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의사 홍철 선생
"영리하고 돈에 밝은 사람들은 의사를 하면 안 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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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고 허름한 사층건물 안에 있는 그 안과의원은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칠십대 중반인데도 아이 같은 둥그런 눈을 가진 의사 선생님이 적막한 느낌이 드는 진료실에 앉아 있고 사십대의 아들은 의원 입구 카운터 뒤에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내가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안과 의원이다. 반쯤 열려있는 진료실 문을 통해 노인 의사가 환자와 소곤거리듯 대화를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환자 한 사람을 앞에 놓고 초등학교 교사같이 오랫동안 설명을 해주는 노인 의사였다.
  
  인간 냄새가 나는 의사를 찾다가 무심히 들른 안과 의원이었다. 콘베이어 벨트에 놓인 제품을 검수하는 공원 같은 큰 병원의 의사들이 싫었다. 마음이 없고 영혼이 없고 따뜻하지 않았다. 차디찬 표정으로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같이 환자의 실명(失明)을 사무적으로 통고하는 그런 의사의 피가 뜨거운지 의문이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카운터에 앉아있던 노인 의사의 아들이 다가와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이십대부터 안과진료를 시작해서 칠십대인 지금까지 50년 안과 의사를 하셨어요. 그때 찾아온 환자가 지금 노인이 되어 아버지에게 와요. 아버지는 서울의대에서 학위를 따시고 동경대 의과대학에 가서 다시 공부를 해서 또 학위를 받았어요. 원래 공부를 좋아하세요. 나이가 있으셔서 앞으로 얼마나 진료를 더 하실지는 모르겠는데 그때가 되면 우리가 다른 좋은 선생님을 소개할게요.”
  
  아들의 어조에는 오래 기다리는 나를 위로하려는 따뜻한 마음이 배어 있었다. 낡은 벽의 먼지 낀 장식장 안에는 젊은 시절 의사선생의 사진과 함께 학위패가 놓여 있었다. 경기고에 서울의대를 나왔다. 돈을 벌려면 필요가 없는데도 동경에 가서 오랫동안 공부를 한 것 같다. 대학병원의 안과 교수를 하다가 정년퇴임을 했다. 진짜 공부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우리 때만 해도 의과대학에서 학위는 통과의례 같은 형식적인 면이 있었다. 전문의 시험에 치중하고 박사는 대충 논문만 제출하면 통과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책상 앞에 앉은 의사선생이 혼잣말같이 내뱉었다.
  
  “아흔 살이 넘으신 안과선배가 나보고 자기가 평생 임상한 자료를 가지고 가래. 주겠다고. 일본에 가서 공부해 보면 거기 의사들은 자료정리를 참 잘해. 의사들의 임상경험은 병을 고치는 데 아주 중요한 귀중한 자료거든. 그런데 나도 나이가 먹어서 선배의 임상자료를 정리할 시간이나 능력이 없어. 그리고 내 자료만 해도 이제는 많고 말이야. 그런 걸 분석하고 정리하는 후배 의사가 있으면 좋겠는데 없어. 영리하고 돈에 밝은 사람들은 의사를 하면 안 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가 되물었다.
  
  “피부과라고 해도 피부과 의사가 없고 안과라고 해도 안과 의사가 없어. 의사가 없는 세상이여 피부과 의사가 허구헌 날 점 빼주고 살결을 매끈하게 해주는 성형만 하니까 피부병을 고칠 수 없게 되는 거지. 병리공부를 하지 않으면 의사가 아니여. 내 분야인 안과도 마찬가지여. 젊은 의사들이 돈 되는 라식수술만 하다보니까 기능공이 되는 거요. 눈에 다래끼가 나도 고쳐줄 줄을 몰라. 전문성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그는 나의 고교 선배이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을 열어놓고 고민을 얘기한 것이다. 방송출연을 해서 탤런트가 되고 화려한 인테리어의 병원에서 돈을 우상으로 모시는 의사보다 오십 년을 소같이 자기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그의 인내에 존경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 2019-03-13, 03: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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