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보기관 특활비 일부를 맡아본 경험
"그 돈에 대해서는 장부나 사용 근거를 남기지 말라고 주의를 주더군요. 모든 걸 기억으로만 남겼다가 나갈 때 모두 잊어버리라고 하더군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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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8월14일 오후 3시30분, 작열(灼熱)하는 태양이 세상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었다. 지하철 인덕원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차창으로 신도시의 넓은 터에 콘크리트 아파트들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생각이 머리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불 가까이 가면 화상을 입듯이 권력은 뜨거운 불덩이인지도 모른다. 법정에서 전두환 정권의 핵심이던 장세동 안기부장을 본 적이 있다. 권력의 정점(頂点)에 있었지만 그는 세상의 깊은 골짜기인 감옥에도 여러 번 갔다. 사무실을 찾아온 권영해 안기부장과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는 검찰청 조사실에서 카터 칼로 배를 그었다고 했다. 수치를 당하느니 죽기 위해서라고 했다.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자신을 검사와 수사관들이 얼어붙을 듯한 차디찬 눈길로 내려다보던 광경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교수형을 당했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파리 근처에서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남아 있었다. 한때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의 운명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총에 맞아죽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을 했다.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대통령은 감옥을 갔다. 권력의 종말은 죽음이나 감옥이어야 할까. 그런 권력을 잡기 위해 왜 목숨을 거는 것일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서울 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의 유리방은 후덥지근한 열기가 가득 차 있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핏기 없는 핼쑥한 얼굴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정말 괴로웠어요.”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공허하고 힘없는 목소리였다.
  
  “법정에서 자제하고 공손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풀어주면 제가 도주할 우려가 있다는 검사의 말을 듣고 분노했었어요. 좁고 어둠침침한 감방 안에서 밤에 잠을 못 이루고 생각해 봤어요. 내 자신이 거미줄에 걸린 채 살려고 몸부림치는 벌레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나이가 내년이면 여든 살이고 수명도 얼마 남지 않은 걸 느낍니다. 모든 걸 섭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겠죠.”
  
  그의 눈에서 하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보예산은 철저히 기밀이 유지되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안보는 구멍이 뚫려요. 그런 정보기관의 특성을 모르고 검사들이 법의 원칙대로만 따지면 안돼요.”
  평생 정보조직 속에서 살아온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기관을 걱정했다. 나는 그가 객관화된 시각에서 현실을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좀 생각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뇌리에 박힌 정보기관에 대한 인식은 어둡고 피 냄새가 나는 지하실의 고문 장면들입니다. 동시에 국민의 세금인 막대한 특활비를 낭비하고 정치를 농단하는 부정적인 적폐의 면도 있어요. 바뀐 정권은 적폐청산의 기치를 내걸고 국민적 호응을 얻는 흐름으로 봅니다.”
  
  “저는 정보기관 내에서도 평생 해외정보만 담당했어요. 지하실에 사람을 끌어다가 고문을 하거나 정보기관의 돈을 함부로 정치에 쓴 걸 몰라요. 제가 해외담당 차장까지 했는데 나한테 배당된 특활비는 몇백만 원 수준에 불과했어요.
  
  저는 평생 해외정보를 담당하면서 이스라엘의 모사드 같은 외국의 정보기관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상이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라파트를 죽이기 위해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예산을 쓰라고 지시한 일이 있어요. 그런 경우 국가지도자는 정보기관의 예산에 대한 지휘권도 가지는 셈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대통령은 북한이나 공산권에 밀사를 보내는 수가 있습니다. 그 비용도 다 정보기관의 예산을 사용합니다. 그런 경우를 예상해서 국정원장에게 수십억의 특수사업비를 책정합니다. 그리고 그 사용에 전적인 재량권을 부여합니다. 검찰과 법원에서는 규정에 맞게 특수사업비를 써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에게 부여된 재량권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직속상관인 대통령이 지시하면 국정원장은 돈을 보내야 하는 겁니다. 검찰이 제시하는 법의 잣대에 저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글쎄요, 순수한 정보기관이라는 측면에서 그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보기관의 행태가 그동안 그렇게 순수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후 전두환 소장의 중앙정보부장 서리 겸직을 세상이 어떻게 평가합니까? 팔천억 특활비의 자유로운 사용은 군인의 정치권 장악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정치는 돈입니다. 역대 대통령이 심복을 국정원장이나 그 기조실장으로 임명해 거액을 자기 돈같이 사용해 왔던 것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이 받은 정치자금을 특활비에 섞어 돈세탁을 하기도 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어떤 대통령은 자기가 재벌로부터 받은 돈을 국정원장을 시켜 돈놀이를 하기도 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게 원장님이 이끌었던 정보기관의 예전의 타락하고 추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낮은 위치였지만 정보기관의 지휘부에서 잠시 근무하면서 어깨넘어 봤던 일들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외부에서 특채를 한 변호사 출신 엘리트라 참신하다고 생각했는지 특활비의 일부를 맡아 본 적이 있었죠. 그 돈에 대해서는 장부나 사용 근거를 남기지 말라고 주의를 주더군요. 모든 걸 기억으로만 남겼다가 나갈 때 모두 잊어버리라고 하더군요.
  어느 날입니다. 영부인의 비서관이 전화를 걸어 영부인께서 개인적으로 책을 발간하는데 그 표지를 비단으로 한다는 겁니다. 그 제작비를 보내라고 명령하는 겁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특활비는 국민의 세금인데 왜 대통령 부인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써야 하는 거냐며 거절했었죠. 영부인 비서관이 순간 “어”라고 외마디 소리를 하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더라구요. 그 뉘앙스는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변호사 자격이 있어 쫓겨나도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런 소리를 했지만 정보기관의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있었겠습니까? 얼마 후 상관은 저에게 더 이상 저를 커버하기 힘들다고 솔직히 얘기해 주더라구요. 그래서 쫓겨난 셈입니다. 대통령이 돈을 가져오라고 할 때 국정원의 그 누가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런 것들을 정말 몰라요.”
  이병호원장의 표정은 진심 같았다.
  
  “원장님은 다른 정보기관의 책임자들에 비해 정치적 감각이 둔한 면이 있으셨던 것 같네요.”
  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가 되물었다.
  
  “제가 국정원의 지휘부에 잠시 있었던 인연으로 여러 명의 국정원장이나 핵심 간부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 국정원장으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그가 대통령에게 돈을 지원해야 하느냐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역대 정권에서 관행처럼 그렇게 해 왔으니까요. 청와대에 가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운을 뗐답니다. 그랬더니 김대중 대통령이 하시는 말씀이 자신은 민주화를 이루어야 하는 지도자로서 국정원의 그런 돈은 한 푼도 쓸 수 없다고 하더라는 겁니다. 당시 국정원장은 그 말을 듣고 감격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얼마 후 대통령의 해외순방시 청와대에서 특활비의 청와대 지원을 요청하자 ‘역시나’라고 생각을 했었답니다. 정치 9단인 김대중 대통령이나 정치인 출신 국정원장은 그렇게 예민하게 문제점을 감지했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나 이병호 국정원장님은 너무 다른 모습이었네요. 어쨌든 이병호 원장님은 그동안 있어왔던 국정원 특활비의 적폐에 대해 십자가를 진 겁니다. 저는 이 사건의 본질을 그렇게 봅니다.”
  
  “그래도 정보기관은 지켜야 합니다. 국정원이 제 기능을 못하면 대한민국의 안보는 무너집니다. 제가 징역형을 살더라도 정보기관은 지켜야 해요.”
  
  
  
[ 2019-02-15, 11: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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