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인생'
그들은 부자는 돈을 버는 사람이지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 내게 가르쳐 주었다. 부자들은 음식점에서 남긴 반찬도 은박지에 싸서 집으로 가져오라고 절약부터 가르쳤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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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 고등학교 은사께 우리 부부가 인사를 갔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동시에 우리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서 주신 분이었다. 삼십대 중반의 영어교사였던 선생님은 어느새 팔순을 넘긴 노인이었다. 선생님을 모시고 부근의 잘한다는 아구찜 집으로 가서 저녁을 모셨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선생님께 물었다.
  
  “요즈음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계세요?”
  “우리 부부가 주말이면 ‘황금빛 인생’이란 드라마를 봐. 재벌은 어떻게 사나 보는 게 재미있어.”
  
  그 말을 듣고 돌아와서 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부자들이 사는 사회와 서민들의 고민 그리고 비정규 계약직의 현안들을 실감나게 극화시킨 것 같았다. 얼핏 보면 재벌들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할 만큼 재벌 내부의 세계를 꿈같이 그려놓았다. 우선 재벌 회장이나 사장 그 자식들로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준수한 미남미녀 탤런트였다. 그룹 내에서나 집안에서까지 회장님의 권위는 기가 죽을 만큼 대단했다.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이 보이고 실내에도 분수대 옆에 천사들의 조각상이 서 있는 화려한 저택이었다. 집 안에서도 그들은 정장을 하고 화려한 식탁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그 뒤에는 집사와 여러 명의 도우미들이 고개를 숙인 얌전한 자세로 서브를 하고 있었다.
  
  고교은사 부부는 그런 재벌들의 생활을 재미있게 보시는 것 같았다. 재벌 가족들은 교양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류계급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오랜 세월 변호사를 하면서 재벌이나 그에 준하는 부자들을 여러 명 만나봤다. 더러는 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피가 튀기게 싸움을 해 보기도 했다.
  
  근 백년간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온 그룹 회장으로부터 몇 차례 저녁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 경제인 대표를 한 분이다. 그는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했다. 와인의 가격이 적힌 리스트를 보던 그 회장은 비행기 안에서는 몇십 불에 불과한 와인을 레스트랑에서는 왜 그렇게 비싸게 파는지 모르겠다고 툴툴거렸다. 같이 거리를 걷다가 커피점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사서 마신 적이 있다. 회장은 아메리카노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했다.
  
  그 회장은 그룹 전체에서 황제 같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노인이었다. 그룹 산하의 지방공장을 더러 다닐 때가 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시찰준비를 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회장은 찾아갈 공장의 직원들의 이름이나 가정환경이 적힌 서류들을 미리 가져오게 해서 얼굴과 함께 그 내용들을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 가서 직원들이 도열해 있는데 이름도 얼굴도 아무것도 모르면 얼마나 섭섭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몇 명이라도 카드를 보면서 아들 입시가 어떻게 됐는지까지 외워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회장도 잘하려면 힘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또다른 회장님이 있었다. 산하의 여러 기업을 가진 그룹 회장은 아니었지만 대한민국에서 현찰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난 부자였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부터 시작해서 재벌그룹 회장 중에 그의 돈을 빌려 쓰지 않은 사람이 없는 전설적인 인물로 드라마나 소설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의 밑에 박물관이나 증권회사 등 여러 업체가 있었다.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고려청자들의 가격만 해도 천문학적 숫자다. 그는 서울 강남에 대형빌딩도 여러 채 소유하고 있었다.
  
  한 번은 그 회장님이 소송에 걸렸다고 소송대리인이 되어 달라고 왔다. 회장님의 계산법은 아주 무서웠다. 빌딩의 임차인이 월세를 지체하면 그 늦어지는 날짜만큼 무섭게 지연지를 받았던 것이다. 나간 사람이 억울하다면서 그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 회장님은 변호사 비용이 얼마나 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대법원 규칙에 나와 있는 적정가격을 제시했다. 회장은 너무 비싸다고 깎아 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직접 법원에 가서 소송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그 노회장님은 진짜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그 노인은 모든 일에서 손을 놓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침이면 허름한 옷을 입고 저택에서 카트를 끌고 나와 동네 가게들을 다니면서 빈 박스나 파지를 얻어 고물상에 넘기곤 했다.
  
  나는 내가 만난 그룹 회장들에게 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들은 부자는 돈을 버는 사람이지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 내게 가르쳐 주었다. 철저히 절약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젊은 사원들이 임원과 똑같은 품질의 고급양복을 입고 점심시간이면 비싼 커피를 손에 들고 가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야외에서 재계서열 20위 안에 드는 재벌회장을 만난 적도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이 분배됐다. 그와 마주앉아 도시락을 먹게 됐다. 도시락 뚜껑을 연 그는 한참 뭔가 살피더니 그 뒤에서 도시락을 날라 온 직원에게 이렇게 항의했다.
  
  “앞의 변호사 도시락을 보니까 생선회가 두 점이 있는데 왜 나는 없어요? 나도 생선회 두 점 가져다 줘요.”
  
  그 외에 여러 재벌그룹 회장들의 모습들을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 나오는 회장님의 모습은 황제보다 더 권위적이고 거의 신(神)에 가깝다. 이십대 자식에게 현금 3천만 원을 주면서 하루에 그걸 다 쓰고 오라고 숙제를 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직접 보았던 좋은 부자들은 음식점에서 남긴 반찬도 은박지에 싸서 집으로 가져오라고 절약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언론의 난
[ 2018-03-12, 08:13 ] 조회수 : 1816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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