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연보호는 진보주의로 인식되고 있는가
理念이란 무엇인가 (24) 이념과 자연보호

朴京範(소설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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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 앞에 정정당당해야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동물에 대한 사랑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충분한 다음에야 의미가 있다고 하였지만 인간이 항상 절대우선일 수는 없으니 여기에도 세밀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인간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대해서는 예외이다.

짐바브웨에서 보호 중인 사자를 사냥으로 죽인 미국의 치과의사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동물에 관심을 두려면 전쟁에 고통 받고 죽어가는 인간을 생각하라는 반론이 있었다. 그러나 비난과 시위만으로 전쟁이 종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애초에 비교하는 자들이 몰상식하다고 볼 수 있다. 동물에 관하여 잘못된 행위를 한 인간에 대해서 그에 걸맞은 비난은 불가피하다.

맹수를 총으로 사냥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로서 영혼성장을 추구하는 正道理念(정도이념)에도 맞지 않는다. 사람은 때로 水滸志(수호지)의 武松(무송)처럼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는 용맹도 가능하다. (중국동북이 아니라 수호지의 배경인 중국본토에 서식했던 호랑이 아종은 작아서 인간의 상대가 될 수 있으니 실현가능하다.) 하지만 총이란 도구를 써서 상대가 저항할 수 없는 원거리에서 맹수를 이기는 것은 자랑할 것이 못된 것으로서, 술을 마셔서 가짜 성취감을 느끼거나 게임을 하면서 가짜 승리감을 느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 용맹을 과시하려면 짐승의 발톱에 해당하는 단검만을 가지고 싸워 이긴다면 인정받을 것이다.

자연보호는 진보주의 개발사업은 보수주의

千聖山(천성산)의 도롱뇽을 구하기 위한 한 여승의 단식투쟁은 유명하다. 경제적 피해만을 가지고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왜 자연보호는 진보주의이고 工事(공사)의 진행은 보수주의로 인식되고 있는가의 해명이 필요한 경우이다.
생명존중이라는 理想(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개발을 막고 자연그대로 살아가자는 것은 얼핏 인간의 생활을 원시시대로 돌리자는 것 같아 진보라는 관념과는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보이념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인간세상의 상태를 실제보다 진보된 것으로 보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사상이다. 이럴 때 적용되는 진보사상은 현재 우리 인간의 사회가 충분히 진보되어서 현재의 살아가는 환경에 만족할 수 있으니 구태여 더 잘 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며 개발 사업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진보적 사상의 주장은 사회성장을 위한 노력이 前提(전제)되어야

물론 비판적으로 볼 때 현재 우리의 사회가 과연 만족할 만한 풍요를 누리고 있는가에 관하여 의문이 난다. 그러한 풍요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물질에 만족하고 다른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중생이 모두 해당 승려와 같은 영적수준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수준의 가치관을 사회전체에 요구하기는 어렵다. 인생이 어느 교과목의 수업이라고 비유될 때 고증학생 수준에 있는 자가 초등학생 수준에 있는 자에게 열심히 공부하여 어서 고등학생이 되라도 권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초등학생에게 당장 고교과정을 공부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진보적 사상의 주장은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 만큼의 사회성장 즉 대중의 소양수준의 격상을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그 정당성이 있다. 한글전용의 어문정책으로 대중의 수준을 낮추고 있는 한국의 자칭진보좌파세력이 주장하는 각종의 진보적인 사회제도가 거의 모두 실현성이 없고 부작용을 일으킬 뿐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이런 때문이다.

자연보호가 保守主義이고 개발공사가 進步主義일 수도 있어

개발공사의 진행은 아직 우리사회가 충분히 물자부족의 걱정 없이 잘 사는 상태가 아니므로 더 많은 개발공사를 진행하여 우리사회의 물자를 풍요롭게 하고 이윽고 물자의 획득을 제일의 목적으로 추구하는 사회가 아닌 善行(선행)의 교류를 제일목적으로 하는 사회가 되는 길을 열자는 것으로서 일단은 보수주의적인 관점이다.
그런데 고속철 등 교통 환경의 향상을 위한 각종 공사의 추진에 관해서는 인터넷 정보전송이 발달된 지금 사람이 빨리 오가는 교통수단의 필요성이 절대적인 가치가 아닐 수 있다. 혹시 첨단기술의 활용 그 자체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아닐까도 한다.
국토의 근간이 되는 산맥 등을 뚫고 직선도로를 곳곳에 설치하는 것은 이 땅의 精氣(정기)를 바꾸는 것이 된다. 이런 경우 자연의 보전이 보수주의가 되고 공사의 진행이 진보주의가 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러한 관점을 理念(이념)의 定義(정의)에 대입시키면 아직 이 땅의 환경에서의 영혼성장교과과정을 충분히 많은 영혼들이 수료하지 않았으니 더 오래도록 이 땅의 교육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보수주의이다. 반면에 이제 이 땅이 제공하는 영혼성장교육과정은 이미 履修(이수)한 영혼이 충분히 많아 세상은 한 단계 다음의 미래세상으로 변화되어야 하므로 그간하지 못했던 다른 방식에 의한 영혼수련을 하게 하거나 아예 다른 영혼들을 위한 새로운 교육환경이 요구된다고 보는 것이 진보주의이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자연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특히 발달한 것은 통신수단이다. 그것도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예전에 누리지 못했던 것을 한 생애 중에 새로이 겪게 되니 더욱 경이로운 것이다.
이삼십년 전의 세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과의 연락이 닿지 않아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기억을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통신의 발달보다 먼저 이뤄진 자동차의 증가로 인해 90년대 초에는 약속장소로 가는 승용차가 막혀 갑작스런 시간의 손실은 물론 쉽게 회복되지 않는 오해도 많이 일어났다.
만약에 정보통신이 교통수단보다 먼저 발달했다면 사람들이 구태여 오가지 않아도 많은 일이 처리 가능해져서 교통수단은 오늘날만큼 발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보통신이 교통수단보다 후에 발달한 것은 교통수단의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게 하려는 神(신)의 계획일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정보전송이 발달한 것은 인간이 급히 오갈 교통수단의 필연성을 줄이는 것이다. 마치 오늘날 유전자검사기술로 친자확인이 가능해짐으로 해서 남자들은 여자를 소유하려 하지 말고 여자들은 남자와의 접촉을 죄악시하지 말라는 진보적인 성도덕관념이 가능하게 된 것처럼 정보통신의 발달은 교통의 감소에 기여해야 정상이라 할 것이다.

언론의 난
[ 2017-04-20, 15:30 ] 조회수 : 2167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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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ephyr   2017-11-14 오후 12:32
자연보호가 아니라 자연보존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Conserve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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