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좌파는 양반인권, 북한주민은 상놈인권
국군포로나 납북자, 북한주민, 이들에겐 상놈인권이 있을 따름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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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내든 외국이든 북한인권 말만 나오면 속사포 입을 2008년에나 등장한다는 페타급 슈퍼컴퓨터처럼 재빠르게 두꺼비 입으로 자동적으로 바꾸고, 지혜가 넘쳐 보이는 훤한 이마 아래 순진무구함이 뚝뚝 떨어져 보이는 아름다운 두 눈을 끔벅끔벅한다. 신기막측한 그 입의 모드 전환 시에 남북의 특수한 관계란 말이 '닫혀라, 참깨!'의 주문 역할을 한다. 그 특수한 관계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조선시대 중기 무렵부터 양반은 의무 없는 특권을 만끽했다. 날마다 태평가요, 밤마다 난봉가였다.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천당이 따로 없었다. 무엇보다 양반은 병역과 납세의 의무가 면제되었다. 법과 원칙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법은 썩은 동아줄이요 원칙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웬만한 양반 집은 경찰권과 사법권까지 있었다. 고문 전용 공간이 있어, 거기엔 형틀과 각종 고문 도구가 있었다. 안동 김씨 같은 세도가는 버젓이 집안에 감옥도 갖추고 있었다. 양민과 상놈은 양반이 지나가는데 고개를 깊숙이 오랫동안 숙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물고가 되었다. 소작료를 적게 냈다든지, 게으름을 피웠다든지, 양반 도련님 혼사에 물질과 노력봉사로 성의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았다든지, 하면 엉덩이를 까서 때리고 또 때려 피가 튀고 똥오줌이 질질 새어 나오게 하여 죽여도 괜찮았다. 양민과 상놈은 아예 인권이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상놈은 소보다 못했다. 상놈이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 양반 댁 소의 엉덩이 살을 한 근 베어 먹었다고 하면, 그는 즉시 맞아 죽었다.

 대신에 양반은 죄를 지어 관가에 모셔 가도 판관 앞에 뻣뻣이 서서 코방귀를 뀌면서 대답할 수 있었고,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에도 작은 회초리로 정강이 아래를 비실비실 '쪼개며' 안마하듯이 맞았을 따름이다. 그것도 자존심 상하면 종을 시켜 대신 맞게 했다. 양반의 인권은 이렇게 철저히 보호되었던 것이다.  

 양반은 자신의 척박한 전답을 양민의 비옥한 그것과 맞바꿀 수도 있었다. 심지어 유랑 양반도 있었다. 그런 자는 팔도를 유람하다가 탐나는 전답이 눈에 띄는 순간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 보고 그가 양반이 아니면, 종을 동원하여 다짜고짜 그 자를 두들겨 패고 토지를 가로채었다. 이윽고 단물을 다 빼먹으면 다른 고장으로 가서 새로이 탐나는 토지를 빼앗는 양반을 유랑 양반이라 했던 것이다. 어떤 외국인의 수기라며, 이규태는 『죽어도 나는 양반, 너는 상놈』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괴산 땅의 지력을 다 빼먹고 영남 땅으로 넘어가는 이 행렬에는 농기구를 든 종보다 형틀을 든 종이 한층 많았다.

 2007년 12월 8일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한양대 법대 교수 양건은 노무현 정권의 치적으로 검찰의 중립을 꼽았다. 2년 전 칼럼에서 밝힌 헌법학 전공 교수로서의 생각이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자신의 예지를 자랑했다. 그는 검찰의 독점적 기소권을 거명했다. 5년 내내 친북좌파의 인권을 민주의 이름으로 조선시대 양반의 인권급으로 끌어올리기 전에 반드시 검찰이 기소했다는 말인데, 어디 한 번 따져 보자. 그렇다면 과거사정리 위원회가 새 양반의 특권으로 검찰의 상급 기관으로 군림하며 시대를 뛰어넘는 동지애를 발휘하여 '억울한' 사안에 대해 '특별 수사'하면, 검찰이 그 때마다 안절부절 눈을 내리뜨고 어깨 위로 두 손을 쭉 뻗어 공손히 받자와 '독재'사법부의 판결과 정반대의 취지로 따끈따끈 기소하여 '민주'사법부로 하여금 '민주애국지사'를 무더기로 복권시키고 우르르 '국가유공자'로 만든 것이 모조리 검찰의 중립을 지키는 일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노무현 판사도 유신판사인데, 그러면 독재정부 하에 내린 그의 판결도 모조리 새로 뒤집어야 되지 않을까. 과거정부가 독재정부여서 정의의 심판을 새로 내린다면, 다른 판결도 다 뒤집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왜 유독 간첩죄만 쏙쏙 뽑아 신원(伸寃)하고 그들의 인권을 특별히 보호해 주는가. 지금도 한국의 방송 한 번 들었다고, 수령과 장군의 초상을 실수로 구겼다고, 심심하면 반동의 가족이라고, 재판도 없이 바로 수용소에 끌고 가는 식의 짓거리를 한국의 이전 검찰과 사법부가 자행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특히 간첩죄에 대해서! 시국 사안에 대해서! 집시법 위반에 대해서! 과연 어느 정부의 검찰이 중립적인가.

 김영삼 정부는 비전향 장기수 간첩 이인모를 북한에 보냈다. 김대중 정부는 제2의 이인모를 63명이나 북한에 보냈다. 그들은 모조리 북한에 가서 북한 체제의 우월함에 대한 산 증인으로서 구걸로 먹고사는 북한의 영웅이 되었다. 대신 북한 정권에 어떤 위해를 끼친 바 없는 5만여 명의 국군포로와 5백여 명의 납북어부는 생지옥에서 최하층 생활을 하고 있지만, 단 한 명도 데려오지 못했다. 아예 요구한 적이 없다. 도망쳐 온 사람만 수십 명 국내외의 시선이 따가워 마지못해 받아들였을 따름이다. 이승만 정부는 인민군 포로가 남과 북 또는 제3의 국가 중에 스스로 택하게 했다. 따라서 한국에는 인민군 포로가 한 명도 없다. 한국의 간첩은 스스로 간첩임을 인정했거나 끝까지 북한 공산주의가 좋다고 했거나 물적 증거가 있어서 잡힌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한국의 감옥에서조차 평양의 시민보다 더 융숭하게 대접하다가 늙었다고 불쌍하다고 전원 고향으로 돌려 보냈다.  
 
 '민주'정부가 탈북자의 인권유린에 대해 '황제' 호금도에게 한 마디도 못하고 '왕' 김정일에게는 더더욱 입도 달싹 못하는 것은 알고 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인권은 북한 노동당원 또는 북한에 환상을 품은 자들의 양반인권일 따름이다. 국군포로나 납북자, 북한주민, 이들은 이 범주에 들지 않기 때문에 상놈인권이 있을 따름이다. 북한인권 운동가를 청맹과니처럼 외면하던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유력시되던 해만 찬성하고 북한주민의 인권이나 생존상황이 개선된 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유엔의 대북 인권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진 것도 알고 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북한주민의 인권은 조선시대 상놈의 인권이기 때문이다. 대신 불법집회에서 경찰과 군인을 패다가 잡힌 자나 다친 자가 정부와 코드가 같을 경우, 조선의 양반이 경국대전 위에 있었듯이 그들은 대한민국의 헌법 위에 있기 때문에 전원 훈방되거나 불구속 기소되거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거나 국가 유공자가 된다. 김정일이 파안대소하는 6·15 공동선언에 반대하는 우국지사는 아니다. 그들은 착한 집회에서 종이 비행기를 하나 경찰제지선 밖으로 날려도 득달같이 닭장차에 실려간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무슨 의미인지는 이쯤이면 절로 윤곽이 떠오르지 않는가.
                      (2007. 12. 8.)

[ 2007-12-08, 21: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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