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리는 천사 변호사
누군가를 증오해야 하는 숨은 정신병자들이 병원이 아니라 법률사무소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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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시간 교대역 부근의 빌딩 6층 사무실에서 변호사 두 분을 만났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얘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투명한 영혼을 가진 변호사업계의 성자(聖者) 같은 분들이었다. 같은 변호사라는 포장 속에 있어도 그 질(質)이 천차만별이다.
  
  그 빌딩의 관리인은 입주해 있는 변호사들과 법조 브로커들의 추한 모습을 직접 본다고 말을 전해 들었다. 하루에도 지하의 미로 같은 통로로 이리 도망가고 저리 피하는 질 나쁜 변호사들이 여럿 있다는 것이다. 지하의 넓은 커피숍은 법조 브로커들의 소굴이라고 했다. 백은 흑과 대비할 때 더욱 희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내가 고정적으로 만남을 가지는 두 변호사님중 칠십대 중반의 법조 선배 오 변호사는 법관생활과 대학교수를 오랫동안 해 왔다. 자신이 번 돈을 가난하고 힘든 사람에게 기부하기도 하고 힘들어 하는 후배 변호사를 지원했다. 또 다른 한 분인 박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로 평가받으면서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청빈하게 살고 있었다. 한동안 그가 몸이 아팠다. 아내가 작은 분식점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왔다.
  
  관점이동을 해서 보면 돈 잘 벌어 축재한 변호사만이 성공한 건 아닌 것 같다. 얼마나 청빈한지 마음그릇까지 얼마나 비웠는지가 진짜 축복인지도 모른다. 정확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한승헌 변호사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시장통의 허름한 집에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군사독재시절 법정에서 바른 소리를 하다가 몇 번 감옥에도 갔다 온 사람이었다.
  
  두 분의 변호사와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위로하고 위로받곤 했다. 오늘은 박 변호사가 조용한 어조로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몇 년 전에 상속문제를 처리해 줬던 분이 변호사협회에 나를 처벌해 달라고 진정을 했어. 변호사인 내가 진실을 인정하는 바람에 좀 더 받을 수 있는 돈을 받지 못했다는 거지. 앞으로 열릴 위원회에 제출할 답변서를 지금 쓰는 중이야.”
  
  그런 경우가 많았다. 변호사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주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탈법의 방법 제시와 그럴듯한 거짓말을 주 상품으로 사기를 원한다. 전관예우는 그런 것들을 위장하는 금박 포장지라고 할까. 많은 변호사들 역시 자신을 상품으로 내놓는 이상 고객이 요구하는 ‘승소(勝訴)’라는 상품이 절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속에서 진실을 인정한 변호사는 무능하고 배임행위를 한 나쁜 놈으로 취급받았다.
  
  “진정을 한 그 의뢰인이 원망스럽겠네요?”
  
  내가 박 변호사에게 되물었다. 나도 그런 고통을 당해 본 적이 있었다. 성의를 다했는데도 그들은 나를 악덕 변호사 취급을 했다. 배신감에 마음속에서 살인까지 했었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조금의 감정도 실리지 않은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원망하지는 않아. 그 분이 나를 처음 찾아왔을 때 참 겸손하고 착했어. 그러다가 대법원까지 가면서 재판에 계속 지니까 모든 원망이 나에게 돌아온 거겠지. 미워하지도 않고 이해해.”
  
  그게 박 변호사의 예수를 닮은 인품이었다.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오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변호사를 하다보면 십 년에 한번 꼴로 자기 자신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게 업계에서 돌아다니는 말이야. 나도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시작했을 때 구속된 한 의뢰인을 선고유예로 석방이 되게 해 준 적이 있어요. 고맙다고 보약까지 지어가지고 온 분이죠. 성공보수까지 주겠다고 약속한 분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면서 나를 변호사 협회에 진정하고 사무실로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예요. 내가 왜 그런 고난을 당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지금도 알 수 없어요.”
  
  자신의 불행을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의뢰인도 많았다. 누군가를 증오해야 하는 숨은 정신병자들이 병원이 아니라 법률사무소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의 마지막 과녁이 변호사일 때도 많았다. 그게 의뢰인만은 아닌 것 같다. 고위법관 생활을 오래 한 오 변호사가 덧붙였다.
  
  “제가 부장판사를 할 때 데리고 있던 배석판사가 있었어요. 자기는 부장님을 평생의 멘토로 모신다고 하면서 입에 존경합니다를 달고 있었어요.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 갔는데 그 판사가 재판장이더라구요. 저보고 합의를 권유하더라구요. 그래서 의뢰인이 돈을 구하게 해서 합의를 시켰죠. 재판장의 권유고 함께 일하던 판사라 그 정도면 당연히 집행유예가 될 걸로 생각했어요. 어떤 판사라도 사건 처리기준이 그렇구요.
  그런데 선고법정에서 그 재판장은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시키는 겁니다. 내가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왔어요. 선고이유를 말하는데 들어보니까 ‘나도 이제 당신만큼 성장했소’라는 그 판사의 메시지가 마음에 전해지는 거예요. 부하판사로 데리고 있던 그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나 자신이 참담했던 적이 있죠.”
  
  변호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봤다. 이 세상은 악령이 지배하는 세상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진정으로 참회하는 인간을 거의 보지 못했다. 착한 사람들은 괴로움을 받았다. 악한 것에 대응해 분노를 터뜨린 순간 나 자신이 괴물로 변해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정말 이긴다는 게 무엇일까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백년 전 어떤 성자가 써 놓은 이런 글을 새벽에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적어 놓았다.
  
  ‘가장 위대한 일은 사람에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다. 그에게 나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그 아래에 서는 것이다. 기꺼이 그 모욕을 받는 것이다. 침뱉음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그렇게 당하여야 나는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참으로 높은 자는 낮게 되고 낮은 자는 높여진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높임을 받으려면, 사람에게 낮춤을 받아야 한다.’
  
  너무 높은 경지의 깨달음이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눈치챈다. 노자(老子)도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러면 얼마 후에 원수가 시체가 되어 강물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볼 것이다라고 했다.
  
  
[ 2019-02-10, 17: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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