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속의 행복-내 안에 天國을 만드는 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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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몰래 스며들어가 나만 혼자 있는 공간이 있었다. 동네 어느 집 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 사이의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남몰래 짐승굴 같은 그 공간 속에 들어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면 신비로운 평화가 물처럼 내면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런 평화는 나만이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중에는 물이 말라버린 깊은 우물 속에 줄사다리를 타고 바닥까지 내려가 뚜껑을 닫은 채 짙은 어둠 속에서 혼자 앉아 있는 장면도 있었다. 인간에게는 그런 자기만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영역을 찾는 원초적 본능이 있나 보다.
  
  그런 곳은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이고 본연의 자기 자신에 가까워지는 곳이었다. 몇 년 전부터 아파트의 구석에 작은 골방을 따로 만들어 그 안에서 몸과 영혼의 휴식을 취한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한다. 성경이나 책에서 찾은 좋은 글귀들을 공책에 베껴 적거나 배우가 대사를 외우듯 웅얼거리기도 한다. 좋은 글들을 옮겨 적는 것은 시장에서 야채를 사오는 행위로 여긴다. 음악을 들으면서 그걸 반복해서 보는 행위는 음식을 하기 위해 야채를 씻고 다듬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게 내가 즐기는 생활의 즐거움이다.
  
  요즈음은 백 년 전 영성(靈性)이 깊었던 한 인물이 쓴 글들을 정독하고 있다. 사람은 죽고 뼈까지 삭아 부존재가 되었는데도 그가 쓴 책들의 페이지 페이지에는 그의 깊은 깨달음들이 맑은 샘물같이 고여 있다. 메마른 나의 영혼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있다. 나는 그 샘물을 퍼다가 요리를 만들 듯 글을 쓴다. 나의 골방은 소박한 음식 같은 글을 만드는 주방이다. 이 시대를 살아온 변호사의 체험을 음식 재료로 해서 그 위에 맑은 진리의 샘물을 붓는다. 성령(聖靈)의 불로 그것들을 끓여 작은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 같은 글을 만들어 본다. 그리고 그걸 나의 작은 블로그 밥상 위에 올려본다.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세상이 흑백의 무채색으로만 보이는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혹은 정신이 고갈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다.
  
  드넓은 인터넷 세상에서 아주 작은 골목길 끝에 있는 초라한 심야식당 같은 나의 블로그에 들어와 작은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에 나는 놀란다. 더러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도 있다. 거기서 작은 행복을 느낀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행복이 있다. 세상권력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도 많다. 이 세상에서 성취감과 행복을 얻는 길일 것이다. 또 다른 길도 있다. 욕심을 버리고 눈을 밝게 떠서 하나님을 내 것으로 하여 내 안에 천국을 만드는 거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권력을 잡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 안에 천국을 만드는 일은 나의 골방 안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출입이 차단된 나만의 작은 공간이 내 영혼의 휴식처이자 나의 천국이다. 그곳에서 나 자신으로 통하는 내면의 성소(聖所)를 찾아가기도 하고 세상과 마주하는 힘을 얻기도 한다.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가 세상을 장악하는 쾌감도 있을 것이다. 수도원의 작은 방 안에서 詩를 써서 세상에 기여할 수도 있다. 골방 안에서 스스로를 이기고 하나님을 보는 행복도 그 어느 것에 못지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 2019-01-23, 08:4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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