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방법
요양원 구석에 버려져 있다가 소리 없이 죽은 그 노인을 자식도 손자도 그 누구도 애도하지 않았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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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장의 12번 소각로에서 한 노인이 연기로 변해 허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요양원 구석에 버려져 있다가 소리 없이 죽은 그 노인을 자식도 손자도 그 누구도 애도하지 않았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묵묵히 남은 의무를 기계적으로 이행할 뿐이었다. 노인은 자식들에게 원망이고 애물단지였다. 나이 육십이 훌쩍 넘은 가난한 딸이 혼잣말로 탄식같이 중얼거렸다.
  
  “아버지, 어려서 엄마나 나를 그렇게 때리지 말고 좀더 사랑해 주지….”
  
  딸의 얼굴에 안타까운 회한의 표정이 떠오른다. 아버지와 즐거웠던 한 때를 떠올리려고 기억의 바닥까지 파헤쳐도 그게 없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이번에는 오십대 말의 아들이 소각로 앞 대기실에 있는 죽은 노인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버지, 아버지는 빈민촌 판자집에서 노동을 하러 나가지 않고 있다가 쌀독에 쌀이 떨어져야만 겨우 나가서 품을 팔았잖아? 새끼들이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엄마가 추운 겨울에 리어커를 끌고 노점상을 하러 나갔다가 쓰러져 죽었잖아요?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 나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맏아들인 내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엄마가 죽은 것도 전혀 몰랐어. 아버지 나도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공부해서 성공하고 싶었어요. 저녁 때 판자집 구석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 걸 아버지가 보면 뭐랬어요? 공부는 해서 뭐하느냐고 하면서 못마땅해 했죠? 죽으면 사람이 다 똑같아진다고 그랬죠?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다 똑같다고 그까짓 공부는 해서 뭐하냐고 말이예요. 자식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까 가난이 대물림을 하는 거잖아요? 아버지 조금만 더 잘해주지 그랬어요.”
  
  평생을 목수로 살았던 노인은 영정사진 뒤에서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와 손녀를 무심히 보고 있었다. 이제 죽은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자식들을 보고 있는 것일까. 이윽고 화장이 끝이 나고 스테인리스 스틸판 위에 한 무더기의 뼈가 나왔다. 고열의 불 속에서 육체는 거의 다 없어지고 칼슘의 잔해인 까칠한 표면의 뼈만 남았다. 저 뼈들이 80년 한 인간의 허우대를 떠받치고 오던 중심 기둥인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가족에게 확인을 마친 뼈는 기계 속에서 들어가 일분도 채 안 되는 순간 회색의 가루가 되어 단지 속에 들어가 가족에게 넘겨졌다. 불행한 한 노인의 물거품 같이 허무한 인생이었다. 의미 있는 인생은 돈과는 상관이 없었다.
  
  재벌 회장의 장례식장을 갔었다. 그는 서울의 부자들이 사는 동네의 넓은 잔디밭이 깔린 집에서 개 한 마리, 가정부와 노년을 고독하게 살고 있었다. 성 같은 그의 집은 디킨즈의 소설에 나오는 스쿠리지 영감의 집처럼 그늘지고 서리가 내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좀더 많은 재산을 얻어내기 위해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노인의 장례식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누구 얼굴에도 노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표정은 없었다. 늙은 부인조차 영감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돌아오면서 나는 새삼 느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족에게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사랑을 새겨 넣는 일이었다. 마음이 담긴 따뜻한 미소로, 물 한 잔으로, 한 권의 책 선물로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동시에 그것은 한 인생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 작품들이 보석 같은 눈물로 변해 죽은 그의 영혼 앞에 놓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모든 진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한 마디에 압축된다고 했나 보다.
  
  
언론의 난
[ 2017-04-20, 01:53 ] 조회수 : 1021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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