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소 앞 풍경
“야 이 개새끼야…내가 아침에 여기 일찍 와서 이렇게 번호표를 받았어. 딱 4분 늦었어. 겨우 그거 가지고 밥을 안 주는 거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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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바람이 부는 무료급식소 앞으로 뒤늦게 허겁지겁 달려오는 노인이 보인다. 앞치마를 두른 급식소의 노인 봉사자가 손을 내밀어 제지하며 말했다.
  
  “늦었어요, 저 뒤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세요.”
  그 말에 노인은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했다.
  
  “그냥 들여보내 줘.”
  “안 돼요.”
  자원봉사자가 어조를 높여 단호하게 거절했다. 노인의 얼굴에 순간 분노한 표정이 피어오른다.
  
  “야 이 개새끼야.”
  노인이 절규같이 소리친다. 역시 백발의 노인인 자원봉사자가 묵묵히 그 욕을 먹고 있다. 배고픈 심정을 충분히 알고 있는 표정이다. 밥을 거절당한 노인이 번호가 적힌 종이 조각 하나를 꺼내어 보이며 사정했다.
  
  “내가 아침에 여기 일찍 와서 이렇게 번호표를 받았어. 딱 4분 늦었어. 겨우 그거 가지고 밥을 안 주는 거야?”
  “그래도 안돼요 기다려요, 다른 사람들이 먹고 자리가 나면 그때 들어오세요. 그래야 질서가 유지되는 거예요.”
  
  나는 무료 급식소 담 옆 아래 접이식 의자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밥을 먹지 못한 노인은 잠시 망연한 자세로 바람 속에 서 있었다. 도심의 남아도는 음식 속에서 밥 한 끼가 아쉬운 노인들도 많다. 무대 같이 갑자기 장면이 바뀐다. 내 앞에 건포도 같이 얼굴이 얼굴이 새까맣게 탄 남자가 다가왔다. 노숙자 같다. 낡은 외투 속으로 꼬질꼬질하게 때가 묻은 환자복이 보인다. 그는 병원환자용 바퀴달린 링거 거치대를 잡고 있었다.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 있어요?”
  내가 그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많이 아픈 사람 같다. 옷깃 사이로 뼈만 남은 가슴에는 심장에 붙이는 둥근 딱지 같은 게 붙어있다.
  
  “내가 심장병으로 병원에 있는데 옆에 있는 놈이 통장을 정리해 준다고 하면서 가져갔어. 그런데 보니까 이놈이 내 돈 8만 원을 빼가 버린 거야. 이 놈 때문에 화가 나서 왔어요. 여기 통장 좀 봐.”
  
  그는 무료급식소 앞에 거리변호사가 이따금 나타난다는 정보를 들은 것 같았다. 당연하다는 듯 품에서 통장을 꺼내 내게 건넸다. 극빈자에게 정부에서 한 달에 20만 원씩을 생존비로 보내주는 통장이다. 누군가가 거기서 돈을 몇 만원 빼 갔다. 바닥 생활에서도 벼룩이의 간을 빼먹는 존재가 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어떤 말을 해 줘야 위로를 받을까 속으로 생각한다. 이미 법의 제도권 밖의 존재들이었다. 법원은 간단한 소송을 하는데도 돈을 요구하고 엄격한 형식을 취하라고 했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소송을 거절하기 위한 저의가 숨어있다. 판사들이 격무에 시달리신다는 뜻도 있다.
  
  “나쁜 놈이네.”
  내가 그렇게 말해 주었다. 공감해 주는 것이다. 순간 그의 얼굴이 활짝 피어올랐다.
  
  “이 나쁜 새끼 어디 멀리 가 있지도 않을 거여, 다른 역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게 틀림없어. 내가 잡을 수 있어. 이 새끼가 내 돈 8만 원 빼먹고 앞으로 매달 만 원씩 갚겠대.”
  그런 정도면 악인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어떻게 이 아픈 남자의 마음을 달랠까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놈 참 나쁜 놈이네, 잡을 수 있어?”
  “잡을 수 있지. 지 놈이 멀리 못가.”
  
  “그러면 다음 주 목요일까지 잡아와, 그러면 내가 혼내 줄게.”
  그가 의외라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본다. 잠시 후 신뢰의 빛이 피어올랐다.
  
  “그럴께.”
  그가 신난 어조로 대답했다.
  
  “배고플 텐데 급식소로 들어가 밥을 먹고 가.”
  내가 손으로 급식소를 가리켰다.
  
  “바쁘지 않아, 이 급식소는 늦게 가도 라면은 끓여줘, 고마워.”
  그 남자는 링거대를 다시 끌고 급식소 문 쪽으로 향했다. 종로통의 개발로 거대한 빌딩들이 하나씩 둘씩 도심에 들어차고 있다. 빌딩 사이의 오래된 뒷골목 풍경이다. 밥을 먹는 것만 해도 아직 엄청난 행복인 사람들이 많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알리는 기사가 난 신문지가 거리 바닥을 뒹굴며 바람에 날리고 있다.
  
  
언론의 난
[ 2017-11-11, 12:04 ] 조회수 : 1691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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