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허위 간첩선 신고 사건의 전말(顚末)
"사실은 콩밭을 매다가…날은 덥고 목은 마르고…손등에 흐르는 피를 보자 갑자기 간첩선 신고 포상금이 생각나서…"

대서양의 민들레(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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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동해에서 표류 중인 북한 선박을 우리 해군 함정이 구조해 북한 측으로 돌려 보낸 사건이 있엇다.
  
  그때 근처에는 우리 해경 경비함도 있었다. 일반 표류선박이라면 응당 해경함정이 먼저 구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해군 함정이 그들을 구조해 북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일본 측에서는 이 사건을 모종의 사건을 저지르고 북한을 탈출한 '반동 종파분자'를 북한측의 요청으로 붙잡아 인도한 게 아니냐?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오래 전에 있었던 '거문도 허위 간첩선 신고 사건'이 생각났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한번도 매스컴에 보도된 적이 없다.
  
  1973년 여름이었다. 내가 근무햇던 호위구축함 충남함은 제주도 근해에서 초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유류절약을 위해 순항속도(巡航速度)로 담당 해역을 왔다리, 갔다리 감시하고 있는데 진해 함대사령부로부터 긴급 비밀 전문이 왔다.
  
  "거문도 간첩 상륙. 전문 수령 즉시 거문도 외곽 도주로 차단, 의아선박 검색하라!"
  
  충남함은 앞을 가로막는 파도를 넘을 때마다 경주마처럼 껑충껑충 허공으로 뜀박질을 하며 전속으로 달려갔다. 도주하는 간첩선을 갑작스럽게 조우할 경우를 대비해서 함장은 멀리서부터 전투배치를 명했다. 거문도가 가까워질수록 대원들은 바짝 긴장해서 눈빛이 빛났다. 거문도 외곽에 도착했을 때는 해질 무렵이었다. 이 작전에 투입된 함정은 당시 3척밖에 없었던 구축함을 비롯해서 초계함, 고속정 등 10여 척이나 되었다. 간첩이 상륙했다는 섬에는 경찰 및 해병대 1개 중대가 투입되었다고 했다. 거의 이틀 동안이나 온 섬을 이잡듯이 뒤졌으나 간첩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이 작전은 아무런 성과 없이 종료되고 말았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나는 해군에서 제대해서 외항선을 타면서 동승했던 거문도 출신 선원을 통해서 그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그 선원은 허위 신고를 했던 정칠봉(가명) 씨와 한 마을에 살았던 사람이었다.
  
  모주꾼인 정칠봉은 그날 아침나절부터 마누라한테 붙잡혀 어쩔 수 없이 콩밭을 매고 있었다. 한낮이 가까워지자 땡볕이 기승을 부리며 등덜미를 푹푹 찌기 시작했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으로 눈이 따가웠다. 목은 마르고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지만 누가 새참 갖다 줄 사람도 없었다. 제풀에 짜증이 나서 호미질이 거칠어졌다. 일을 하기 싫으니까 온갖 잔꾀가 떠올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 반상회에서 구장이 하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간첩선을 신고해서 나포하면 포상금 3000만 원, 간첩을 신고해서 체포하면 500만 원!"
  
  엉뚱한 생각을 하니 손발이 따로 놀았다. 헛된 꿈 깨라고 호미 끝이 손등을 쪼고 말았다. '아얏!" 손등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피를 보는 순간 정칠봉은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우기면 저그들이 우째 알것노!'
  
  그는 갑지기 회미를 집어던지고 벌떡 일어섰다. "밭매다 또 어디로 내빼요!" 마누라의 타박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설사 만난 사람처럼 아랫배를 싸안으며 밭둑을 벗어낫다. 마누라 시야에서 벗어나자 정칠봉은 제 손으로 옷을 찢고 땅바닥에 뒹굴었다. 얼굴은 돌맹이로 찧어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파출소에 들어선 정칠봉은 너무 충격을 받아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가가간첩이…밭 매다 배가 아파 똥 누러 가는데 갑자기 바우 뒤에서 낯선 놈이 불쑥 나타나…당신 누구요? 뭣하는 사람이요? 물었던니, 그 새끼가 말도 없이 날 죽이려고 불쑥 단도를 빼 들고 헉, 헉…."
  
  최초에 신고를 받은 파출소 당직 경찰은 정칠봉의 어설픈 연기에도 그만 홀딱 속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거문도에서는 예전부터 간첩 출몰 사건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진위를 확인하느라고 신고자와 입씨름을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간 나중에 무슨 벌을 받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간첩작전은 함대사령부에서 지휘했지만 군경합동 수사본부는 전남경찰국에 있었다. 합동수사본부에 파견된 해군 보안대 허 모(某) 소령은 아무래도 신고자의 태도가 의심스러웠다. 목격자는 신고자 한 사람밖에 없었다. 수사본부에 이첩되어 게급 높은 사람들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받던 정칠봉은 이제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사건이 이렇게 크게 될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허 소령은 부드럽고 자상한 말로 그를 달랬다.
  
  "이 봐요, 정칠봉 씨.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바른대로 말해요. 내가 책임지고 상부에 보고해서 조금도 벌을 안 받게 해 줄 테니. 당신의 신고로 대간첩작전에 동원된 인력과 함정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구축함 한 척을 한 시간 동안 움직이는데 필요한 비용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요? 당신 논밭 재산 다 팔아도 어림도 없어요. 그러니 일 초라도 빨리 바른 말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돕는 길이요."
  
  불안에 떨던 정칠봉은 허 소령의 진솔한 회유에 더 버티지 못하고 실토를 했다.
  
  "사실은 콩밭을 매다가…날은 덥고 목은 마르고…손등에 흐르는 피를 보자 갑자기 간첩선 신고 포상금이 생각나서…일이 이렇코롬 커질 줄은 모르고…흑흑…"
  
  정칠봉 씨는 허 소령의 약속대로 아무런 형벌도 받지 않았다. 중국집에서 푸짐한 식사 대접까지 받고 귀가했다. 멀쩡한 몸으로 돌아온 그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놀렸다.
  
  '어이, 칠봉이. 자네 장한 일 했다고 도경에서 칙사 대접 받았다면서. 우리 동네 인물 하나 났네 그려! 그래 포상금은 얼마나 받았는고? 한턱 내야 안 쓰겄는가?
  
  
[ 2019-04-13, 14: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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