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장애인
골프를 포기하기로 처음부터 마음먹었다. 우리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그것은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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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친한 친구들 열 명 가량이 모였다. 열세 살 중학교 때부터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쳐 육십대 중반인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사이다. 식당에서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두 시간 내내 화제의 전부가 골프였다. 해가 뜨기 전인 새벽에 집안에 만들어 놓은 골프연습장에서 랜턴을 켜고 골프를 연습한 일화며 평생을 타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과정들의 얘기들이 끊임없이 계속됐다. 어느 골프장의 홀이 어떻게 하는 전국의 골프장 품평회 얘기도 있었고 오랜만에 다음은 골프장에서 모임을 갖자고 하면서 부킹 얘기에 또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만남을 얘기하다가 “참 상익이는 골프를 치지 않지?” 하고 나를 보며 순간 머쓱해 하는 눈치들이었다. 묵묵히 얘기를 듣던 나는 그냥 미소를 짓고 가만히 있었다. 나 때문에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 같았다. 골프를 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는 소외되는 게 틀림없었다.
  
  30년 전쯤 나도 골프를 시작했었다. 푸른 초원에서 부드러운 자세로 하얀 공을 날리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 같았다. 잘 가꾸어진 수목과 그 사이에 융단같이 깔려 있는 부드러운 잔디밭을 걷고 사우나를 한 뒤 클럽하우스의 고급스런 분위기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와인 잔을 나누는 것은 낙원에 있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그게 싫어졌다. 약속을 절대 어겨서는 안되는 게 골프라는 운동이었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팀이 모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골프장에 가면 앞 팀이 저 멀리 보이고 뒤 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 다른 사람들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의 실력이어야 했다. 공이 엉뚱한 대로 가거나 앞에서 굴러가면 당황했다. 순간순간 자기의 점수를 타인과 비교해 나가면서 그 성적이 종이쪽지에 적혔다. 속이 불편해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남에게 방해가 될까봐 쭉 참아야 했다.
  
  나는 공부부터 시작해서 무슨 게임이나 일도 다른 사람들 보다 능력이 못했다. 달팽이 같은 기질이라고나 할까. 지지부진하고 경쟁력이 약했다. 다만 조개처럼 그 자리를 지키지는 않았다. 배로 뭉개면서도 아주 조금씩 장소를 이동하는 달팽이였다. 골프를 포기하기로 처음부터 마음먹었다. 우리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그것은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모임의 대부분은 골프를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이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이 흘렀다. 동창모임이나 군대 동기모임 사법연수원모임 등 대부분의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세상과의 절연이었다. 대신 나는 나의 작은 골방에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월든 호숫가에서 혼자 살던 데이빗 소로를 ‘월든’이라는 책을 통해서 만났다. 평생을 산골 오두막에 혼자 살면서 후박나무와 얘기를 하던 법정 스님을 그의 수필집에서 만났다. 영원한 시간의 바다 위에서 그들은 지금도 내게 다정하게 삶에 대한 얘기들을 던지고 있었다.
  
  지금은 며칠 전 황학동의 단골 헌책방에서 구해온 정호승 시인이 쓴 산문집을 통해 그를 만나고 있다. 그는 내게 배로 기어가는 달팽이도 노아의 방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골프를 포기해서 잃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 혼자 걸은 인생의 숲속 오솔길도 괜찮은 것 아닌가 하고 위로해 본다. 거기서 영원으로 돌아간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 사상가들을 만나고 영혼의 친구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출처] 골프장애인|작성자 엄상익
  
  
[ 2018-02-12, 14:03 ] 조회수 : 1515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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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의이름    2018-02-12 오후 6:08
저는 골프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골프를 쳐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도 있고 엄변호사님 같은 분도 있겠지요. 다만 저에게는 골프가 60여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위안을 얻게한 운동입니다.
그리고 골프에는 적어도 모두 평등하고 정직해야 하며 야로가 없거든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시간에 톨스토이를 읽는다든가 어학을 한다던가 더 값어치 있는 일을 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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