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록그룹 '키노'의 리더 '빅토르 최'의 의심스러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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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페레스트로이카'의 원동력이 됐던 록그룹 '키노'의 리더였던 '빅토르 최'는 한반도 출신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1962년 출생했다. 상트페테르부르그 예술학교 공예학과를 졸업한 그는 캄차트카 거리의 지하 화실(火室)에서 화부 노릇을 하면서도 숙명처럼 노래를 불렀다.
  
  1984년 22세 때, 게오르규, 유노, 알렉세이와 함께 4인조 록그룹 '키노'를 결성해서 부패한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젊은이들에게 열풍 같은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병사들의 구두코엔 먼지만 쌓이고/공장의 기계는 녹슬기만 한다.
   호밀빵 배급소 대기줄은 길어만 가고/노동자의 허리는 줄어만 간다.
   이대로는 싫다, 이대로는 싫다/우리는 원한다 변화된 내일을!>
  
  목덜미를 덮는 긴 머리에 창백한 얼굴, 색바랜 청바지,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신들린 듯이 기타를 치며 열창을 하고는 허공으로 껑충 뛰어오르면 우레같이 열광하던 젊은 팬들.
  
  빅토르 최의 공연 티켓은 암거래로 열 배를 주고도 구하기 어려웠다. 러시아의 젊은 세대들에게 불어닥친 '유로굴라'(지중해의 거친 계절풍)였다. 이처럼 선풍적인 그의 인기가 페레스트로이카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1985년부터 유럽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조국인 코리아에서 공연을 갖는 게 그의 꿈이었지만 당국의 허가가 쉽게 나지 않았다. 1990년, 드디어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10월에 일본 공연을 거쳐 한국에서 공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꿈꾸던 서울 공연을 두 달 앞둔 8월 15일, 자동차를 몰고 가다 대형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빅토르 최는 눈앞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정말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앗다.
  
  개혁파에서는 보수파에 의한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고 운전사는 전혀 뜻밖의 우연한 사고였다고 극구 부인했다. 진실은 그 운전사가 알고 있지만 밝힐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신은 보고스톱스크야 묘지에 안장했는데, 불 붙은 담배와 싱싱한 꽃다발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은 팬들이 줄을 이어 참배를 했다. 심지어는 어느 KGB 간부의 딸과 정부 관료의 아들이 빅토르 최의 묘지 부근에 방을 얻어 놓고 매일같이 묘지 주위를 맴돌며 그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벌써 20여 년이 지난 이야기다.
  
  북한에서도 비슷한 교통사고가 많이 있었다.
[ 2019-04-12, 19: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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