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원어치 얼갈이배추 된장국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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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 저녁 강남의 삼성역 부근 메가박스에서 아내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영화관이 들어있는 재벌의 쇼핑몰은 현란한 티지털 조명으로 번쩍거렸다. 먼지 한 점 없어 보이는 매끈한 상가들 끝에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 귀퉁이에 얼갈이배추를 쌓아놓고 앉아있는 노파를 보았다. 칠십대 중반에서 팔십대 사이쯤 되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햇볕에 탄 거무죽죽한 얼굴에는 고랑 같은 굵은 주름이 패여 있었다. 앞에 쌓아놓은 배추는 분위기상 전혀 팔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시든 배추들을 무겁게 끌고 도로 가지고 갈 것 같았다.
  
  “여보 저 할머니 배추 좀 사가지고 갑시다.”
  옆의 아내도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톱니같이 바삐 돌아가는 도심의 귀퉁이에는 더러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 지하철 계단 모퉁이에서 보자기를 깔고 더덕을 까는 노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쑥떡 몇 개를 팔아달라고 손을 내미는 노인, 다양한 늙은 사람들이 인생의 짙은 황혼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 저녁 무렵에도 서초역의 화단 앞에 야채를 놓고 있는 노인을 보고 아내는 그걸 다 샀다. 무거운 걸 다시 가지고 어깨에 힘이 빠진 채 돌아가는 걸 보기 딱하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얼갈이배추를 앞에 수북이 쌓아놓고 있는 노파에게 물었다.
  
  “할머니 이거 얼마예요?”
  “이천 원에 전부 다 가져가요.”
  거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마켓에서 랩에 깨끗하게 포장해서 파는 야채와 비교하면 몇십 분의 일 가격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반만 가져가면 안 될까? 무거운데.”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할머니 이거 반만 주세요.”
  아내가 할머니한테 이천원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노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큼직한 종이백에 얼갈이배추를 모두 채워 넣었다. 귀가 어두운지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분주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큰 양동이를 내놓고 배추를 가르고 깨끗이 씻어서 한동안 물에 불렸다가 그걸 다시 짜서 데쳤다. 멸치와 다진 마늘 다시마와 고춧가루를 푼 된장국물에 넣어 끓이면서 말했다.
  
  “아이고 힘들어 이천 원어치 배추 사다가 이틀 동안 중노동을 하네.”
  아내와 둘인 육십대 부부가 사는 집에서 한 솥이나 되는 된장국을 먹는 건 나의 의무였다. 아내가 나가고 오후 늦게 혼자 전기밥솥에서 밥을 푸고 얼가리 배추 된장국을 대접에 담아 전기레인지에 데웠다. 그 사이 텔레비전을 켰다. 내가 좋아하는 ‘심야식당’이라는 소박한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같은 직장에서 퇴근을 하는 젊은 남녀가 지하철역 앞을 지나가다가 그 앞에서 찐 옥수수를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를 보았다. 남자가 잠시 주춤하더니 발길을 돌려 옥수수를 샀다.
  
  “옥수수 좋아해요?”
  같이 있던 여자가 물었다.
  
  “아니 그냥 마음이 짠해서…”
  남자의 대답이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따뜻한 온기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산다는 게 그런 게 아닐까. 관념적인 거창한 구호보다는 따뜻한 곳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모인다. 생활 속의 작은 걸음들이 곧바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 2018-12-03, 10: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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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自由韓國    2018-12-03 오후 8:31
그렇습니다 사람이 산다는게 그런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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