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몰랐어요”
“기조실장하고 나하고 둘만 있는 사이에서 벌어진 일인데 기조실장이 그렇다고 하니까 내가 몰려버린 거죠.”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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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1월 22일. 가을에서 겨울로 옮겨가는 스산한 계절이다. 오후 3시 30분의 온기 없는 태양이 서울 구치소 마당에 빛을 던지고 있었다. 장방형의 넓은 마당 양쪽에 나무 두 그루가 마주보고 우뚝 서 있다. 겨울을 준비하는 잎이 다 떨어진 굵은 가지만 남아있는 나무다. 그중 한 나무가 내려다보는 담 뒤에 여성죄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사동의 끝이 보였다. 그 무덤 속 같은 조용한 방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벽을 보고 앉아 있을 것 같았다.
  
  20여년 전 구치소를 드나들 때만 해도 여성들이 수용되어 있는 사동의 창살에는 알록달록한 깃발이 걸려있듯 여죄수들의 빨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담 밑으로 줄을 지어 걷는 것으로 운동하는 모습들도 보이곤 했다. 지금까지 눈에 잔상으로 남아있는 한 장면이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여죄수가 있었다. 운동시간에 아이는 죄수인 엄마 뒤를 따라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보아왔던 구치소의 모습이었다.
  
  일주일 전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부인을 만났었다. 부인은 나이 팔십이 된 남편이 이제 오년 정도 살면 인생을 마감할 것 같다고 했다. 바로 위의 형이 치매에 걸렸다는 얘기도 들었다. 가족의 병력이 그런 것 같았다. 감옥에 있는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남은 날도 그렇게 길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믿음을 권했다. 절망에 빠져있을 때 인간은 종교 이외에는 그 영혼이 탈출할 방법이 없었다.
  
  변호인 접견실이 있는 사동의 2층으로 갔다. 8호 유리방에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툼한 갈색의 겨울 수의를 바꾸어 입고 있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내가 안부부터 물었다.
  
  “엄 변호사가 권한 대로 시편 23편을 천 번 썼어요. 쓰니까 상념이 없어지더라구요. 정말 좋은 방법을 알려줬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성경을 요한계시록까지 다 읽었어요. 그리고 요즈음은 범브란트 목사가 쓴 책이나 토마스 아 캠피스가 쓴 기독교 서적들을 읽고 있습니다.”
  
  그가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환란은 하나님한테로 방향을 돌리게 하는 채찍인 것 같다.
  
  “만약 석방이 되신다면 앞으로 5년 정도 뭘 하고 싶으세요?”
  그 부인의 말을 속으로 떠올리면서 물었다. 한 인생이 마지막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 알고 싶기도 했다.
  
  “나간다면 진지하게 성경을 읽고 깊게 공부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세상일에 바빠서 진리에 대해서는 건성이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 있는 아들을 보고 싶고 나머지 인생은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을 만나 밥 먹는 일이죠.”
  
  인간이 누리는 행복은 평범한 일상에 있다는 걸 그를 통해 재확인한다.
  
  “이번 주는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증언녹취록을 다시 한번 정밀하게 읽었어요.”
  내가 말했다.
  
  “어떤 진술들이 있었죠?”
  그가 되물었다. 호기심의 눈빛이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보다는 여당 내의 유승민 같은 비박세력을 더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 여당 내부의 싸움 때문에 패배한 거죠. 박근혜 대통령이 미워한 비박세력이 야당과 합쳐 탄핵과 구속에 찬성했으니까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무덤을 판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예전 같으면 대통령이 정보기관을 개입시켜서 반대파에게 별 짓을 다 했을 텐데 증언녹취록을 보면 국정원이 대통령의 개가 되어 정치개입은 하지 않은 것 같더라구요. 만약 국정원이 정치관여를 했다면 혁명같은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폭로가 나오지 않을 리가 없죠. 국정원을 정치에 관여하지 않게 틀어쥔 것만 해도 이병원원장님은 보이지 않는 큰 일을 한 겁니다.”
  
  “나는 국정원이 정말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어요. 정보기관이 그런 일 아니더라도 하려고 하면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사실 이병기 비서실장이 정치경험도 있고 균형 감각이 있는 사람이예요. 대통령한테 바른 소리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바른 소리를 싫어했어요. 그러니까 이병기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해 놓고 완전히 배제해 버린 거예요. 20대 총선을 정무수석하고만 치르니까 그런 실수가 나온 거죠. 정무수석 그 사람은 좀 껄렁껄렁한 사람이예요. 비서실장이 군대로 치면 참모장인데 비서실장이 수석들을 총괄하면서 조율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게 하게 하지를 않았죠. 직접 마음에 드는 정무수석이나 민정수석하고만 얘기하고 그랬죠.”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을 정치에 이용하려고는 하지 않았나요?”
  “국정원 내 정보국의 정치파트도 있고 또 정책에 관해 여론조사를 하는 예산도 책정되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철저히 금지시켰어요. 정책에 관한 여론조사를 해도 정치와 관련성을 의심받을 수 있었죠. 그래서 못하게 했어요. 기조실장이 내게 알리고 여당 여론조사 비용을 지원했다고 해서 내가 정치관여죄로 기소가 됐는데 사실 보고받은 적이 없어요. 만약에 그런 낌새를 내가 알아차렸다면 단돈 일원도 지원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런 내 속마음을 누가 알아주겠어요?”
  
  “국정원장에게 배정된 특수사업비는 어떻게 관리했습니까?”
  나는 사건의 본질로 다시 돌아갔다.
  “그건 회계책임자인 기조실장이 맡아서 처리하고 저한테는 한 달에 일정액씩 줬어요.”
  
  “그러면 나머지 특수사업비는 어떻게 사용됐습니까?”
  “기조실장으로부터 관례적으로 매월 세 명의 차장과 기조실장에게 일정액씩 가도록 시스템화 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돈이 얼마나 나왔고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구체적으로 보고를 받은 적이 없어요. 내 입장에서는 기조실장이 행정적으로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하고 믿었지 의심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기조실장이 관례적으로 매달 대통령에게 돈을 가져다주었다는 보고를 받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죠. 법정에서 기조실장 담당 변호사는 청와대에 돈을 가져다 줄 때마다 기조실장이 원장인 저에게 보고한 후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런 보고를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나는 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어요. 기조실장이 하는 행정 처리의 일환으로 생각한 거죠. 어쩌다 들어와서 보고를 해도 그러냐 하고 건성으로 대답을 한 정도겠죠. 제 기억에는 없단 말이예요. 기조실장이 보고했다고 진술을 하니까 그랬나? 하는 게 저의 마음입니다. 검찰은 내가 새누리당 여론 조사비를 가져다주라고 했다고 그걸 정치관여로 기소를 했는데 진짜 그런 적은 없어요. 기조실장하고 나하고 둘만 있는 사이에서 벌어진 일인데 기조실장이 그렇다고 하니까 내가 몰려버린 거죠.”
  
  “청와대에 돈을 가져다 줬다는 건 정확한가요?”
  “부하 말대로 믿을 수밖에요. 그렇다고 대통령한테 그 돈 받으셨냐고 확인할 수도 없구요.”
  
  “기조실장은 기밀을 이유로 진술을 거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어떤 약점이 잡혀 국정원의 비밀 시스템을 전부 불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 2019-02-27, 06: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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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타임즈    2019-02-27 오전 9:49
내가 혐오하는 짓은 '거짓말'.
싫어하는 단어는 '복지'.
내가 인간으로 보지 않는 대상은 '게으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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