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의 구속을 지켜본 국정원장
“정말 이 징역형이 괴롭습니다. 형이 확정되면 내 힘으로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요. 정말 바르게 나를 판단할 대법관이 있을까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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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월24일 오후 2시 서울구치소 변호인 접견실 8호 유리방이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대법원에 상고한 그의 변호인이었다.
  
  “얼굴이 많이 부었네요?”
  내가 그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팔십 노인인 그는 얼굴이 밀가루 반죽같이 부풀어 오르고 푸석푸석해 보였다.
  
  “제가 당뇨도 있고 신장도 좋지를 않아요.”
  팔십 노인인 그는 진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많은 재벌이나 정치인들이 휠체어에 타고 링거를 맞는 연기를 하면서 감옥을 빠져나갔다. 그는 진짜 아프고 늙었어도 권력은 그의 석방을 허락하지 않았다.
  
  “참 양승태 대법원장을 보지 못했어요?”
  그가 물었다.
  “못 봤는데요. 어제 신문기사에서 영장실질심사법정이 열리고 있다는 건 봤는데요.”
  “이미 구속됐어요, 조금 전 구치소 운동시간에 봤어요.”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들이었던 사람들뿐 아니라 대법원장도 구속됐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그 정권의 국정원장들과 비서실장, 대법원장까지 감옥행이었다. 영장심사 법정 앞에서 민변이나 사회단체에서 구속하라고 시위를 벌인다는 기사를 보았다. 정치권과 함께 여론의 물결이 사법부라는 방파제를 넘어선 것 같았다. 판사들이 그들의 수장이었던 대법원장을 구속한다는 사실 자체는 스스로 그들의 성문을 열고 항복한 것일 수도 있다.
  
  “대법원장의 구속을 어떻게 보세요?”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물었다. 그는 조선시대 정적에게 누명을 씌워 집단으로 죽이는 사화같이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지난 정권의 국정원장들의 구속과 함께 그 대법원장의 구속을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합니다. 단선적으로는 촛불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현 정권이 먼저 할 일은 숙청 아니겠습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그 다음에 그 정권의 핵심인 국정원장들 그리고 대법원장까지 간 거죠. 어디까지 더 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적폐청산의 명분은 대중의 지지를 얻습니다. 권력이라는 호랑이 등에서 떨어진 분들이 잡아먹히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원장님은 그 이전에 지유민주주의 저항군 사령관으로서 제 역할을 잘했어야죠. 김정은을 제거하려다가 북쪽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으셨잖아요?”
  내 앞의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그런 정치적 해석과 동시에 저는 그동안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받지 못할 행동들을 많이 해 오고 한이 쌓인 게 이 시점에서 폭발해 대법원장의 구속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봅니다. 이틀 전 판사 출신 변호사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대법원장의 구속에 대한 여러 얘기를 했습니다. 국민들 위에서 군림하면서 판사들이 그동안 저질러온 오만과 편견들을 얘기하더라구요. 대법원장의 구속은 이 사회의 마지막 권위이자 성역까지 없어지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사회에 태풍이 오고 있다는 전조(前兆)로 볼까요.”
  
  지난 정권의 무능과 안이한 점이 많았다는 생각이다. 국민의 세금을 정보기관 내에 은밀히 숨겨두고 잔치를 하고 나누어 쓰던 부패가 횡행했다. 장차관들 국회의원들 같은 공직자들 사이에 그 독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적폐 청산을 수사하는 검찰 역시 그 주범이었다. 수십 년 묵은 악취 속에서 그들의 코는 구린내를 맡지 못했다. 죄의식 자체가 없는 것이다. 법조인 출신 정보기관장들이 많았다. 그들조차 국민의 세금인 그 돈의 법적통제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들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법원장 역시 전제(專制)적인 권한을 행사했다. 법률신문 컬럼에 군사정권을 ‘워커’라고 표현했던 판사가 다음날 경상도 오지로 쫓겨가는 걸 본 적이 있다. 민주화 투쟁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판사가 즉시 강원도 영월로 쫓겨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홍천에서 성실하게 일하던 판사의 평가가 십년 내내 온통 ‘하’로 기록된 사실을 전해 듣기도 했다. 권력의 독기 아래 판사가 바로 재판을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적폐청산의 물결은 정적 제거라는 얕은 목적과는 달리 권력 내에서 그동안 마비됐던 감각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래서 때때로 태풍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정체된 거대한 바다를 흔들어 심연까지 산소가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정말 이 징역형이 괴롭습니다. 형이 확정되면 내 힘으로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요. 정말 바르게 나를 판단할 대법관이 있을까요?”
  “이 사건은 정치입니다. 대법원은 대한민국의 법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들이 ‘정치를 법치’로 할지 아니면 법치의 임무를 정치로 타락시킬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 운명이 이런 것도 섭리일까요?”
  그가 물었다.
  
  “하나님은 이병호 원장님을 아십니다. 오기 전에 기도해 보니까 그렇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시대의 격류 속에서 차라리 두 팔을 벌리고 당당하게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사랑하신다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옥 속에서 버틸 힘을 주실 것으로 봅니다.”
  
  나는 그의 억울한 걸 알고 있다. 시대의 격류 속에서 그를 위한 개인 변호사의 주장이 미약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나의 소명이다. 남을 정죄(定罪)하면 똑같은 잣대로 자신도 정죄 받는다. 성경 속의 진리다. 이번 정권도 몇 년 후 똑같은 길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 2019-01-26, 11: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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