가 여론을 한 쪽으로 몰아버리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나쁜 걸 법으로 금지하겠다는 이 정부의 논법은 자유주의만큼이나 명료한 것이었지만, 그게 나쁘건 말건 성매매를 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는 아직도 충분히 많다. 결과적으로 ‘금지’는 ‘은폐’에 그치고 말았고, 남아있는 성매매 여성들은 이전보다 어두운 곳에서, 어둡기 때문에 더욱 비참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불러온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정책들의 부작용 역시 줄을 이었다. 정책의 타깃이 된 것은 주로 기업인들과 소위 말하는 ‘강남 부자’들이었다. 기업의 경우, 자신이 피땀 흘려 일궈놓은 기업에 대한 경영권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법적 구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기업 경영이란 때때로 동물적인 에너지에 근간하는 것이건만, 겉으로 보기에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다간 회사에서 쫓겨나게 생겼으니 기업인들은 겁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 야심찬 투자에 사용돼야 마땅한 자금은 순식간에 눈 먼 돈이 되어 배당이며 자사주 매입으로 순환되는 기이한 구조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강남 부자들의 부동산 역시 표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비싼 땅과 집을 가진 것이 죄(罪)처럼 되고 말았다. 죄를 지었으니 벌금을 내라는데, 말은 세금이라고 하니 두 번 죽는 심정이다. 애초부터 보편적이어야 할 국가적인 정책이 누군가를 ‘겨냥’했다는 것 자체가 불행의 시발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식에서 벗어난 언행이 많은 노무현 대통령의 특질 탓인지, 불만은 점점 증오로 증폭되어 노무현 개인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2006년 여름 그렇고 그런 좌파정권이 계속 되겠구나 생각하며 야구와 축구에 몰입하던 무렵,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한미FTA라는 카드를 내놓아 모두를 경악케 만든다.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 칭했던 그를 몰아 부친 것은 흑백 논리적(的) 편견에 불과했던 것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협상이 타결된 2007년 4월에는 조중동이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한겨레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생경한 풍경을 예상할 수 있었던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 하긴 예측을 불허하니 ‘바보 노무현’인 거겠지만.
  
  
  노무현식 후속조치가 뒤를 이을 예정이지만 어쨌든 한미FTA는 반미(反美) 국가 이미지를 벗겨 주었고, 한국의 국가리스크는 한 단계 낮아졌다. 그리고 이것이 한 요인이 되어 2007년 상반기의 주가는 짧은 주기로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장모님이 주식에 관심을 가지면 거품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요즘은 일부 초등학생들조차 주식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니 비이성적 열기임을 의심한다고 이상할 것은 없다. 부동산 투기꾼 잡겠다고 그토록 열을 올리던 대통령은 온 국민이 주식 투기꾼이나 다름없어진 이 상황에서는 ‘주가를 보니 경제는 문제없다’고 얘기하는 중이다.
  
  하지만 경제가 문제없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취약한 경영권과 경직된 노동구조, 저조한 투자와 복잡한 규제는 국가 경제의 선봉이 되어야 할 기업의 발목을 여전히 무겁게 붙들고 있다. 이렇듯 근본적인 구조가 퇴행적으로 고착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을 맞았고, 나는 대학 생활의 마지막 한 학기를 앞두고 있다. 한국이 새 대통령을 맞이할 무렵에는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환호로 시작하여 탄식으로 끝난 노무현 대통령과의 4년은 쉽게 잊혀 지지 않을 듯하다. 대학이라는 탑 안에서 자유주의라는 프리즘으로 비쳐 본 노무현의 세계는 화려한 겉모습과 허울 좋은 명분과는 반대로 반(反)자유주의적 부작용을 창출하는 거대한 함수와도 같았다. 그 부작용의 메커니즘을 학생 입장에서 면밀하게 바라보고 자유주의와 대비해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학생신분을 벗어나려는 지금 시점에선 그 모든 부작용이 자유주의자들의 과제이자 현실로 느껴지는 가운데, 지금 이 거대한 끝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