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이기는 능력
"산다는 게 고통만 남았다면 스위스로 가서 비용을 지급하고 안락사를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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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왔다. 몇 년에 한 번씩 봐도 오십 오년 이상 우정을 이어온 사이였다. 흙수저 출신의 그는 일찍 해외로 나가 돈을 벌었다. 노인이 된 그는 여생을 편안히 지낼 만큼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인생역전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가장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고교시절도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했다. 대학도 일 년 벌어 일 년을 다니면서 졸업한 그였다. 천 쪼가리가 든 가방을 들고 홍콩 뒷골목의 중국 상인들을 찾아다니던 그였다. 젊은 시절 그는 자신을 ‘걸레장사’라고 했었다. 수백 수천 가지 직물 샘플의 조각을 노트 귀퉁이에 붙이고 그 직물에 관한 지식을 깨알같이 써서 영어단어같이 암기하던 그였다. 명필 한석봉이 어둠 속에서 글을 쓰듯 그는 깜깜한 사무실에서 직물조각들의 촉감을 기억하는 연습을 했었다. 이제 우리 둘 다 그럭저럭 인생 3막이 끝난 셈이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함께 놀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져 엄마가 부르면 집으로 돌아가 씻고 밥 먹고 잠이 들었었다. 그렇게 인생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그와 사무실 근처의 보리굴비 집에서 밥상을 놓고 마주앉았다. 젊은 시절 눈에서 독이 느껴질 정도로 강했던 그의 눈에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 그의 힘없는 백발이 가을 늪가의 갈대처럼 스산한 느낌을 주었다. 친구의 모습은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나도 그럴 것이다. 그가 가만히 있다가 불쑥 물었다.
  
  “너 늙어서 낙(樂)이 뭔지 알아?”
  뭔가를 내게 알려주겠다는 그의 눈빛이었다.
  
  “뭔데?”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과 만나서 얘기하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인 것 같아. 요즈음은 여행과 산책 그리고 사람 만나기가 내가 행복을 찾는 길이야. 그런데 이상해. 중고등학교 동창이 삼백 명 되는데 그중 골프를 함께 칠 수 있는 사람은 오십 명도 안 돼. 그 중에서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는 다섯 명도 안 돼. 반면에 해외에서 우연히 알게 된 다섯 가정이 있어.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어. 크루즈 여행도 같이 했지. 그런데 고교 동창은 이게 안 돼. 한번 같이 여행을 떠났는데 이틀 만에 다시는 함께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사람들은 현재의 나를 보지 않고 과거 그들이 가졌던 이미지와 관념을 봤다. 그도 그런 걸 느끼지 않았을까. 세상의 눈이 그런 것 같다. 이웃의 눈에는 예수까지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일 뿐이었다. 중국의 도통한 마조선사가 돌아오자 이웃 노파는 마씨네 꼬마가 왔다고 했다. 열두 살 무렵부터 친구지만 시샘을 하는 경쟁의 관계이기도 했다. 내가 그에게 하고 싶던 말을 비로소 쑥스러운 마음으로 꺼냈다.
  
  “어려서부터 친구였지만 너는 나보다 훨씬 정신적으로 성숙한 존재였어. 중학교 시절 네가 좁은 내 다다미방으로 와서 같이 자려고 할 때 여자 친구 편지를 보여주면서 그 여자아이와 나중에 결혼해서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가겠다고 했었어. 그런 너를 보면서 나는 사랑과 믿음의 존재를 느낀 것 같아. 자네한테서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게 뭔지를 배운 것 같아. 고등학교 때 넌 나한테 사법고시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줬어. 우리같이 개천에 사는 아이들이 그곳을 벗어나려면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한다고 알려줬지. 그렇게 내 눈을 뜨게 해 준 건 친구인 너였어. 늙은 지금도 감사하고 있지.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쑥스러워서 그 말을 하지 못했어.”
  
  내 말을 듣는 그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퍼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못마땅할 때는 무서울 정도로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날카로운 그의 말을 통해 나의 못나고 일그러진 모습들을 알아채기도 했었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서도 나를 인도해 주는 좋은 친구였다. 그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이제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행복보다 고통이 더 많을 게 분명해. 늙고 병들어 몸을 못 쓰고 요양원 침대 위에서 신음할 때가 되면 더 이상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산다는 게 고통만 남았다면 스위스로 가서 비용을 지급하고 안락사를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 지난해 한 친구가 정년퇴직을 하고 빌딩 경비로 들어갔는데 얼마 안돼서 칼에 맞아 죽었어. 대기업 임원으로 잘 살아왔는데 말이야. 인생 허무하지 뭐.”
  
  죽음에 대해서도 그는 앞서가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뜨거웠던 젊음이 지나면 모두들 죽음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 같다.
  
  생명과 건강 그리고 평범한 생활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주는 은혜였다. 나는 더 늙은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을 이기는 능력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반드시 죽어야 할 우리에게 죽음을 이기는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대의 은혜가 아닐까.
  
[ 2019-03-11, 05: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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