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의 추구
理念이란 무엇인가 (25) 靈과 魂

朴京範(소설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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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이념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유물론의 범주를 넘어선 해석을 하고자 영혼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근래에서는 사회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도 영혼이란 말은 자주 사용된다. 그런데 靈(영)과 魂(혼)을 구분하여 다루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개별 漢字(한자)에 더 익숙한 중국어권에서도 영혼이라고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영과 혼이라는 두 가지 말을 다르게 쓰고 있다. 우리의 ‘민족혼’이라고 하지 민족영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혼이 났다’고 하지 영이 났다고는 안 한다. 이와 같은 영과 혼의 다른 의미를 해설한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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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은 - 지상에 사는 육체에 깃든 인간의 마음 이외에 인간자신의 운명을 관장하며 영원한 자아를 이루는 존재. 학술적으로는 무의식 잠재의식 초자아 등으로 불리며 종교적으로는 성령의 역할을 하는 자아의 근본적 총체이다. 大我(대아), soul, higher self(上位自我), 本靈(본령), 神明(신명)이라고도 불린다.

魂은 - 지상에 특정한 인격(小我)으로 살아온 개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靈의 부분적 특성이다. spirit으로도 불린다.

(저서 <꿈꾸는 여인의 영혼여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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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은 인간 정신의 근간이 되는 영원한 존재이다. 한 사람이 윤회하여 여러 生을 산다는 것은 같은 영에서 비롯한 여러 혼으로서의 삶을 말하는 것으로서 영은 輪生(윤생)의 주체이다.

바다로부터는 물결이 나온다면 바다는 靈이고 물결은 魂이다. 각 魂은 고유의 개성을 가지면서 속한 靈의 공통된 성격을 가진다. 魂은 靈 즉 상위자아와 연결되었으나 지상에서 사는 인간은 평소에 느끼지 못한다.

사람이 내세로 돌아가면 魂은 육체를 떠나 靈으로 돌아온다. 魂은 靈의 일부분으로서 영원히 남는다. 한 사람에게 어린이로서 청소년으로서 젊은이로서 중년으로서의 인격이 남아 있듯이 생애를 살고 난 魂이 자기의 靈에 돌아오면 그 개성은 靈의 일부분으로서 남는다.

靈이 새로운 생애를 겪으려 할 때는 새로운 魂을 창조하여 생성한다. 그 魂은 새로운 사람의 육체에 깃든다. 魂이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魂이 속한 靈이 윤회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은 이전에 지상에서 살았던 혼들과 같은 靈에 속하니 그 靈의 다른 생애들을 전생기억으로 갖게 된다.

(Bob Olson, 〈ANSWERS ABOUT THE AFTERLIFE〉에서 발췌 意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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魂의 입장에서 세상의 삶이란 한번뿐

지상에 살았던 혼은 그 성과를 유지하며 영원한 존재로서 靈界(영계)에 거한다. 혼은 윤회하는 존재가 아니므로 지상에 사는 인간 개개인도 그 자체로는 윤회하는 존재가 아닌 한번뿐인 인생을 사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혼은 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혼과 영 양쪽에 관련한 욕구와 가치관이 존재하고 인류는 이들이 반영된 삶을 살아왔다.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는 그 사회에 익숙한 전생경험이 있는 다수의 영이 혼을 派遣(파견)함으로써 형성된다. 진보적인(현실의 이른바 진보세력이 아닌 본질적 의미의) 사회분위기가 공동체의 보전에 매우 불리한 반면에 보수주의는 공동체의 强化(강화) 및 保全(보전)에 필요한 가치관이다. 그럼에도 인류역사에서는 많은 보수적인 공동체가 융성하다 몰락하곤 했다.


慣性을 따르는 魂의 삶은 福樂은 있으되 靈的目的과는 距離(거리)

사람들이 자기 집안의 세습특권과 재산을 늘려서 자손이 유복한 환경에서 살게 하려는 욕구는 집안의 인연에 따라 자기의 영이 훗날 자기 집안에 다시 태어날 때 좋은 환경에서 잘 살도록 하려는 사전포석이다. 자기의 새로 생성된 혼이 집안에서 좋은 지원을 받으며 기왕의 혼이 가졌던 慣性(관성)을 이어받으며 사는 것은 왕조 등 집안 대대로 이어야 할 과업이 있는 경우에는 어느 만큼까지는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이윽고 그 과업의 필요성이 소멸하면 생애의 복락을 누린다 해도 영의 입장에서 볼 때는 큰 의미 없는 인생학습이 반복되는 것에 불과하여 영적 성장의 길이 되지 못한다.

우리 관습에서 흔히들 쉽게 거론했던 팔자를 고친다는 이야기도 영적 퇴락의 길이다. 靈의 입장에서 인생이란 때론 방황도 하고 고초도 당하고 다양한 경험을 두루 겪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의 양반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신분은 어릴 때 결혼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복락을 누리는 삶만을 추구했다. 어쩌다 좀 험한 인생을 살기로 예정이 되면 사주팔자를 고쳐서 복락을 누리는 인생으로 바꾸고자 했다. 그런 것이 정말로 효험이 난다면 이미 전생에서 겪어본 부귀영화를 이번 생에서도 큰 차이 없이 반복하기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의 관성에 따른 복락추구는 靈에게 정말 필요한 새로운 경험을 자꾸 후생으로 미룬다. 이런 것이 쌓이면 결국 각각의 영의 과제와 靈侖(영륜)의 과제가 밀리고 해결되지 않아 국가사회는 용도상실로 몰락하고 만다.


靈의 목적에 符合(부합)하는 삶의 추구

‘나’를 뜻하는 自我(자아) 역시 두 글자를 합하여 쓰지만 自 즉 小我(소아)는 혼이고 我 즉 大我(대아)는 영에 해당한다. 自를 넘어서 我를 찾는 것이 곧 흔히들 말하는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일’이다.

사심 없이 남에게 베푼 인생의 결과는 자기 후생의 복락을 그다지 돕지는 않겠지만 과거의 慣性(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이 택하는 생은 영의 성장에 효과적이며 이는 곧 영원한 존재로서의 격상에 이어진다.이러한 환생을 하는 영의 혼들은 자기의 性情(성정)과 환경이 썩 어울리지는 않아 좌편향의 유혹에 빠지기 쉬우나 그럼에도 자기의 탄생의 의미를 살려서 올바르게 대처하면 영적성장의 효과를 잘 살릴 수 있다.

우주적으로는 진보적 환경을 설정하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생애에서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태도야말로 영적가치를 추구하는 올바른 길이다.

언론의 난
[ 2017-04-21, 13:39 ] 조회수 : 2011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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