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조차 행복해 보이는 나라, 아르헨티나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를 치는데 여기 아르헨티나 같은 곳으로 오면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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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宮) 앞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천막을 치고 그 앞에서 햇볕을 쬐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런 시위대와 대통령을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대통령궁을 에워싸고 있었다. 붉은 색의 스페인풍 대통령궁 이층은 대낮에도 환하게 샹들리에가 켜져 있었다. 그곳이 바로 대통령의 집무실이라고 했다. 지나가던 관광객이 돌을 던져도 맞을 만큼 경계 철책에서 가까운 위치였다. 수시로 정권이 뒤엎어지고 폭동이 일어난다는 막연한 인식의 나라가 아닌 것 같았다. 내 옆에 서 있던 작달막하고 뚱뚱한 육십대 말쯤의 한국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 대통령은 많이 해 먹었어요.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피하기 위해 상원의원이 됐죠.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악용하는 겁니다. 재벌이 대통령이 되고 권력을 이용해서 뒤에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업체들이 많아요. 장관급 관료들의 부패도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요. 인플레가 심한 이 나라에서는 달러를 현찰로 집에 보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골프백 하나에 백만 달러가 들어갑니다. 부패한 장관들은 비행기에 가득 찰 정도로 달러를 가지고 가서 해외의 은행에 맡깁니다. 그 정도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살기가 불안하지 않으세요?”
  부정부패가 심하고 정치가 안정되지 않은 나라인 것 같았다.
  
  “제가 이민 온 지 40년이 가까운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국가의 재정은 약해도 국민 개개인은 잘 삽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나라는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나라예요. 석유부터 시작해서 지하자원이 없는 게 없지. 넓은 땅으로 치자면 아마 세계 최고일 겁니다. 인도나 중국이 넓다고 하지만 못 쓰는 땅도 많기 때문이죠. 이 나라는 세계에서 소가 가장 많은 나라예요. 이 나라는 1헥타 그러니까 우리 기준으로 치면 삼천 평에 한 마리씩만 소를 키우게 되어 있어요. 기름진 풀만 먹고 자라니까 육질이 최고죠. 좋은 소고기만 수출해도 국민들이 얼마든지 먹고 삽니다. 아르헨티나는 한국에 소고기를 수출하고 싶어 하는데 미국 업자의 방해로 못하고 있는 거죠.”
  내가 생각했던 남미의 아르헨티나와는 전혀 달랐다.
  
  “어떻게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오게 됐어요?”
  내가 물었다.
  
  “칠십년대 말 팔십년대 초에 회사에서 우연히 아르헨티나에 왔었는데 삶에 대한 관념이 너무 다른 거예요. 우리는 죽겠다고 일만 하는 관념 속에 있는데 여기 사람들은 삶을 즐기는 겁니다. 그래서 당장 이민을 왔습니다. 그래도 여기는 아직까지도 어수룩한 구석이 있는 사회예요. 미국하고는 달라요. 한국에서 이민을 온 사람들은 대부분 옷 장사를 했어요. 중국인은 식당을 하고 일본인은 꽃을 가꾸어 파는 화훼업을 했죠. 옷 장사를 한 한국이민들 대부분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했어요. 수십억의 부자가 됐어요. 집집마다 달러를 현찰로 숨겨놓고 있죠. 어떤 사람은 한국에 아파트 수십 채를 사 놓고 관리하는 사람도 있어요. 경제적으로 상류층이 된 거죠. 제 경우도 딸이 법대를 졸업하고 아르헨티나의 검사가 됐어요. 검사가 돼 부정부패한 장관을 기소하기도 하고 날렸어요. 그런데 역시 이민자라 그런지 최고위층에 진입하는 데는 실패했어요. 그래서 박사학위를 따겠다고 지금 서울에 가 있습니다. 이민자들 이세들이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그 지위도 점점 향상되고 있습니다.”
  그는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밝은 시각을 가진 사람 같았다. 그가 덧붙였다.
  
  “30여 년 전 나와 비슷한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평생 세탁소를 하면서 지금도 어디 놀러갈 틈이 없어요. 그런데 아르헨티나에 이민 온 저는 다르죠. 옷 도매상과 소매상을 해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됐어요. 일 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을 해요. 여가에 국궁(國弓)도 합니다. 화살터를 만들어 놓고 몇 명이 하는 거죠. 젊은 시절은 아르헨티나 벽지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거기서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를 치는데 여기 아르헨티나 같은 곳으로 오면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꾸만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대기업 들어가려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어요. 얼마 전에 제가 본 젊은 사람 얘기를 해 드릴까요?”
  “어떤 건데요?”
  
  “한국에서 회사를 8년 다니다가 사표를 냈대요. 퇴직금을 받아서 3년 동안 세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닌 거예요. 그렇게 세계를 흐르면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SNS로 정보를 공유하고 숙소에서 같이 묵기도 하고 함께 다니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는 거죠. 그렇게 교류를 하면서 눈이 열리는 거죠. 유럽사회는 빈틈이 없대요. 그러다가 아르헨티나에 오니까 남미에는 아직도 뭔가 가능성이 보인다는 거죠. 그 청년 여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집을 얻어놓고 이 일 저 일을 시작했어요. 아마 곧 성공할 겁니다.”
  
  나는 스페인풍의 화려한 거리 곳곳을 보면서 얼떨떨했다. 아르헨티나 하면 포퓰리즘의 정치로 국가부도 사태까지 가고 전락한 나라로 알았다. 그러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더러더러 길가에는 노숙자들이 느긋하게 누워서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저 노숙자들은 뭡니까?”
  내가 안내해 주는 그를 보고 물었다.
  
  “저 사람들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만 먹고 여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백 키로만 내려가면 일자리가 널렸어요. 애초부터 일이 싫은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는 땅속에 무한한 자원들이 묻혀 있는데도 일할 사람이 없어서 캐내지 못하는 나랍니다. 노숙자를 해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거나 비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아요. 지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더러운 손을 잡고 악수도 하고 허그도 하죠. 푼돈들도 줘요. 인간적이에요. 노숙자들은 구걸해서 받는 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고 또 무상복지가 잘 되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무료로 치료해 주는데 아무 걱정이 없다는 거예요.”
  
  “이제 한국에 사신 세월과 아르헨티나에서 이민자로 산 시간이 거의 비슷한데 지금 현재 두 나라를 비교하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내가 물었다.
  
  “아직 친척이나 친구도 한국에 많아서 이따금씩 서울에 갑니다. 그런데 한국에 가면 뭔가 부대끼고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빈틈없이 꽉 차서 자기를 강조하는 네온사인 간판부터가 압박감이 드는 거예요. 친구가 아직 서울에 많은데도 편하지를 않아요. 그렇지만 아르헨티나에 오면 마음이 안정되는 게 편해요. 아마도 사는 사람들의 정신문화라고 할까 삶의 가치관이 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아르헨티나의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가치관이 어떤 건데요?”
  “남이 잘살거나 못살거나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자유와 행복만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고 할까요? 그러니 정치인이 부패해도 일반인들은 사실상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나라에 대해서도 강한 애착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도 축구경기가 벌어지면 전체가 열광하면서 달라지지만 말이죠. 월드컵 때 한국과 아르헨티나 전이 벌어졌는데 한국교민들은 공원에서 따로 모여 전광판을 보면서 응원했어요. 다혈질인 아르헨티나 사람이 한국이 이기면 너희들 전부 혼낸다고 해서 우리가 겁을 먹고 아르헨티나 이기라고 하면서 꼬리를 내린 적도 있죠.”
  
  언론이 머릿속에 선동적으로 주입시키는 인식과 내가 현실로 직접 보는 것은 달랐다. 아르헨티나만이 아니었다. 칠레도 우루과이도 페루도 당당한 자존심을 가지고 사는 나라들이었다.
  
  
  
  
  
  
  
  
  
  
  [출처] 아르헨티나를 보고|작성자 엄상익
  
[ 2018-02-06, 15: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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