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의 《고발》,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빛
이 책에 묘사된 북한은 ‘아우슈비츠+굴라그(소련 수용소군도)+조지오웰의 《1984》’의 총 합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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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고발》. 조갑제닷컴 출판. 저자는 반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작가라고 한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그는 알았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북한이란 곳이 온몸을 흔들어 “이건 아니야!”라고 외쳐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자료를 모았고, 그것을 엮어 소설을 썼다. 그 원고가 최근 탈북자의 손을 거쳐 서울에서 출간 되었다. 한국문학사상 특기할 사건이었다.

첫 번째 단편 ‘탈북기’의 주인공 ‘나’의 성분(成分)은 이른바 ‘적대군중’이다. 아버지가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몰려 처단된 집안이다. 북한사회에선 말하자면 ‘불가촉천민’인 셈이다. 그런데 그 아내의 출신성분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 내외는 사랑으로 맺어졌다. 어느 날 남편은 우연히 방구석에서 피임약을 발견한다. 아내가 피임약을? 아니, 아이 없는 집 아내가 왜 피임약을? 오라, 나 같은 ‘까마귀’ 자식을 낳지 않으려고! 그는 분노로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그에겐 더 큰 분노가 밀려왔다. 부문비서가 ‘나’ 몰래 아파트로 찾아와 아내를 만나고 가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부문비서는 아내를 탐했고, 아내는 남편의 입당(入黨)을 위해 부문비서의 환심을 사야만 했던 것. 그래서 그녀는 만약을 위해 피임약을 준비했고, 조카아이를 항상 곁에 불러다 두었던 것이다. 아내는 이 사실을 일기장에 꼼꼼히 적어놓았다가 분노한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부둥켜 앉고 울다가 드디어 탈북을 결행했다.

마지막 단편 ‘빨간 버섯’ 역시 숙청 이야기다. 주인공은 기자 허윤모. 그의 취재 대상 고인식에 관한 이야기다. 고인식은 친척이 월남(越南)한 사실을 고하지 않고 살다가 들켜버렸다. 그 길로 압록강 근처 산골마을로 강제이주를 당하고 된장공장 기술담당으로 쫓겨갔다. 된장생산은 이미 끊긴지 오래, 그런데도 허윤모 기자는 당의 지시로 “마침내 된장공장 복구”라는 기사를 작성해야만했다.

이 무렵 고인식은 산속 ‘원료기지’로 들어가 귀틀집에서 합숙을 하며 밭을 가꾸고 나물을 캐는 작업에 몰입하고 있었다. 완전히 뼈골  빠지는 최하계층의 인생이었다. 숙청된 자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그의 아내는 “하루빨리 당신이 이전 생활로 돌아가기를”이란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지 오래.

 ‘원료기지’ 합숙자들은 저 멀리 시내에 보이는 시당(市黨) 건물을, 먹으면 죽는 ‘빨간 버섯’이라고 불렀다. 건물이 빨간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이란 것을 빨간 독버섯처럼 사람 죽이는 장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신분사회 북한에서 최하계층이 던지는 원한의 절규인 셈이었다.

그렇게 묵묵히 일만 열심히 하던 고인식은 그러나 된장 생산 부진의 책임을 그에게 떠넘긴 시당 간부들의 음모로 ‘직무태만’이란 죄목을 쓴 채 인민재판정에 끌려간다. 거기서 그는 소리친다. “저 빨간 버섯, 저 독버섯을 뽑아 버려랴,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영!” 기자 허윤모는 정신적 공황에 빠져 인민재판정 한 귀퉁이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독자인 우리가 말할 차례다. 저런 북한의 현실을 두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명박 시대를 “민주주의의 후퇴…” 그리고 박근혜 시대를 “유신의 부활…”이라고 하는 일부 지식인들부터 뭐라고 말 좀 해보았으면 한다. “자본주의 남한의 소외된 민중의 고통에 동참한다”고 하는 이 땅의 참여문학은 이보다 훨씬 더한 고통의 땅 북한의 핍박받는 민중의 고통에 대해선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반디의 단편집에 묘사된 북한은 ‘아우슈비츠+굴라그(소련 수용소군도)+조지오웰의 《1984》’의 총 합계다. 이거야말로 오늘의 지식인들이 “종은 누구를 위해 울리나?”라고 외치고 행동해야 할 반인도(反人道) 범죄의 극치 아닌가? 반디의 《고발》은 ‘이곳, 지금(here, now)’을 사는 지식인들을 양심의 검색대로 다가오게 만들고 있다.

류근일 2014/5/16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목숨을 담보로 몸보다 먼저 탈북시킨 작품

북한체제를 통렬하게 비판·풍자한 북한 현역작가의 단편 소설 모음집 《고발》(332쪽, 1만2천원, 반디著, 조갑제닷컴)이 출간됐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와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출판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북한에 살고 있는 작가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폭압적이고 반민주적인 체제를 고발하는 작품을 출판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한의 공인公認 작가 단체인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인 저자 ‘반디’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을 지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배고픔과 체제 모순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체제 고발을 위한 펜을 들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이 실제 겪고 있는 고통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을 수집하여 작품에 녹였다.


원고 입수 과정: 《김일성 선집》에 싸여 넘어오다

언젠가 때가 올 것이라는 믿음 속에 작품을 하나둘씩 쌓아나갈 즈음, 평소 반디와 교분을 나누고 있던 친척 중 한 명이 탈북 결심을 털어놓는다. 처자식이 있는 반디는 자신이 움직이기에는 제약이 많다고 생각해 친척의 탈북에 자신의 작품을 맡기기로 한다. 원고를 받아든 친척은 지금은 자기도 빠져나간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으니 탈출할 길을 마련하고 다시 오겠다는 기약을 남긴 채 떠났다.

수개월이 지난 후 낯선 청년 한 명이 반디의 집으로 찾아와 말없이 편지를 건네주었다. 탈북에 성공한 친척이 쓴 편지로, 청년에게 원고를 건네주라는 내용이었다. 반디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원고 뭉치를 꺼내 주었고, 그의 작품은 《김일성 선집》 등에 싸여 중국을 거쳐 자유와 희망의 땅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최고의 문학적 선동

반디는 일곱 편의 단편을 <탈북기>에서 시작, <빨간 버섯>으로 끝나도록 배열했다. 탈북이라는 소극적 저항에서 독재타도의 외침으로 발전하도록, 의도적으로 순서를 매긴 것으로 보인다.

대물림되는 ‘출신 성분제’에 절망하며 탈북을 결심하는 <탈북기>, 마르크스와 김일성 초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 때문에 덧커튼을 달았다가 평양에서 추방당하는 <유령의 도시>, 해방 후 첫 공산당원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하던 ‘마차 영웅’이 공산주의의 미래가 신기루였음에 좌절, 아끼던 느티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리고 죽는 <준마의 일생>,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여행 제한’으로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아들의 사연을 다룬 <지척만리>, 길을 가다 우연히 김일성을 만난 할머니가 ‘어버이 수령님’의 자애로움을 선전하는 자료로 이용되는 과정을 그린 <복마전>. <무대>는 보위부원 눈에 비친 북한 체제의 연극성이 주제다. 마지막 단편인 <빨간 버섯>에서 반디는 본색을 드러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산실産室인 당사黨舍를 타도하자고 외친다. 적어도 반디의 상상 속에선, 프롤레타리아 독재 타도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피눈물에 뼈로 적은’ 소설

《고발》의 가장 큰 의미는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비판정신의 소유자가 목숨을 건 글쓰기를 했다는 점이다. 반디가 《고발》 때문에 체포된다면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될 가능성이 높다. 독자들은 반디가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글을 쓴 동기가 분노였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이 소설은 북한 사람들이 읽을 때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북녘 상황에 분노하는 문학인이 적었다는 점, 소설과 시의 소재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했다는 점은 한국 지성사知性史의 가장 큰 오점일 것이다. 서구 지식인의 가장 큰 타락이 스탈린의 대학살을 비호한 것이었듯, 한국 지식인의 가장 큰 타락은 김일성을 비호하고 주체사상을 비판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디의 《고발》은 잔인한 압박을 이겨낸 인간승리이자 문학의 존재증명이며, 북한체제뿐 아니라 남한 지식인에 대한 고발장이다.


| 책속으로 |

149호!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도장도 그저 도장이 아니라 목장에서 가축들의 잔등에 지워지지 않게 불에 달구어 찍어대는 쇠도장이었다. 옛날엔 노예들에게도 찍었다던 그런 무서운 철인鐵印이 지금 민혁 아버지와 그의 삼촌은 물론, 민혁의 여린 잔등에까지 깊숙이 찍혀져 있는 것이었다.
-44페이지 <탈북기>

나도 모르게 내 아랫배를 더듬었다. 결혼 후 뒤늦게이긴 하지만 새 생명이 움터 자라고 있었다. 부끄러워 아직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있던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 생명을 낳을 때 어미는 그 생명이 복되기만을 바랄 것이다. 한평생 가시밭을 헤쳐야 할 생명임을 안다면, 그런 생명을 낳을 어머니가 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만약 그런 어머니가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이기 전에 죄인 중에서도 가장 잔악한 죄인이 될 것이다. 오늘 내일 중으로 꼭 산부인과에 가야겠다.
-45페이지 <탈북기>

“저기 저 마르크스가 내놓은 모든 이론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론이 뭔지 아오? … 그건 자본론도, 과학적 공산주의 건설이론도 아닌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이오.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게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이 도시 사람들은 누구나가 ‘토영삼굴兎營三窟을 따르며 살고 있는 거요.”
-69~70페이지 <유령의 도시>

이밥이며 기와집이며 주렁지게 달린다는 열매들을 바라고 한뉘를 허위단심 달려온 자기에게, 그 열매들 대신 차디찬 쇠붙이만을 이마빡에 달아준 병신 같은 저놈의 느티나무를 선로공들에 앞서 자기가 요절내고 싶었노라고….
-111페이지 <준마의 일생>

송아지 눈처럼 순박해 보이는 그의 눈자위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글썽거렸다. 솔뫼라는 고향이 그 어디 도쿄나 이스탄불이라도 된단 말인가! 제 나라 제 땅 안에 있는 고향이 이처럼 아득하고 막막한 곳이 되었다니…. 허락한다면 천리든 만리든 걸어서라도 떠나보련만 그마저 허용하지 않는 ‘여행 질서’였다.
-125~126페이지 <지척만리>

갑자기 치미는 자격지심에 심장의 피가 왈칵 끓어올랐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도둑질을 했나, 살인을 했나? 내 나라 내 땅에서 어머니 병문안 가는 게 이리도 죄란 말인가, 이리도!’
-134페이지 <지척만리>

합치면 구천에도 차고 넘칠 그 고통의 아우성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밖에선 지금 저처럼 ‘행복의 웃음’ 소리만이 누리를 울려대고 있는 것이냐! 그것도 결국은 양쪽 손톱을 동시에 뽑히는 듯 한 고통을 당한 오 씨를 선창자로 하는 ‘행복의 웃음’ 소리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잔학한 마술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뭇사람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행복의 웃음’으로 둔갑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180페이지 <복마전>

“지금 저 조의장弔儀場에선 벌써 석 달이나 배급을 못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꽃을 꺾으려고 헤매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예?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로 만들어 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214페이지 <무대>

홍영표는 바로 남편이 현재 정치범 수용소에 가 있는 큰 숙이 어머니나, 제일 굶는다 죽는다 하는 해주댁 같은 사람들의 조의弔意 모습을 특히 눈여겨보고자 조문객들 속에 스며들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막상 단위에 꽃송이를 놓고 “어버이 수령님!”하며 묵도를 시작하는 큰 숙이 어머니와 마주 하는 순간 홍영표는 불시에 등이 으쓸해졌다. 정말 그녀의 두 볼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녕 그것이야말로 홍영표가 지금껏 생각해본 일도 없었고, 설사 생각해 보았댔자 믿을 수도 없었을 몸서리나는 광경이었다.
-218페이지 <무대>

허윤모의 질척한 시선은 조금 전 고인식이 군중의 머리 너머로 바라보았을 것이 틀림없는 시당 청사-빨간 버섯-를 직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저 독소毒素에 희생되고 있는 것인가! 과연 그 사자머리의 마도로스 파이프가 지껄였다던 구라파의 붉은 유령이 이 땅에 뿌린 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禍根인 저 빨간 버섯의 씨앗 따위였단 말인가! 으스러지게 주먹을 들어 쥐고 ‘벽돌집’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허윤모의 가습 속에는 고인식이 미처 외치지 못한 절규가 처절하게 울려오고 있었다. “저 빨간 버섯, 저 독버섯을 뽑아버려라.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영!”
-277페이지 <빨간 버섯>

<북녘 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 재능이 아니라 의분(義憤)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草原)처럼 거칠어도 병인(病人)처럼 초라하고 석기(石器)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 다오(반디 ‘서시序詩’)>
-307~30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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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도시
준마의 일생
지척만리
복마전
무대
빨간 버섯
부록
비화│북한현역작가의 북한체제 비판 소설은 이렇게 넘어왔다_김성동金成東 월간조선 기자
해설│피눈물에 뼈로 적은 고발장_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독후기1│읽기가 불편한 소설_이지영李知映 조갑제닷컴 기자
독후기2│불쌍한 사람들_김청솔
독후기3│솔제니친 vs 북한의 반디_김광진金光進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토속어·북한말 소사전



| 저자·반디 |
1950년 生.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 2014-05-16, 14: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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