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서관의 돈 관리
검찰은 그 돈이 뇌물이라고 했다. 변호인의 입장으로는 뇌물을 그런 식으로 받고 그렇게 관리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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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따금씩 바둑을 두는 사람이 복기를 하듯 재판이 끝난 후 수사기록이나 증언을 다시 생각해 본다. 특히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건은 시대의 격류를 타고 금세 머나먼 바다로 휩쓸려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고손실죄도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퇴색되어 가고 있다.
  
  나는 소수의 법조인들만 가지고 있는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다시 들추어 본다. 그 기록들은 몇 년이 지나면 영원히 폐기될 기록이다. 관련자를 감옥에 넣고 징역형을 확정하면 더 이상 필요 없다. 남이 보면 껄끄러운 요소가 남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추수가 끝난 논에서 남은 벼이삭을 줍듯 기록들을 다시 보고 나름대로 글로 남겨두곤 했다. 법대 교수들은 대법원 판결이 나면 그걸 보고 자신의 의견을 글로 발표하기도 한다. 그게 판례평석이다. 변호사의 이런 글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원 돈을 끌어들여 남용했다는 것이 죄의 본질이다. 그걸 준 국정원장들은 공범이다. 그렇게 돈을 바치고 국정원장이라는 자리를 유지했으니까 뇌물이라고 검찰은 주장했다. 돈 관리의 핵심에 있던 사람 중의 하나가 속칭 문고리 3인방 중의 하나였던 이재만 비서관이다. 그의 검찰에서의 진술은 대충 이랬다.
  
  2013년 4월경 어느 날 사무실에 앉아 있던 청와대의 총무비서관 이재만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국정원에서 봉투를 가지고 올 테니 받아요.”
  이재만 비서관은 그게 돈이라고 직감했다. 그 얼마 후 국정원장 비서실장이 그를 찾아와 커다란 봉투를 건네주었다. 봉투 안에는 작은 박스가 있었고 그 안에 오만 원권으로 된 현찰뭉치가 들어있었다. 그 후 액수가 늘어나면서 돈이 든 지퍼가 달린 가방이 왔다. 그때는 안봉근 비서관이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건네주었다. 안봉근이 가방을 건네주면 이재만은 가방을 열어서 금액을 확인한 후 그 돈을 책상서랍에 넣고 가방은 안봉근 비서관에게 돌려주었다. 이재만 비서관은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에게 돈 받은 사실을 보고했다.
  “돈을 청와대 특수 활동비처럼 잘 관리하세요.”
  대통령의 지시였다. 그는 대통령에게 직접 배정되는 청와대의 특수활동비도 관리하면서 매달 일정액을 대통령에게 가져다주었다. 대통령은 돈을 쓸 일이 많았다. 군부대 방문 등 행사에 참석하면 몇천만 원씩 격려금을 주어야 했다.
  
  이재만은 국정원에서 온 돈을 총무비서관실에 있는 금고에 넣어 보관했다. 국정원의 자금을 받는 것은 대통령과 문고리 삼인방이라고 불리는 비서관들만 알고 있었다. 문고리 삼인방과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은 1988년경부터였다. 당시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이었던 김석원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사직하면서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쌍용그룹 회장이었던 김석원은 IMF를 겪으면서 쌍용그룹이 어려워지자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임했다. 그의 보좌관이었던 안봉근은 정치에 입문하는 박근혜 후보의 캠프로 들어가 수행과 지역관리 일을 맡았다.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던 정호성은 교수들의 추천으로 1988년 4월경부터 박근혜 후보의 보좌관이 됐다. 그는 연설문 작성과 정책분야 담당이었다. 1999년 경영학 박사 출신인 이재만이 보좌관으로 합류해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될 때까지 약 17년 간 함께 근무하게 된다. 야당의원 시절부터 박근혜 의원과 보좌관들은 차명폰을 사용했다. 보안을 위해서였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차명폰의 사용은 계속 됐다. 차명폰은 문고리 3인방과 최순실 등이 통화할 때 사용했고 외부 사람들과 연락할 때는 업무폰을 사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필요할 때면 이재만 비서관에게 전화를 해서 국정원에서 온 돈을 일정금액씩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럴 때면 이재만 비서관은 쇼핑백에 돈을 담아 대통령 관저로 갔다. 관저 입구의 경호실을 지나 통로를 따라가면 휘트니스가 나오고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서재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대통령이 있을 때는 직접 전달하고 없을 때면 서재 문 뒤쪽에 쇼핑백을 조용히 놓고 나왔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대통령에게 돈을 가져다주었다. 이재만 비서관은 보관하고 있는 잔액을 에이포 용지에 써서 가지고 있다가 대통령이 물을 때면 보고했다. 더러 대통령이 전화를 해서 “얼마가 있어요?”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재만 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국정원에서 보낸 돈을 명절이나 휴가 때 비서실장, 경호실장, 안보실장에게는 이천만 원씩 지급하고 경비와 요리사 등 직원에게 격려금으로 지급하게 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끝나고 돌아오면 수석비서관들에게 국정원에서 온 돈으로 격려금을 지급하고 청와대 내부인사 자녀들의 결혼, 수술 등의 경우에도 그 돈이 사용됐다. 요리사의 전별금도 그 돈에서 나갔다. 문고리 3인방도 국정원돈에서 매달 천만 원씩을 받았다. 대충의 상황이었다.
  
  2017년 10월 31일 서울중앙지검 622호 검사실에서 이재만 비서관이 심층 조사를 받고 있었다.
  “문고리 3인방이라는 얘기를 들어봤죠?”
  검사가 물었다.
  
  “그건 저희 비서관 세 사람의 업무가 대통령과 직접 대면할 기회가 많고 보고서를 정리해서 대통령에게 드리기 때문입니다. 세 명이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라기보다는 업무가 대통령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역대 어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세 명에 대해 문고리 3인방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직접 대면보고를 받지 않고 거의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맞나요?”
  “그런 평가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피의자는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돈 봉투를 어떻게 했나요?”
  “대통령에게 올렸더니 다시 봉투째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봉투를 따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한두 번 봉투를 받아 올렸더니 같은 방법으로 다시 내려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에는 별도로 대통령께 올려드리지는 않고 제가 관리를 했습니다.”
  
  “대통령이 받은 금액 전부를 내려주던가요?”
  “제 기억에 국정원에서 보낸 봉투 그대로 내려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피의자가 관리를 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요?”
  “대통령님께서 지시가 있을 때 제가 청와대의 특수활동비에 준해서 관리를 했다는 뜻입니다.”
  
  “그 돈은 어떤 용도로 사용됐나요?”
  “국정최고 책임자의 통일, 외교, 국방, 안보 등 기밀을 요하는 국정수행 활동 과정에서 집행되는 비용이어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청와대도 국가정보원과 같이 국가기밀이나 안보에 관한 기밀한 사업내용들이 많습니다. 국정원 돈을 쓰는 것은 역대 관행이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를 한 것입니다.”
  
  2018년 6월 5일 이재만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다. 검사가 그에게 물었다.
  “증인은 국정원 자금을 어떻게 대통령에게 올렸나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죠.”
  “대통령이 매월 한두 번씩 돈을 요청했고 한번 올려드리는 돈이 평균 2천만 원이고 많게는 1억 2천만 원이었습니다. 3천만 원, 5천만 원, 6천만 원을 쇼핑백에 담아 올렸습니다. 국정원에서 온 띠지가 그대로 묶인 상태였습니다.”
  
  “국정원에서 온 자금을 대통령이 쓴 부분과 증인이 금고에 보관하면서 격려금 등으로 사용한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대통령에게 올려드리는 국정원 자금은 60~65% 정도고 제가 사무실 금고에 보관하는 것은 35~40% 정도였습니다. 제가 평소에 계산해 보곤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출한 진술서를 보면 이 국정원 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전혀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제가 보고드렸고 잔액을 적은 문건도 드렸습니다. 그 집행내역을 아는 사람은 저와 박근혜 대통령 두 사람뿐입니다.”
  
  “문고리 3인방의 다른 사람인 정호성 비서관은 증인에게서 매월 천만 원을 받아서 그 돈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 관리비용, 기치료, 운동치료, 대포폰 요금에 사용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돈을 주기만 했지 어떻게 쓰는지는 몰랐습니다. 이번 수사과정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국정원에서 온 돈 중 대통령이 관리하는 60%는 어디에 사용됐나요?”
  “제가 여쭈어 본 적도 없고 관여한 적도 없지만 대통령이 격려할 곳이 엄청 많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격려금으로 쓰지 않았을까 합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국정원의 청와대 자금지원이 중단됐죠? 왜 그랬습니까?”
  “어느 날 오후에 안봉근 비서관이 제 사무실로 와서 ‘이거 계속해도 되나’라고 혼잣말같이 얘기한 적이 있구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말씀드려 보든지’ 하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증인은 검찰조사 과정에서 최순실이 작성한 메모를 본 적이 있지요? 그 메모를 보면 국정원의 자금내역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는데 최순실이 어떻게 그 내역을 알고 있나요?”
  “저는 모릅니다.”
  
  “증인이 국정원 자금을 쇼핑백에 담아 대통령 관저의 서재로 갈 때 최순실과 마주친 적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다음은 변호인이 물었다.
  “증인이 처음 국회의원 박근혜의 보좌관으로 채용될 때 정윤회와 최순실 부부가 면접을 진행했죠?”
  “정윤회 비서실장이 면접을 보았습니다.”
  
  “증인을 포함한 속칭 문고리 3인방은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기소된 상태죠?”
  “공동정범으로 기소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향상 국정원 돈에 대해서는 비서관인 증인에게 일임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 사용대상, 격려금 지급대상과 그 금액 이런 부분에 대해서 대통령의 말씀에 따라서 지출하는 것이지 제가 그런 부분을 결정하거나 그런 적이 없습니다.”
  
  “증인은 2014년 6월 25일경 아파트 구입 경위에 대해 추궁받으신 사실이 있지요? 일년 만에 아파트 대출금을 전액 상환했던데 검찰에서는 그 돈에 국정원의 돈이 들어간 것으로 의심하는데 어떤가요?”
  “다 문제없는 것으로 소명되었습니다.”
  
  “최순실은 2015년 말 독일로 가기 전에 증인을 만나 ‘그동안 수고했는데 퇴직금도 제대로 주지 못해 어떡하느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만난 적 없습니다.”
  
  “최순실이 출국할 무렵 통화를 한 적은 있나요?”
  “출국하던 날 통화를 했습니다.”
  
  “어떤 얘기를 나누었나요?”
  “당시 언론에 나오는 국정농단 등의 내용에 관해서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격려비 등을 지급할 때 그 금액은 어떻게 정했나요?”
  “박근혜 대통령이 구체적인 액수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검찰은 그 돈이 뇌물이라고 했다. 변호인의 입장으로는 뇌물을 그런 식으로 받고 그렇게 관리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국고 손실죄가 되려면 그 돈들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정확하게 조사되어야 했다. 그런 것도 없었다. 핵심이 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증언도 없다. 최순실이 왜 국정원 돈에 대해 메모까지 가지면서 대통령 비서관의 퇴직금까지 걱정해 주었을까. 비서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의문들은 재판이 끝난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 2018-12-04, 14: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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