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고 정직한 가난
“가난할 때 과장과 거짓말을 많이 했어. 잘난 척 허세를 부렸지. 거짓말이라는 게 참 힘들더라구. 한번 거짓말을 해두면 꼭 기억해 둬야 하는 거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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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십대 중반인 아들과 이따금씩 세상에 관한 대화를 할 때가 있다. 며칠 전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 가난하지만 당당한 친구들을 볼 때가 있어. 함께 돈을 써야 할 경우가 있어. 그런 때 주저하지 않고 ‘난 돈이 없어서 참여하지 못하겠어, 다음에 능력이 생기면 하지’라고 말하면서 물러서는 거야. 그 모습이 보기 괜찮던데.”
  
  아들의 그 말에 가슴 속에서 잔잔한 감동이 물결쳤다. 부자가 교만하지 않기보다 가난하면서 비굴하지 않는 게 더 힘들다. 당당하게 자신의 가난을 나타낼 정도면 이미 그건 가난이 아니라 청빈이거나 무소유의 관념이라는 생각이다.
  
  “아버지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어땠는데?”
  아들이 물었다. 나는 기억의 서랍을 뒤지기 시작하면서 대답했다.
  
  “가난할 때 과장과 거짓말을 많이 했어. 잘난 척 허세를 부렸지. 거짓말이라는 게 참 힘들더라구. 한번 거짓말을 해두면 꼭 기억해 둬야 하는 거야. 그래야 발각되지 않게 만들 수 있으니까. 거짓말에 거짓말을 보태서 앞뒤를 조립해야 했지. 그러다 혼자 있을 때면 비참했어. 소심해서 남들에게 고백하지도 못했어. 그러다 나중에는 거짓말이 버릇이 된 거 같았어.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는데 입에서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나가는 거야. 그런 시절을 겪었어.”
  
  아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의 기억은 다시 고등학교 3학년 무렵으로 돌아갔다. 같은 반의 한 친구가 어느 날 나를 학교 운동장 한쪽의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신중하고 조심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네 말을 듣고 있으면 그 안에 과장이나 거짓이 많은 것 같다. 이 말을 할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나도 용기를 내서 하는 거다. 앞으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쇠꼬챙이로 꿰뚫린 느낌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평소 같으면 화를 내고 우겼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도저히 부인할 수 없었다. 그 친구의 진심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는 고관집이나 부잣집 아이들이 참 많았다. 세상에서 명문이라고 불리는 학교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한번은 옆자리의 친구가 생물 공책을 빌려달라고 연락이 왔다. 한 시간쯤 후에 그 집 기사가 자가용을 몰고 나를 데리러 왔었다. 육십년대 말 소수의 부자나 고관만 차를 가지고 있을 시절이었다. 낙산 아래 가난한 동네에 살던 나는 동빙고동의 친구 집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게 그 집은 성채였다. 지하의 백평이 넘는 공간에 각종 양주를 진열한 홈바를 보고 이게 같은 세상을 사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인가 하고 경악했다. 중고교 시절 또다른 친구의 집은 대문에 경비원이 있고 나무가 즐비한 정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집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 그 집 어머니는 택시를 타고 가라고 돈을 주었다. 아이에게 주는 교통비가 우리 아버지 월급의 삼분의 일쯤 되었다. 모두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부자들이었다.
  
  나는 기가 죽었다. 그래도 지기 싫었다. 그런 오기들이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기도 했다. 과장이나 허세는 한번 버릇이 들면 가시같이 박혀 쉽게 없애기가 힘들었다.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같이 공부를 하던 친구가 합격을 했다.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나는 참담한 마음이었다. 먼저 합격하고 잘나고 싶었다. 합격한 친구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저녁에 나를 찾아왔다. 그는 신날 것이다. 좋아서 펄펄 뛰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내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해 주고 싶은 심정이야.”
  그와 소줏잔을 기울이면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 했다. 속은 쓰리지만 그래도 배려해주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가 도중에 이런 말을 했다.
  
  “말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야. 손으로 발로 온 몸으로 마음으로 하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등뼈를 타고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친구의 충고가 바위에 새긴 글자같이 내 마음 속에 각인됐다.
  
  어느 날인가부터 나를 두껍게 싸고 있던 위선과 거짓의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못났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잘나면 잘난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한세상 사는 것이었다. 달이 차면 기울 듯 그리고 시계추가 극단으로 가면 반대의 극단으로 방향전환을 하듯 나는 사소한 한 마디에도 거짓이나 과장이 섞이지 않았나 체크하면서 산다. 정직은 안정과 평화를 준다. 가난하지만 당당하다는 아들의 친구는 이미 삶의 철학을 깨달은 훌륭한 존재였다.
  
  
  
  
  
언론의 난
[ 2017-08-11, 10:44 ] 조회수 : 2165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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