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主祈禱文)을 압수해 갔어요"
나는 왜 굳이 조사를 하는 시간에 그(피의자) 앞에서 검사가 손톱을 깎느냐는 내용으로 일간지에 칼럼을 썼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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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년 전 한 특이한 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기업가의 사기사건인데 수사검사들은 정치권이나 권력기관에 뇌물을 준 데 대해 강한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유명 정치인이나 거물을 파괴해야 쾌감을 느끼는 게 그들의 생리였다. 거물이나 적의(敵意)를 가진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자신의 이름이 신문기사로 나는 게 그들의 보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사건은 정도가 심했다. 수사가 아니라 비열한 공작이었다. 검사가 청와대로 간 선배검사를 파멸시키기 위해 업체의 사장을 압박했다. 뇌물을 준 적도 없는데 줬다고 진술하게 만들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모략이었다. 거짓 진술을 하지 않으려고 하자 그 업체사장의 회사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수십 번 압수수색이 들어가기도 했다. 협박을 받은 업체의 사장이 분노했다. 어떻게 뇌물을 주지도 않았는데 줬다고 거짓 진술을 하느냐고 하면서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 사장은 검사에게서 받은 모멸감으로 눈물을 흘렸다. 소환 받을 때마다 담당검사는 책상 앞에서 손톱을 깎는다는 것이었다. 손톱 조각에 튕겨서 얼굴에 맞는 순간 뺨따귀를 맞는 것 같은 모욕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을 정도 이상으로 누르면 용수철 같이 튀는 법이다. 그 사장은 마침내 죽을 각오를 하고 조사하는 검사의 말들을 몰래 녹음을 했다. 그리고 방송국으로 가져갔다.
  
  나는 왜 굳이 조사를 하는 시간에 그 앞에서 검사가 손톱을 깎느냐는 내용으로 일간지에 칼럼을 썼었다. 불법적인 그런 행동은 이미 수사가 아니었다. 권력의 그런 일탈과 싸우는 게 변호사의 일이고 그 무기는 글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얼마 후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세상 무대에서 강제로 퇴장당했다.
  
  세월이 흘렀다. 그 사건과 인물은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풍화되어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변호사는 그가 본 사회적 불의와 억울한 희생자의 모습을 역사 앞에 남겨둘 소명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의사의 임상체험기라고나 할까. 나는 소설 형식으로 그 사건을 형상화했다. 주인공의 이름을 뭐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주기도’라고 했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라는 마음이었다. 간절한 기도는 하늘에 가 닿는다고 믿었다. 원고를 마감한 후 그 초고를 감옥 속에서 12년 10개월 동안 생활해 온 그 주인공에게 건네주었다. 진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고치려는 의도였다. 몇 달 후 다시 교도소를 찾아가 그를 만났다. 그가 겁먹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검사가 감방에 있는 나를 찾아와 내 물품들을 모두 압수해 갔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요 내 물품이 아니라 같은 감방에 있는 옆 수감자 관물대에 있는 주기도문도 다 가져갔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주기도’라는 게 적혀 있으면 다 압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겁니다. 겁이 납니다. 아직 책으로 만들지 마세요.”
  
  나는 쓴 웃음이 나왔다. 검찰의 모략을 받고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변양호 신드롬의 주인공 변양호가 나의 친구였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검찰수사에 대해 책을 썼다가 내용을 고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했다. 세상이 밝아지려면 언론출판의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아닌가 보다.
[ 2019-03-13, 22: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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