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파 공산주의자 현준혁 암살사건
적위대服을 입은 청년에 의해 현준혁이 암살되고 보름 후인 1945년 9월 19일 소련군 대위로 복무하던 김일성이 원산항을 통해 북한에 귀국했다.

김주원∙ 탈북자(자유아시아방송)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북한 동포 여러분! 북한의 3대세습은 숙청정치와 우상화 선전으로 이어온 현대판 김씨노예왕족 독재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북한 민족주의자의 상징이었던 고당 조만식 선생과 함께 해방 후 북한 건국사업을 위해 활동하다가 암살당한 온건파 공산주의자였던 현준혁 선생의 암살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현준혁의 암살사건은 해방 후 북한에서 처음으로 있었던 테러사건이었습니다. 1906년 5월 13일에 평안남도 개천군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난 현준혁은 고학으로 연희전문학교 문과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사범대학 교원(교수)으로 근무하였습니다. 연희전문학교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연세대학교의 전신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대구사범대학은 서울 경성사범학교와 평양의 평양사범학교와 함께 우리나라 사범대학 중에서 3대 명문대학으로 유명한 사범학교였습니다. 그는 이 학교에서 영어와 조선어 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 기숙사 사감을 하면서 그는 비밀결사조직인 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지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활동에 대해 당시 사회과학연구회 회원이었던 옥치상 선생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증언에 따르면 이 비밀결사조직에 들어가면 우선 인간성과 정신력 배양을 위한 개괄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도록 하였습니다. 현준혁은 이 조직의 목적을 ‘조선민족의 해방과 무산농민의 구제’로 내세웠습니다. 그는 영어와 조선어를 배워주는 수업시간에도 조선역사(한국사)와 일본침략의 반동성, 3·1독립만세운동의 의의 등을 가르쳤고 민족 독립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그의 제자였던 김노계 선생은 ‘일제의 탄압과 통제로 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기나라의 역사를 배울 수 없었던 상황에서 현준혁 선생의 역사 강의가 너무도 좋았다. 그는 3·1운동과 일제의 만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얼굴표정이 무섭게 번쩍거렸고 학생들은 공감하면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비밀독서회 사건으로 진두현 등 6명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그때 형사들이 “현준혁이란 놈이 뿌린 씨앗이 무섭군. 이번에야 말로 뿌리채 뽑아버리겠다”고 말한 것만 봐도 현준혁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학교 기숙사 사감이라는 직책도 학생들에게 반일감정을 고취시키고 민족해방정신을 배양하게 하는데 유리하였습니다. 기숙사 사감이었던 현준혁 선생에게는 학생들을 정신적으로 무장시키는데 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학생들의 독립운동정신을 배양하도록 하기 위한 현준혁의 노력으로 1930년부터 1931년 2년 동안에 많은 학생들이 사회과학연구회와 비밀독서회에 참가하여 반일독립정신을 배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1931년 11월에 이 비밀결사조직이 발각되어 1기생 전원이 구속되었고 거의 1년 동안 예심을 거쳐 1932년에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비밀결사조직원 40여 명은 퇴학처분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해 1932년 11월 10일자 중앙일보에는 ‘대구지방법원에서 적색선전 3대결사사건, 오는 14일에 공판개정, 피고 현준혁 등 25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현준혁은 그 사건으로 6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였고 교원에서 해고되었습니다.
  
  대구사범학교에서 현준혁의 영향을 받았던 전 부산일보 황용주 주필은 당시 대학 재학시절에 선배들이 ‘현준혁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이를 계기로 <공산당선언>, <자본론> 등의 공산주의 서적들을 읽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현준혁은 동생 현관혁에게도 반일애국정신을 배양하도록 하였습니다. 동생과 함께 개천과 영변 일대에서 적색농민조합을 조직지도하면서 1934년 9월에는 부산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위해 헌신하였던 현준혁은 다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36년 2월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습니다. 그는 석방되고 나서도 항시적으로 일본 경찰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는 해방이 되자 건국사업에 헌신하였습니다. 나이도 김일성보다 여섯 살이나 많았고 대학을 졸업하고 교원(교수)경력을 가진 현준혁의 영향력은 김일성보다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국내파 공산주의자로서 남로당 당수였던 박헌영의 정치노선을 따르는 한편 민족주의 진영의 조만식 선생과도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였습니다.
  
  해방이 되자 그는 소련군정이 북한정치체제를 소련공산당의 방식을 모방한 공산당체제로 만들려 하였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보다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운동에 더 중요성을 부여하였으며 민족주의자인 조만식과 연합전선을 형성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1945년 8월 18일 조만식 선생이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으로 되자 자신은 부위원장의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때로부터 보름이 지난 1945년 9월 3일 정오에 조만식 선생과 함께 차(트럭)를 타고 가던 현준혁은 적위대복을 입은 한 청년에 의해 암살당하였습니다. 당시 적위대복장은 소련군정에서 공산당 보위대에 지급한 군복이었습니다. 지금의 김일성광장 앞도로를 지나던 차가 굽인돌이에서 속도를 늦추자 괴한이 차에 올라 권총으로 사살한 것입니다. 이 암살사건은 해방 이후 평양에서 일어난 첫 암살사건이었습니다.
  
  평양시 중심부에서 일어난 이 충격적 사건으로 평양시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련군정이 수사는커녕 보도도 제한하여 그 소식이 퍼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사실입니다. 소련군 대위로 복무하던 김일성이 원산항을 통해 북한에 귀국한 것은 현준혁이 암살되고 나서 보름만인 1945년 9월 19일이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일성에 의한 암살사건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김일성을 소련공산당의 앞잡이로 선택한 소련군정이 평양시민들과 반일애국세력들 속에서 영향력과 신망이 높았던 그를 제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련군정이 조만식 선생의 민족주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넓은 안목으로 대하며 민족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것을 중시했던 현준혁 선생을, 자기들의 심복으로 오랫동안 양성시킨 소련군 대위출신 김일성보다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유명한 소설가인 김성종 작가가 쓴 ‘여명의 눈동자’와 그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36부작의 텔레비죤 연속극(드라마)에서 현준혁의 암살장면과 암살범에 대해 나옵니다. 평양역과 평양 종로거리로 달리는 차에서 연설하다가 총탄에 맞는 장면과 암살범이 소련군정의 사촉을 받아 테러를 자행한 것을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현준혁의 죽음이 김일성이 직접 지시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소련공산당과 소련군정이 김일성보다 더 이론적으로 우수하고 영향력이 막강했던 그를 미리 암살하여 북한을 김일성을 수괴로 하는 괴뢰정부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전 북한 민주조선사 주필이었던 한재덕 선생은 자신이 집필한 도서 「김일성을 고발한다」에서 당시 소련군정 조선어 통역관이었던 유채일이 현준혁의 인기에 불안을 느낀 소련군정이 그를 암살하였다고 증언하였습니다.
  
  해방되어 처음으로 북한에서 일어난 현준혁 암살사건으로 김일성에게는 경쟁자 한 명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학력으로 보나 나이와 경험으로 보나 김일성보다 더 인기가 높았던 현준혁은 소련군 대위 출신인 김일성보다 소련공산당의 견지에서는 필요 없는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고 이 사건으로 민족주의자들에게는 공포를 심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일성은 현준혁 암살사건과 같은 공포로 정적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것이 자기의 권력유지에 필수라는 것을 깨닫고 그 이후에 연이은 숙청정치로 북한의 당, 행정, 군사통수권을 한 손에 거머쥘 수 있었으며 북한의 3대세습이 용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주민들은 수십 년 전의 무지몽매한 군중이 아니라 외부 정보로 계몽되고 있음을 김정은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2018-06-13, 10:21 ] 조회수 : 865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