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교포(僑胞) 여인이 본 대한민국
"여기 살아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대단하고 강점이 많은 걸 알게 됩니다. 맨날 그곳에 사는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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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레스토랑의 통유리창을 통해 ‘코파카바나’ 해변으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회색의 두꺼운 구름을 뚫고 올라와 반쯤 얼굴을 내민 태양은 바다 위에 길다란 빛의 띠를 만들었다.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가 산책로로 조깅을 하는 백인들이 눈에 띈다. 나는 식탁에 앉아 나이프로 크로와쌍에 차가운 버터를 바르고 있다.
  
  내 기억의 서랍 속 바닥에는 ‘코파카바나’라는 단어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있다. 막 대학에 입학해서 무교동의 막걸리 촌을 구경할 때였다. ‘코파카바나’라는 상호를 가진 살롱이 있었다. 세계 3대 아름다운 항구중의 하나인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에 있는 꿈같은 해변이라고 했다. 파도가 밀려오는 백사장에 비키니 미녀들이 오일을 바른 늘씬한 몸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우연한 인연이 되어 현지에 와 보니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건 낮의 일이었다. 어둠이 내리면 노숙자들이 하나씩 둘씩 해변을 찾아와 하루 종일 따뜻해진 모래에 몸을 묻고 잠을 자는 곳이기도 했다. 멋모르고 산책하다가 자는 노숙자를 밟으면 돈을 뺏기는 수가 있다고 했다. 양극화를 해변에서 느낄 수 있는 나라다. 도시도 양극화 된 것 같았다. 수십만이 사는 빈민가가 도시 외곽의 야산 기슭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다. 게딱지 같이 달라붙은 빈민가의 미로 같은 골목들이 보이고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 옆에서 빨래가 바람에 흔들렸다.
  
  부유층이 사는 지역은 윤기 흐르는 푸른 수목 사이에 널찍한 고급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버스에 타고 상점가의 고급 빌딩 옆을 지나갈 때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화려한 빌딩 귀퉁이 어둠침침한 공간에 노숙자들이 누워있거나 벽에 등을 기대고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에 30년 전쯤 브라질로 온 오십대 한국 여성이 함께 타고 있었다. 안경을 쓴 각진 얼굴이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직접 몸으로 체험한 브라질의 모습을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이 나라에서는 낙태를 못해요. 생기면 낳아야 하죠. 저도 그래서 애가 셋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한번 빈민층이 되면 도저히 위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가 없으니까요. 공교육이 붕괴되어 있어요. 엘리트가 되려면 사립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사립대학까지 가야 하는데 교육비가 어마어마해요. 당장 사립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려고 해도 서민층의 몇백 불 평균임금으로는 꿈도 꾸지 못해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을 가지고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데 그게 불가능한 거예요.
  개천에서 용이 날 수가 없어요. 가난한 집 자식들은 열다섯 살만 되면 사회로 나옵니다. 여자아이들도 그때부터 아이들을 자꾸 낳아요. 그렇게 해서 빈민층이 한없이 확대되는 거죠. 그런데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까 머리가 깨지 못한 거예요. 그냥 앞에 맥주 한 잔만 있어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무관심 속에서 부정부패가 심해요.
  제가 살아보니까 뇌물을 먹이지 않으면 어떤 일도 안돼요. 건축허가 신청을 내고 몇 년이 흘러도 뒷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 허가가 나오지 않아요. 반면에 조금만 법을 어기면 즉각 벌금딱지가 날아와요. 정치인들은 국민세금을 마음대로 써요. 의원들은 국가 비용으로 자기 전용기를 타고 다녀요.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어요.
  외국 자동차업계와 결탁해서 심지어 브라질 내에 철도도 부설하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뒷거래의 이권을 위해서 편리한 철도도 놓지 않는 거죠. 경제도 상위 1%의 부자들이 모든 걸 독점하고 있어요. 아무 것도 안하고도 자손 대대로 먹고 사는 데 걱정이 없죠.
  한국의 한 백화점에서 내부 장식에 사용될 대리석을 사러 직원이 브라질에 온 적이 있어요. 최고 좋은 대리석은 가로 세로 높이 일 미터짜리가 이삼 억이 가는 것도 있어요. 그 직원이 한 산 전체가 그런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걸 보면서 그 소유주인 부자는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 브라질 부자는 자기 재산의 총액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 대리석 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으니까요.
  도심의 레스토랑이 엄청나게 많아도 그 소유주는 부자 몇 명이에요. 독점이니까 레스토랑을 잘하게 하려는 의욕도 없어요. 경쟁을 벌이지 않으니까 서비스 개선도 없고 맨날 똑같아요. 정경유착이 일상화된 사회인데도 못 배운 빈민층들은 대부분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정치인들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불만을 막아요.
  노동자층이 차를 가지고 싶어 하니까 외국의 자동차업체들이 10년 이상의 할부로 차를 팔게 했습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불입금조차도 내지 않게 만들었죠. 그러니 한 달에 사백 불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차를 사서 타고 다니게 됐죠. 사웅파울로나 리오데자네이로의 교통체증도 그게 원인이예요. 차를 외상으로 들여오면서 외국의 업계에 정치인들이 생색을 내고 뒷돈 받아먹고 서민들은 빚더미 위에 오르는 거죠.”
  
  “그런 방만한 국가경영을 하면서도 부도가 나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그건 이 나라가 가지는 천부의 혜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브라질은 정말 축복받은 땅입니다.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몇 번째 땅덩어리가 큰 나라인데 실제로 따지면 최고일 것 같아요. 못 쓰는 땅이 없으니까요. 기후가 좋고 땅이 비옥해서 밀에서 옥수수 커피까지 일 년에 몇 모작들을 합니다. 땅 속도 부유해요. 각종 광물자원과 세계적인 보석들이 다 묻혀 있으니까요. 가로수로 서 있는 과일나무에서 그냥 과일들을 따다 먹으면 될 정도로 풍요한 나라입니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도 없어요. 못살래야 못살 수 없는 나라에 빈민층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저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자원이 많은 나라도 부패와 양극화가 심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을 실감했다.
  
  “여기 외국인 서민으로 살면서 피부로 느끼는 복지정책은 어때요?”
  
  “한국같이 좋은 나라가 세계에 없는 것 같아요. 여기는 의료도 사보험인데 얼마나 비싼지 도저히 가입할 수 없어요. 좋은 시설에서 진찰을 받기 불가능한 거죠. 대신 동네 보건소가 있는데 하기 싫은 의무봉사를 하러 나온 의사들이 있어요. 마음이 없으니까 와서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있다가 출석도장만 찍고 가는 거죠. 만나기도 힘들죠. 어렵게 만났다고 해도 가서 무슨 검사 받고 와라 무슨 검사 받고 와라 하는데 그 검사를 받는다는 게 산 넘어 산이에요.
  이 나라도 60세를 넘으면 연금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공짜가 아니고 소년시절부터 일정액의 돈을 납입해야 연금이 나오는 거죠. 빈민층이 많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니까 그 나이가 되면 죽는 사람이 많았어요. 평생 연금을 붓고 막상 탈 때가 되면 죽으니까 그 돈들이 다 정부로 들어가는 거죠. 그런 불만들이 있었어요. 그런대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니까 이곳 정치권에서는 법을 바꾸어 연금을 받는 나이를 높여버려 사람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어요. 여기서 오래 사는 저도 한국과 어떻게든 연관을 맺어서 가족이 아플 때면 한국에 나가서 치료를 받고 있어요.”
  
  그녀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곳 사람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었는데 이제는 인터넷 때문에 변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주유를 하는데 기름을 넣어주던 빈민층 청년이 느닷없이 저한테 ‘너희 한국도 정치인이 여기같이 썩었니?’ 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이제 그들의 의식도 깨어나는 거죠. 여기 살아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대단하고 강점이 많은 걸 알게 됩니다. 맨날 그곳에 사는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요.”
  
  나는 그녀를 통해 대한민국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부정부패가 하나씩 둘씩 청산되어 왔다. 김영란 법은 조그만 뇌물도 용서하지 않는다. 재벌의 독점이나 교만을 용서하지 않는 게 국민정서다. 언론이나 시위를 통해 마음껏 자기 의사를 표출할 수 있다.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사회 저변의 보호망도 튼튼하게 되어 있다. 정신적 문화적 한 단계 발전만 이루면 헬조선이 아니라 살아볼 만한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브라질 교포여인이 본 대한민국|작성자 엄상익
  
[ 2018-01-11, 16:28 ] 조회수 : 3994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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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부자    2018-01-12 오후 12:09
마음에 와닷는 글~ 항상 감사하게 일독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유대한민국이 사기꾼 공화국인 것을 벗어나 정직하고 노력하는 자가 성공하고 대우 받는 나라가 되었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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