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舜臣 장군이 내려다본 천안함 爆沈 사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의 휴전 상황과 현재의 휴전 상황이 비슷하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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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백령도 앞바다에서 1200톤급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피격되어 순식간에 두 동강나면서 침몰했다(백령해전 또는 제4차 서해교전).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했다.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제3차 서해교전)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군을 손쉽게 물리친 후, 이명박 정부는 경제와 외교에 이어 안보에도 자신감이 하늘에 맞닿아 G20 정상회의에 왕관을 씌울 비핵개방3000 남북정상회담을 반공개적으로 추진하다가 혼비백산했다.

 

 청와대의 권위적 판단과 독점적 예단과는 달리 처음부터 북한군의 특이동향도 뚜렷했고, 북한 관련 가능성도 아찔하게 높았다. 결정적 시기에 보고 체계에서 제외되었던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처음에는 오락가락했지만, 차츰 군사 정보를 우선적으로 또는 청와대와 비슷하게 건네받으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형식상 한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자의 증언에 이어 지진파와 음파, 함포발사, 대잠(對潛)헬기 출동, 인공위성 사진 등의 물증 등이 대부분 청와대에 곧바로 보고되었지만 싹 무시하거나 숨기고, 청와대는 지하 벙커에서 북한을 의심하지 말라는 주파수를 쏘아 올렸다. 이에 맞추어 내부 폭발설, 암초설, 피로 파괴설, 아군 기뢰설, 미군 오폭설 등이 기승을 부렸다. 칼(KAL)기 안기부 조작설처럼 이것은 백령도에서 설령 북한산 어뢰 파편이 확인되더라도 북풍 음모설로 자유통일이 될 때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이다.

 

 전사자를 순직자로 끝까지 우기면서 섭섭하지 않게 돈으로 보상하겠다며, 그들은 오른 눈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왼 눈으로는 윙크를 주고받는다. 이것은 간첩과 범법자에게 민주투사의 명예를 씌워 주는 것과는 정반대의 처사다. 군의 매너리즘을 질타하며, 군 통수권자는 적의 괴수에게 극존칭을 쓰는 안보외교수석과 국방비를 대폭 깎아 버리며 직속상관인 국방장관을 내쫓은 국방차관에게 도리어 면죄부를 주고 개혁의 칼자루를 쥐어 주었다.

 

 앞서 세 차례의 서해교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4차 서해교전 즉 백령도 해전은 400년 전 임진왜란 때와 유사한 점이 많다.

 

 첫째는 상황이다. 둘 다 휴전 중에 일어났다.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보급로를 끊어 풍신수길의 수륙양면 전술을 무력화시켜 왜적을 추위와 굶주림에 떨게 만들고, 육지에서 이여송이 대포를 앞세워 압록강을 건너오자 왜적은 평양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달아난다. 그러나 150년 내란에서 전쟁의 달인이 된 왜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기고만장해진 이여송을 벽제관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간다. 그 후로 이여송은 오금이 저려서 다시는 싸우지 않는다. 명나라는 일방적으로 왜적과 강화회담을 맺는다. 후퇴하는 왜적을 치지 말라는 이른바 금토패문(禁討牌文)을 조선 곳곳에 뿌려 왜적을 도리어 보호하고 얼레빗 왜적을 대신하여 참빗 명적(明賊)으로 조선을 속속들이 수탈한다. 주한미군이 한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침략자 북한과 1953년 휴전 협정을 맺은 것은 당시와 같지만, 미국이 반세기가 넘도록 내정은 전혀 간섭하지 않고 한국의 경제와 안보 양쪽에서 아낌없이 도와 준 점은 당시와 판이하다.

 

 둘째는 일방적인 문민우위다. 전쟁에 대해서는 기껏 삼국지연의나 들춰 본 주제에, 글로 말하면 천자문도 못 뗀 조선의 임금과 비변사의 고위관료들이 역시 글로 말하면 사서오경에 제자백가에 당시(唐詩)와 송사(宋詞), 원곡(元曲)에 25사(史)까지 통달한 대학자에게 권력을 가졌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려 먹이는 꼴이다. 당시 조정에서 군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은 유성룡 한 명밖에 없었다. 지하벙커에 모인 14명 중에 11명이 군 면제자이다. 병역의무를 마친 3명 중 한 명은 육군대장 출신의 국방장관이니까, 그는 일개 무관으로 14명 중 서열이 제일 낮다. 국방차관은 중위 출신이지만, 군 개혁의 저승사자로서 국방장관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국방예산도 마음대로 칼질할 수 있는 실세 고위 문관이니까, 실은 국방장관보다 훨씬 높다. 아마 그는 훈련병 수준도 안 되는 11명 가운데서 전문가연하며 발언권이 가장 높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별 4개 출신의 국방장관은 가장 중요한 단계에서 합참의장과 함께 대통령에게 직보한 괴이한 보고 체계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무슨 일도 일어난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 불려갔으니까, 최고 군사 전문가로서 안보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좌중을 압도할 상황에서 도리어 한참 동안 눈만 멀뚱거렸을 것이다. 나머지 13명은 척 보면 아는 천재라 그런지 대번에 ‘북한에 특이상황 없다, 북한과는 연관이 없는 듯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적을 속이는 게 군대의 으뜸 작전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인천상륙잔전으로 천재를 넘어 신의 반열에 오른 맥아더도 환호 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유격전의 대가 모택동에게 폭삭 속아 압도적인 무기를 갖고도 수만 명의 생명을 잃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자신들은 초천재니까 군대는 얼씬도 않았으되 맥아더보다 차원이 다르게 똑똑하여 모르는 게 없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맥아더는 웨스트포인트에 99.3점으로 수석 입학했다. 2등은 77.9점이었다. 그는 4년 평균 98.14점으로 졸업도 수석이었다. 역대 1위 또는 3위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런 그도 1차대전과 2차대전을 머리와 몸으로 모두 겪었지만, 미군에 비하면 과학기술이 원시 수준이었고, 무기는 1차대전 수준이었던 중공군에 여지없이 속았고 패했다. 인생도 끝장났다. 그만큼 전쟁은 어렵다. 돈 벌고 선거에 이기는 것은 전쟁에 명함도 못 내민다.

 

 출세의 지름길인 한국의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는 그야말로 달달 외는 것이므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지식정보시대에 고시 합격자는 본인의 착각과는 정반대로 조선의 문과 급제자처럼 앞뒤 꽉 막힌 자폐증 환자가 되기 딱 알맞다. 그런데 한국의 최고위급 11명 중에는 고시 출신이 누구보다 목에 힘을 많이 준다. 11명 순수 문관 대한민국 최고 권력가들은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맥아더보다 군사에 대해 더 잘 아는지, 60년 동안 군사부문만 기형적으로 발달시킨 북한군 엘리트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지, 국방장관이 시키는 대로 말하지 않으면 서슴없이 옐로카드를 보여 주면서, 구름 위에 앉아서 ‘신중히 대처하라, 엄정 조사 결과 누구든(국군을 간접적으로 지칭함)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 한 사람이라도 생명을 더 구하라, 전사자에 준하는 대접을 하라,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 등등의 알쏭달쏭 말로 대한민국 해군은 비실비실 환자복을 입혀 조롱하고 각종 음모설을 조장하고 방조하며 김정일의 정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은 지능적으로 우롱했다.

 

 셋째는 군 전력 약화다. 임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끈 수군 전력은 나라의 도움을 전혀 못 받고 장군 홀로 일으킨 것이되, 숫자로나 장비로나 조선군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1593년 6월 3일 새벽에는 맑았지만, 오후 늦게 비가 많이 왔다. 순사(권율), 순변사(이빈), 병사(선거이), 방어사(이복남) 등으로부터 답장이 왔는데, (그것들을 종합해 보면), 각도의 군마가 많아야 5천을 넘지 못하고 군량미는 거의 떨어졌다고 한다. 왜적은 날로 기고만장해져서 독사의 무리처럼 설치는데, 일마다 이러하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난중일기)

 

 初三日丙戌。曉晴。晩大雨。廵使,廵邊使,兵使,防使答簡來。各道軍馬。多不過五千。而糧亦幾絶云。賊徒肆毒日增。事事如此。奈何奈何。

 

 결국 왜적의 정보전과 이에 놀아난 선조 이하 문관들의 권력 다툼으로 조선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순신 장군을 하옥한다. 그 무렵에 조선의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들여다보던 왜적은 휴전 기간 중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진짜 조선과 명나라를 한꺼번에 삼키려고 대대적으로 쳐들어온다. (조선과 명나라는 똑같이 왕조 말기 현상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순신만 없었으면 자금성에 일본 천황이 들어가는 것은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간첩의 역정보에 이순신 장군이 말려들지 않자, 얼씨구나 선조와 윤두수와 원균은 임금의 말을 거역한다며 이순신 장군을 서울로 압송한다. 막상 이순신 장군 대신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원균은 휘하에 전함 두세 척밖에 없을 때는 심심하면 적을 무찌르러 부산까지 가자며 보채고, 술의 힘에 의존하고 조정의 권력에 기대어 이순신 장군이 비겁하다고 모함하더니, 2만의 군사에 100여 척의 전함을 갖게 되자, 술만 퍼 마시고 군인의 절반을 뇌물 받고 제대시키고 한양길을 뇌물로 가득 채운다. 존재하지도 않는 수십 만 육군과 더불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꿈쩍도 않는다.

 

 명령불복종죄로 이순신 장군을 압송한 것은 민족 자존심을 내세워 민족반역자 김정일의 무력적화통일 야욕을 부채질하기 위해 주한미군과 영원히 갈라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일은 통일 후에도 한국보다 훨씬 많은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김정일의 일면 무력증강과 일면 평화협정 운운에 장단 맞추는 것은 임란 당시에 왜적의 반간계(反間計)에 놀아나 나라가 망하건 말건 권력 다툼에 여념 없던 것과 마찬가지다.

 

 1593년만이 아니라 임란 내내 각도에 5천의 군사도 없었던 것은 노무현에 의해 군 복무를 24개월에서 18개월로 줄인 것과 비슷하다. 전력이 한꺼번에 표면상으로는 4분의 1, 실지로는 숙련도를 기준으로 하면 3분의 1이 줄었다. 법제처에서 6개월 이내는 대통령령으로 언제든지 원위치시킬 수 있다고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들은 척도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남북은 아직 휴전 중임을, 언젠가는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생각도 않고 핵무기와 미사일과 장사정포와 생화학무기 등을 머리에 이고도 당장 영구 평화라도 온 듯이, 한미연합사를 무력화시켰던 노무현 정부도 유지했던 상설 국가안보사무처를 일개 외교안보수석의 뒷방으로 보냈다. 무엇보다 독재자 김정일을 그냥 김정일도 아니고 꼬박꼬박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고 한국의 모든 매체가 합창하는 것은 베트콩이 호지명을 따르는 것이나 진 배 없다. 썩은 월남과는 달리 한국은 아시아 아니, 세계의 자랑이 아닌가. 그것은 선과 악을 뒤바꾸는 세상으로 고속열차를 놓는 짓이다. 그런 주제에 무슨 친북좌파를 굳이 탓하랴.

 

 2012년이 되면, 주한미군이 사실상 떠나가면, 오늘의 이순신 장군이 하옥되면, 한국의 전력은 절반이 아니라 4분의 1로 약화된다. 잠수함과 잠수정으로 서해와 동해를 장악하고, 제주해협으로 유유히 상선으로 위장한 북한의 군함이 부산과 마산과 창원과 포항과 울산과 광양과 여수를 동시에 노리고, 휴전선의 땅굴을 활짝 열면, 장사정포로 서울과 인천을 동시에 격침하면,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적의 조각배 하나 격침 시키지 못하고 당시 세계최강이었던 이순신의 수군을 전멸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의 비극이 발생할 것이다.

 

 명량해전으로 멸망의 벼랑에서 기사회생했듯이 한국은 그 후에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어 위대한 지도자를 갈망할 것이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미국은 손도 못 쓸지 모른다.

   (2010. 4. 28.) 이순신 장군 탄신일에

[ 2010-04-28, 09: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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