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당시 日本軍 사망 最多 원인
일본군 총전사자는 25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60%에 가까운 약 140만 명이 餓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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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 전쟁 참전 日本軍이 戰線에서 사망한 원인 중 가장 많았던 것은 굶주림(餓死)이었다. 일본군 총전사자는 25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60%에 가까운 약 140만 명이 餓死했다. 70만 명은 地上戰에서 전사했고, 40만 명은 海戰 등에서 전사했다. 일본군의
  餓死는, 쌀(米) 등 물자부족으로 인한 보급품 단절 및 미군측의 봉쇄작전(포위) 등이 원인이었다.
  
  일본군 전사자 250만 명 중에서, 한반도 출신자(조선인)는, 2만 명 내외다. 전체 전사자 중 1%가 안된다. 간단히 대비하면 99 : 1(일본인:조선인) 비율이다. 당시, 일본 인구가 7100만 명, 한반도(조선인) 인구가 2000만 명 초반대였음을 감안하면 '불균형'(?)에 해
  당하는 셈이다.
  
  이러한 불균형의 원인은, 徵兵(일본인)과 募兵(조선인)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당시 일본인에 대해서는 1939년부터 국가총동원령이 내려져, 젊은 일본인 남자는 징병되었고 일본 여성은 근로동원되었다. 한반도(조선인 男女)에 대해서는, 5년 후인 1944년부터 국가총동원령이 적용되었다.
  
  징용(근로동원)된 조선인들의 80% 정도는 한반도 內에서 근무했고, 20% 정도가 일본 등으로 이동해 근무했다. 당시 조선인 여성의 경우,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15세 ~ 40세에 해당하는 미혼 여성에 대해, 1944년 9월부터 1년 간의 근로의무가 주어졌다. 이때 동원된 조선인 여성의 數는 20만 명 가량이었다. 이들 20만 명의 여성을 가리켜 흔히 '근로정신대'라고 부른다.
  
  戰時에 여성을 근로 동원하는 것에, 일본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당시 소련의 경우, 女軍만 해도 80만 명에 달했다. 간호병은 물론, 비행 조종사, 탱크 운전병, 저격수, 유격대원 등의 임무가 주어졌다. 미국의 경우, 당시 女性 4300만 명이 전시동원되어 군수 공장 등에서 일했다.
  
  
  
  
[ 2018-11-05, 16:29 ] 조회수 : 1061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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