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변호사'의 겨울둥지
내가 관념 속에서 늙을 때까지 주저하던 걸 젊은 김 변호사는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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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급식소 앞의 접이식 의자에 앉은 거리의 변호사 두 명이 탑골공원의 담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다. 11월의 찬바람이 인도(人道)의 경계석에 앉아있는 노인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날이 추워지니까 노숙자 노인들이 지하철역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더라구.”
  늙은 거리의 변호사인 내가 젊은 김 변호사에게 말했다.
  “맞아요, 오늘은 뼈골이 시리던데요.”
  
  “김 변호사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왜 거리의 변호사로 나왔지?”
  “사실은 세 군데 갈 수 있었습니다. 의원보좌관 하고 로펌의 변호사 자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변호사를 하면서 진짜 필요한 게 뭔가를 생각했어요.”
  
  “그게 뭔데?”
  “전문가로서 사람들한테 법률지식을 알려주는 시대는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호사들이 이미 네이버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가 왔는데 판례나 법조문을 외우는 건 의미가 없는 거구요. 그러면 뭐가 남겠습니까?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사람끼리의 교감이나 소통이 앞으로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형로펌에 소속한 변호사들이 하는 건 소통이 아니예요. 단순한 거래죠. 자본주의 첨병으로 옷 잘 입고 매끈한 마네킹이 되는 거죠. 저는 노숙자들이 있는 이 바닥에서 다른 걸 알기 위해 나온 거예요.이념이 아니라 앞으로는 ‘인간 위주’의 다른 세상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작고 뚱뚱한 칠십대쯤의 한 노인이 다가왔다. 커다란 검은 안경 속의 부리부리한 눈으로 '거리의 변호사'의 작은 간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경렌즈 뒤로 보이는 그의 눈에는 원인모를 증오가 가득한 것 같았다.
  
  “내가 말이야 소송을 한 적이 있어. 밭떼기 하나 가지고 육형제가 박 터지게 싸웠어. 재판장이 나는 한 마디도 못하게 하더라구. 변호사를 샀는데 그 새끼도 주눅 들어 말을 안하더라구. 졌지 뭐, 대법원에 서류를 올리래, 그래서 행정사한테 5만 원 뜯기고 서류 제출했는데 바로 기각한데. 뭐 이따위 나라가 있어? 참 더러워서. 대법관이라는 새끼들 말 한마디 들어주지 않는 거야. 자빠져서 서류만 본다고 그러네. 내가 신문을 보니까 국선 변호사놈들 한 달에 칠백만 원이나 월급을 주고 먹여 살린대. 그 놈들이 뭘 해주는데? 우리나라 변호사가 방송에서 들었는데 2백50만 명이래. 가족까지 치면 천만 명이 일 안하고 뜯어먹고 사는 거잖아?”
  
  그의 표정이 어떤 과거를 떠올렸는지 무섭게 일그러지면서 내뱉었다.
  
  “그래도 그 정도로 변호사가 많은 건 아닐걸요?”
  젊은 김 변호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내가 방송뉴스에서 분명히 봤어. 국회의원 김진태라는 놈이 공공변호사를 더 늘인다는 것도 들었고 말이야.”
  
  “그러면 앞으로 변호사 오천만 명이 될 수도 있겠네. 아저씨도 남의 신 세지지 말고 직접 변호사가 돼서 형제싸움을 하지 그래요?”
  “아이고 내가 나이 칠십이 넘었는데 어떻게 이제 민법 형법을 공부해? 못해. 하여튼 더러운 놈의 세상이야.”
  
  그는 그냥 우리 앞에서 세상에 대한 푸념 한마디를 하면서 위로 받고 싶은 것 같았다. 그들의 수준으로 받아주고 그들의 언어로 말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저러나 추워지면 어디서 거리의 변호사를 하죠?”
  김 변호사가 추운 듯 몸을 웅크리며 내게 묻는다.
  
  “참 아까 여기로 오면서 겨울에 괜찮을 거라고 봐둔 장소가 있어. 탑골공원 담을 끼고 점쟁이들 작은 텐트들이 밤이면 불을 켜고 손님을 맞이하는 데 말이야. 그걸 잠시 빌려서 하면 안 될까? 우리는 장돌뱅이 보부상 개념의 변호사니까 말이지.”
  
  “그거 좋으신 생각인데요. 제가 사귀는 여자하고 점을 친다고 하면서 가 볼께요. 겨울에는 그 안에 있는 전열기까지 아예 세트로 빌리면 되겠네요. 우리가 쓰는 시간만큼 사용료를 내면 좋아할 거 아닙니까?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30년 전 변호사 개업을 할 때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던 일이다. 한겨울 바람이 천막자락을 휘몰아치는 포장 안에 있으면 세상이 보다 잘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내가 관념 속에서 늙을 때까지 주저하던 걸 젊은 김 변호사는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언론의 난
[ 2017-11-10, 22:44 ] 조회수 : 1297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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