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도 좋지만 안전이 우선이다"
크루즈 여행(2편)/내비에서는 갈 길이 280km나 남았다고 나온다. 딸애는 속도를 더 올리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자동차 추적 장면에서만 봤던 그 속도를 처음 경험했다. 180km에 근접하자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조약돌(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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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을 먼저 읽은 후에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이제 우리 가족의 구체적 여행에 대하여 소개할까 한다.
  
  우리 가족은 금번 여행을 위하여 전 가족 여권과 오지리 거주증, 그리고 크루즈 예약 및 대금 지불 영수증을 챙기고 여행 중 입을 겉옷(동복/춘추복/하복)과 내의, 구두와 운동화를 준비하였다. 만찬이나 무도회 참석 시에 필요한 정장을 준비하도록 하는 안내에 따라서 딸 내외는 정장을 준비하고 필자 내외는 약복만을 챙겼다. 헬스용 반바지, 반팔 셔츠, 수영을 하려면 수영복도 구비하면 좋다. 현지에서 사용할 유로화 현금과 신용카드도 챙기고 또한 선글라스, 세면도구(치약/칫솔, 면도기만 챙기면 나머지는 배에 구비되어 있다), 비상시 구급약도 준비했다(선내에 진료실 및 약국이 구비되어 있지만 유상이므로 개별 준비를 권고한다).
  
  처음에 비엔나에서 출항지까지 왕복 교통편으로 항공편을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봤다. 운전하는 부담과 소요 시간들을 감안하면 항공편이 편할지 모르나 육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풍경도 감상하고 더욱이 우리는 출항 하루 전에 미리 떠나서 베니스(베네치아)에서 1박하면서 관광 후에 다음 날 시간 여유를 갖고 항구로 출발하기로 일정을 잡고 승용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베니스는 과거 유럽 패키지 여행 때 이미 봤으니 안 봐도 그만이지만 딸 가족이 정한 일이니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출발 며칠 전 옆집 98세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나서 인사를 하면서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천천히 손을 흔들어 줬다. 여행 전날 장기간 집을 비우는 관계로 앞집에 부탁을 해놨다. 이웃 사촌이라는 목가적인 오지리 풍경이다. 경찰에 알리면 경찰차가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아준다는데 수고를 끼칠 필요가 없다고 보고 경찰에는 알리지 않았다. 다만 만일에 대비하여 야간에 일정 시간 단위로 자동적으로 전등이 들어오도록 되어 있는 타이머 장치를 가동시켜놨다.
  
  2월 17일(금)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다. 아침 겸 점심 식사는 이동 중에 차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김밥, 유부초밥과 과일, 간식과 물도 한 박스 8인승 SUV 차량에 싣고 09:00에 딸애가 운전하여 베니스로 출발을 하였다. 베니스까지 650 km 거리이니 아마 서울에서 일본 후쿠오카 정도 거리쯤 되나? 예상 소요 시간을 6시간으로 잡았다. 비엔나 시내를 빠져나가 고속도로로 진입하는데도 톨게이트가 없이 그냥 달린다.
  
  우리 차가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몇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140km가 최고 속도 한계 구간이었다. 딸은 140km에 속도를 세팅하고 계속 달려나갔다. 한국에서라면 허용되지 않는 속도다. 속도가 100km 로 제한되는 구간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런 구간과 때로는 속도를 올리는 뒤차들을 추월시켜주고 열 받은 엔진도 식힐 겸 가끔씩 2차선으로 양보할 때 외는 계속 135~140km였던 것 같다. 손녀가 부르는 노래와 재롱을 보면서 차내에서 식사도 하였다. 뒷좌석에 혼자 앉은 손자 녀석은 질주 내내 거의 꿈나라를 헤매는 것 같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이 아직도 눈 덮인 알프스 連峰들이 계속되고 알프스 스키장으로 향하는 스키 패드를 차 위에 탑재한 차량들이 끝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출발 시점에서 50유로어치 기름을 넣고 5시간 남짓 달려서 오지리를 벗어나고 국경을 통과하는 줄도 몰랐는데 이태리에 진입한 것은 톨게이트가 비로소 나타났기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오지리는 부자 나라여서 고속도로 통행료를 안 내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게 아니라 1년치 80유로를 내어 스티커를 앞 창에 붙이면 1년간 무제한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제도로 우리도 도입을 검토해 볼 만하다.
  
  이태리의 통행료 징수 방식은 한국과 같았다. 이제 한 시간 남짓 더 달리면 오늘의 목적지인 베니스에 도착하게 된다. 셀프 주요소에서 기름을 다시 넣고 모두들 화장실도 다녀왔다. 딸애가 예약한 호텔은 베니스 시내에서 20km 가량 떨어진 외곽에 있었다. 내비게이션과 GPS가 없으면 찾아갈 수도 없는 한적한 교외의 4성급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니 1700시가 되었다.
  
  우리는 베니스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호텔을 나섰다. 30km 정도를 달려서 베니스 초입에 도달한 우리는 주차 타워에 주차를 한 후에 수상(水上) 버스로 열 정거장쯤 타고 내렸다. 지난 번 패키지 여행 왔을 때 곤돌라를 탔던 곳 같다. 동승한 악사와 가수가 함께 불렀던 산타루치아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밤은 제법 깊어가는데 딸애는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고 가도 가도 더 가야 한다고 발걸음을 재촉한 끝에 원하는 식당에 도착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식사였지만 얻어먹는 입장이니 맛 있다고 겉치레 인사를 하고 받아 든 청구서를 보니 여섯 식구 식사비로 160 유로(한화 20여만 원)가 나왔다. 15만 원 정도를 예상했는데 다소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산서를 들여다 보니 음식값과 봉사료 이외에 1인당 5 유로씩 베니스 관광세(稅)가 포함되어 있었다. 여행객 주머니를 터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1인당 7 유로로 기억되는 수상 버스 승차권은 왕복권이었지만 돌아 나오는 길은 관광 겸 걸어서 가자는 사위의 제안에 유아원생 손녀 딸을 어르고 달래며 걸리다가 업고 하면서 거의 한 시간 이상을 이국 땅 베니스의 밤 골목을 마냥 걸어야 했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에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닌 안개비를 맞으며 걸어도 걸어도 미로와 같은 길을 GPS 에 의존하고 걷다 보면 막다른 골목, 무던히도 길을 찾아 헤매다가 거의 녹초가 된 후에야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잊지 못할 추억을 했다고 위안을 삼으면서 다시 20여 분을 달려서 호텔로 돌아와서 골아 떨어졌다.
  
  드디어 유람선을 타는 날이 밝았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일행은 0940에 사보나 항구로 출발을 하였다. 자동차 내비가 보여주는 계산상으로는 1500 시가 ETA 로 나온다. 우리가 가져와서 마시다 남은 물은 배에 가지고 승선할 수가 없기 때문에 차에 두고 내렸다가 일주일 후 돌아갈 때 마시기로 했다.
  
  물 얘기가 나왔으니 잠시 두 가지만 여담으로 소개하고 넘어갈까 한다. 처음 말하고자 하는 물은 유럽에서의 음료수(음용수)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변형된 형태의 또다른 물, 소변에 관련된 우화다.
  
  크루즈 여행선 내에는 공짜로 마실 수 있는 식수대(수도)는 없다. 모든 승객은 한 가구 당 40 유로씩 물값을 선불로 예치를 하고 그 금액 범위 내에서 병에 든 생수를 필요시마다 제공받게 된다. 그렇기에 외부에서의 물 반입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유럽을 처음 방문한 한국인이 갈증이 나서 한국의 대도시 공원이나 공공 기관에 비치된 음용수 식수대와 같은 곳을 찾을 길이 없어서 식당이 있길래 들러서 물 한 잔만 얻어 마실 수 없느냐고 물으니 정중하게 얼음까지 넣어서 갖다 주었다고 한다.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려고 하는데 불러 세우더니 5 유로가 적힌 계산서를 내밀어서 꼼짝 없이 6000원 정도를 뜯기고 나오고서는 하는 말이 유럽 인심 한번 야박하다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디서나 공짜 물과 무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음식을 시키면 반찬은 무한 리필, 어디 그뿐인가! 숭늉 커피마저 공짜로 제공되는 대한민국은 헬 조선 어쩌니 해도 아직까지는 살 만한 나라다.
  
  외국 어느 나라에 거주하는 한인회(韓人會)에서 연말 송년회가 한인 회장 자택에서 열린다고 초청장이 왔다. 세탁소를 하는 P씨가 친하게 지내는 A씨에게, ‘ 그날 자기 차로 함께 가지고 말했더니 아직 자기는 초청장을 못 받았는데 받게 되면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송년회 당일 파티장에서 A씨를 보지 못한 P씨는 한인회장에게 A 씨가 안 보인다고 그 까닭을 물었더니, 회장이, 그 친구 사격술이 나빠서 금번 송년회에는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회장 밑에서 총무로써 수족 역할을 해온 A씨를, 그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총 솜씨 때문에 초청하지 않았다니 당최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안 되어 구체적인 연유를 물었다고 했다.
  
  "그 친구 얼마 전에 내가 우리 집으로 저녁 초대를 해서 왔는데 그가 다녀간 후에 화장실 카펫에서 악취가 진동하여 그거 세탁하느라고 고생했다."는 것이었다. 좌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본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서서 갈기다가 오줌 방울이 튀었거나, 아니면 거나하게 취한 나머지 조준이 빗나가서 바닥에 흘려 놓은 것 때문에 그가 돌아간 후에 자신의 큰 딸에게 책망을 들을 후에 그를 앞으로 자기 집에서는 안 보기로 했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들은 P씨, 아내가 그렇게 부탁해도 장부가 궁둥이를 까고 소변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애써 무시해서 ‘서서 쏴‘를 고집해 왔는데 가슴이 뜨끔하더라는 것이었다.
  
  어떤 한가한 사람이 조사했는지, 아니면 웃자고 한 조사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남성들 중에 집에서 소변을 좌변기에 서서 본다는 사람 비율이 아직까지는 42%에 달한다는 통계를 보고 웃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남의 소변을 닦아내야 하는 당사자로서는 결코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오지리 인들은 가정에서는 물론, 유아원에서부터 좌변기에 소변을 볼 때는 남자 애도 앉아서 보도록 화장실 이용법을 가르친다고 들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베니스에서 사보나까지는 달리고 달려서 어느덧 1400시가 지났는데도 내비에서는 갈 길이 280km 나 남았다고 나온다. 사보나 도착은 문제가 아니지만 시가지를 통과하려면 30~50km 저속으로 얼마를 달려야 할지, 게다가 도착 후에도 유럽 각지에서 크루즈 여행을 위하여 몰고온 수백 대, 어쩌면 1000대가 넘는 차량이 부두 앞 주차장에 주차하려고 밀려 있을 텐데 거기서 또 시간이 얼마나 지체될지 자칫 출항시간을 놓지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딸애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속도를 더 올리는 것이었다. 물론 앞 차가 속도를 올려서 차간 간격이 충분하니 따라서 올리는 것이겠지만 내 평생에 그런 스피드는 처음 경험했다. 영화에서 자동차 추적 장면에서만 봤던 그 속도를 처음 경험했다. 그 속도에도 차는 안정적이었지만 180km에 근접하자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크루즈도 좋지만 안전이 우선이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고 약간은 속도를 늦췄지만 그 후에도 서너 번은 160km에 접근했던 것 같다.
  
  좋은 소리도 한 번이면 족하지 운전하는 딸애는 얼마나 더 마음 졸일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서 운전대를 잡은 사람의 신경을 거스르는 말은 더 이상 못하고 대신에 나는 양손을 모으고, "하느님, 모든 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맡기오니 지금이 저희 식구들을 한꺼번에 데려갈 그 순간이라면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헛 기침을 하면서 기도를 한 것이 고작이었다. 딸애의 과속은 아비인 저가 교육을 잘못 시킨 죄가 큽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다짐하오니 독자 여러분, 용서바랍니다.
  
  그런데 이태리는 왜 이리 터널들은 많은지 수십 개의 터널을 통과했지만 끝도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터널이 계속되었다. 도대체 우리가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하는 것인지 돌아갈 때는 참고로 헤아려 봐야겠다. 마음이 다급한 딸애는 터널을 달리면서도 차선 변경과 추월을 반복할 정도로 우리는 절박한 입장이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의 교통 법규 중 우리나라와 다른 것 한 가지는 터널 안에서도 추월이나 차선 변경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사보나 시에 도착하니 주말인데도 기어 나온 차가 왜 이리 많은지 차들이 속도를 내지 못했다. 굼벵이처럼 기어서 겨우 겨우 16:10경에 항구 앞에 도달했지만 주차장이 어딘지 좀 헤매다가 부두 종사원에게 물어서 지하 주차장 앞에 도착하였다. 주황색 재킷을 입은 발리 파킹 운전사들 수십 명이 일렬로 대기하고 있었다. 꼬리를 물고 입고되는 차량 순서대로 차의 키와 일주일간의 주차료 84 유로를 선불로 지불하고 나니 1630분이 넘었다. 여기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처럼 80분의 여유 시간이면 충분할 것으로 계획했다가 무리하게 내달리며 위험을 자초하기보다는 좀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도착할 수 있도록 계획하시라는 점입니다.
  
  출항 30 분 전에 승선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1300시부터 승선이 시작된 관계로 탈 사람은 이미 대부분 승선을 완료한 상태여서 그런지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250여 명 정도가 줄을 서고 승선 중이었다. 방 번호가 기재된 태그를 붙인 휴대품 짐들은 승무원들이 화물 승강기로 방까지 배달해 준다고 배에 타기 전에 미리 배 앞에 늘어놓으라고 해서 우리는 빈손으로 탑승수속을 받으면 됐다.
  
  외국에서 항공기를 탑승할 때와 꼭 같은 보안 검색 절차를 마치고 나니 이어서 보딩 사열이 실시되었다. 여권과 탑승권을 제시하였더니 항만 출입국 관리 직원(?)이 입국 사증과 입국 사열 스탬프를 유심하게 살펴본다. 상륙지가 이태리가 아니라 독일(뮌헨)인 것과 체류 기간 3개월이 넘었음에도 입국 사증이 없는 것이 이상했는지 어디에서 왔으며 비자는 왜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네 살짜리 손녀까지 온 가족이 재빨리 오지리 그린카드를 제시하였더니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여권과 그린 카드를 그들이 보관하고서는 보관증과 더불어 코스타 카드를 인원수대로 주는 것이었다.
  
  신용 카드 크기의 바 코드가 새겨진 코스타 마그네틱 카드에는 국적과 성명, 여행기간, 탑승선박, 탑승위치, 발급회사, 전화번호 등이 새겨져 있는데 이 카드는 배에서 승선 및 하선(중간 기항지 포함)시 카드 Reader로 스캔 체크는 물론, 신분증이 없는 승객들이 중간 기항지 국가에서 불심 검문 시에 선원수첩과 같은 신분증 역할을 하고, 선상에서는 현금인출 카드, 자기 방의 출입문 키, 각종 서비스(음주, 세탁, 현금 인출 등) 신용카드 역할, 식당 이용 등 거의 모든 곳에 사용되는 ID 대용이었다. 일단 코스타 카드를 받고서는 발걸음도 가볍게 우리 식구는 드디어 배에 탑승을 완료하였고 꿈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3편에 계속)
  
  
  
  
  
  
언론의 난
[ 2017-03-20, 20:52 ] 조회수 : 1404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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