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언어생활을 제약하는 '평등주의'

朴京範(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몇년 전 대표적 진보논객 진중권씨가 배우 최강희씨와 함께 막말이 난무하는 세태를 걱정했다. 사회적 공인이 대중의 문화상황의 타락을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과연 작금에 심화된 막말범람현상에 대하여 대중을 질타할 위치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알려지다시피 진보진영은 오래 전부터 지식인의 顯學的인 문자 쓰기가 무식한 민중과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하여 각종 어문정책 등의 방법으로 이러한 현학적인 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끔 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뜻을 통할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말을 써서 그런 말을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잘난 척 하면 안 된다는 평등 사상에서 우러난 운동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정말로 뜻을 통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제한된 언어만을 절제하여 쓰는 동물인가는 의심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뜻을 통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표현양식이기도 하다. 극단적으로는 정신질환자에 빙의된 귀신도 자기존재를 나타내기 위하여 현 상황에 필요하지는 않은 말을 발표하기도 하듯이 인간의 현실적 사회에서는 나는 말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까지 해야 하는 것이 언어이다.

자기존재의 구현은 최대한 자유로와야 한다는 원칙은 그들 이른바 진보진영도 공감하고 오히려 더욱 주장하는 이념이기도 하다. 표현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 활동범위가 넓어야 한다. 활동무대가 넓으려면 오른쪽이든 왼쪽(좌우이념 구분과는 상관없는 표현)이든 한쪽은 터 있어야 한다. 가운데의 제한된 영역에서만 활동하라고 하면 그 제약에 따른 답답함으로 자기표현은 죽고 만다. 왼쪽이 막혀있더라도 오른쪽이 더 있으면 오른쪽으로 더 자유로이 뻗어나는 것이 자기표현이고 오른쪽이 막히면 왼쪽으로 뻗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른바 진보진영에 의해서 민중은 꼭 필요한 자기표현 보다 더 높이 더 고상한 체 하는 표현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민중은 그 반대쪽으로라도 자기표현의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쪽으로도 정서배출의 길을 막으려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 민중은 이른바 진보진영의 비위를 맞추려면 얼마나 절제되고 제한된 語彙를 써야 하는 것인가?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다.

언론의 난
[ 2017-10-10, 11:12 ] 조회수 : 351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