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무위(無爲)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미세먼지가 구름이 되어 재앙같이 하늘을 덮었다. 밤이 되면서 시베리아의 얼음 같은 찬바람이 몰려오면서 진주(進駐)한 미세먼지의 안개를 밀어내고 있었다. 사당역 부근 음식점의 간판의 불빛이 추위 속에서 명멸(明滅)하고 있었다. 음식점 구석방에 오랜 친구들 몇 명이 모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졸업하고 평생을 함께했던 친구들이다. 그중 한 친구가 말했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극장도 반값만 내면 되는 경로우대의 세월이 됐는데 그런 혜택을 받아들여야겠지?”
  
  사회적인 혜택이 반갑기보다는 늙음이 언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씁쓸한 표정이다.
  
  “내가 공직에 있을 때 노르웨이와 스웨덴에 가 봤어. 그 나라 국민들은 세금을 소득의 칠십 퍼센트나 내면서도 그런 체제가 유지되고 있잖아? 볼보 같은 회사도 세금 때문에 있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가는데 국민들이 어떻게 그런 세금을 납득하는지 알아보려고 말이야.”
  
  “맞아 요즈음 보니까 무슨 세금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 정신이 없어. 그래 노르웨이나 스웨덴은 그렇게 세율이 높은 데 어떻게 국민들이 가만히 있는 거야?”
  다른 친구가 물었다.
  
  “핵심은 딱 두 가지더라구. 젊었을 때 세금을 많이 내도 예순 살 이상이 되어 죽을 때까지 혜택이 그 이상이더라구. 한 인생이 정상적으로 산다면 결코 손해가 아닌 거지. 두 번째로는 국민이 낸 세금이 낭비되는 곳 없이 철저히 정확하게 사용되는 거지. 거기는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기사나 자동차를 주지 않아. 자전거로 의회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 다른 직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특권이 없는 사회니까 세금도 철저히 사용되는 거지. 그런 그 나라도 국민을 설득하는 데 칠십 년이 걸렸다는 거야.”
  마음속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른 친구가 입을 열었다.
  
  “상처(喪妻)한 수길이는 이제 변호사업을 접고 이민을 간다는 소리가 있어. 마누라는 없고 혼자가 됐는데 자식들이 사는 곳으로 가겠다는 거지 뭐. 우리 모임 카톡방에서도 탈퇴했던데.”
  
  얼마 전 그 친구의 상가에 갔었다. 오랜 삶의 동반자가 하늘나라로 가는 건 남은 사람에게는 겨울나무 신세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추운 겨울하늘을 향해 빈 가지만 칼퀴같이 뻗고 있는 나무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때는 남은 세월을 뭘 하고 사나가 모두의 공통된 화두이기도 하다. 한 친구가 고교 동창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어느 모임이나 참석하고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던 김 교수 말이야, 그 친구는 요새 은둔생활을 하면서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는 거야. 혼자서 장자(莊子)를 연구한다고 하더라구. 벌써 책을 두 권 냈는데 지금도 장자를 집필중이라고 하더라구.”
  
  그는 노년의 삶을 살 줄 아는 친구 같았다. 노년에 경전(經典)이나 고전을 공부하는 것은 뜻 깊은 일일 것 같았다. 백세의 철학교수인 김형석 교수도 모든 책을 기부하고 그의 책상위에는 낡은 성경 한 권이 있었다. 정치학을 전공했던 김상협 고려대 총장의 평전을 쓰느라고 그의 일생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그는 말년에 여러 경전을 공부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자리에 누워 잠을 자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정숙한 삶의 정리였다. 모두 끝이 보이는 세월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미리미리 결제를 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남아있는 금같이 귀한 시간을 누구에게 조금씩 나누어주고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숙제였다.
  
  이틀 전 아내와 함께 태백산맥의 미시령을 넘어 오후 늦게 속초로 갔었다. 어떤 책에서 읽은 선인이 했던 한 마디 말이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바다를 본 건 언제였지? 밤하늘의 별을 본 건 어디서였더라? 퍽퍽 바위를 치면서 흰 거품을 뿜어 올리는 파도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봤으면 좋겠어, 라고 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을 때 하라는 조언이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늦은 시각 밤바다의 저쪽에서는 파도가 수런거리고 있었다. 해변의 불빛에 이따금씩 하얀 파도가 흰 거품을 뿜어내는 파도가 보였다. 나는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밤 바닷가의 시린 바람을 맞으면서 늙은 아내와 해변가에 설치된 영롱한 조명의 동굴 속을 걷고 있었다.
  
  “우리가 결혼하고 몇 년을 살아왔지?”
  내가 물었다.
  
  “결혼하고 금년이 39년째야. 정신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어. 아이들이 어려서는 뻥튀기 기계 속에 넣어서 바로 어른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키우는 그 과정이 재미있는 인생인데 말이야.”
  
  “맞아, 남은 세월을 우리 늙은 부부가 어떻게 살면 좋겠어?”
  내가 아내한테 묻는다.
  
  “같이 성경을 공부하고 거기서 깨닫는 걸 당신은 작은 글로 써보고 나는 가까운 이웃에게 말로 전하고 그렇게 바위틈에 핀 앵초같이 살면 되는 거 아닐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아 주실 테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장자를 연구하는 교수친구처럼 노년의 무위(無爲)를 생각해 보았다.
  
  
  
  
[ 2019-01-17, 15: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