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은 국토와 국민과 함께 영원할 것
박정희의 무덤에 침을 뱉는 자조차도, 그의 꿈과 업적을 뛰어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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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래공원, 박정희 소장의 흉상이 세워져 있는 이곳은, 58년 전 6관구사령부로서, 5·16군사혁명의 제1지휘소였습니다. 5월 16일 새벽 3시에 혁명군 출동령을 하달했습니다.
  
  요인체포 특수임무 장교단은 새벽 2시 30분 대기하다가 선두부대인 공수부대의 병력을 인수 받아 반도호텔과 총리실을 점령, 제2대 해병여단의 목표는 내무부, 치안국, 서울시경, 제3대 33사단의 점령목표는 KBS방송국과 전신전화국, 제4대 30사단의 목표는 중앙청, 청와대, 시경 탄약고, 서대문·마포형무소.
  
  2군사령부 부사령관 소장 박정희는 장교 250여 명, 부사관과 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걸어서 넘어, 주요기관을 점령하였습니다. 박정희는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해 전권을 장악하고, '혁명공약'을 발표했습니다.
  
  <5·16군사혁명 공약>
  1. 반공 강화
  2. 한미동맹 강화
  3. 부패 일소
  4. 민생고 해결
  5. 자유 통일
  
  당시는 의원내각제로 헌법상의 국군 통수권은 국무총리인 장면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장도영의 긴급 전화를 받고 새벽 4시경 미국 대사관으로 향해 군사혁명세력을 진압하려 했지만 미국 대사관 직원이 없어 들어갈 수 없었고, 수도원으로 피신하여 수차례 미국에 사태 진압을 요청했습니다.
  
  5월 17일, 박정희 소장은 미8군사령관 맥그루더를 만나서, 절대 군을 물릴 수 없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5월 18일, 박정희는 청와대로 윤보선 대통령을 찾아갔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은 쿠데타군을 진압하기보다, '올 것이 왔다'며 체념했습니다.
  
  5월 16일 혁명위원회 포고 제4호로 민의원, 참의원 및 지방의회는 해산됐습니다. 5월 22일 포고 제6호로 정당 및 사회단체는 해산되어 정치활동이 완전히 금지되었습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장면 내각은 붕괴되었고,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3년간의 군정통치가 이루어졌습니다. 1963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을 물리치고 당선됐습니다.
  
  4·19 학생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 정권은 분열과 무능, 공산세력의 발호로, 국민을 실망시키다가 결국 5·16 군사혁명을 불러왔습니다. 5·16군사혁명이 민주당 정부보다 4·19 학생혁명 정신을 더 잘 실현했습니다. 부정부패 일소, 반공·한미동맹, 산업혁명·경제기적을 강력하게 추진·실현했습니다.
  
  박정희의 꿈은 지독한 가난에서 자라났지만, 5·16 군사혁명을 통해서, 집권함으로써, 식민지와 분단, 전쟁의 역사를 뛰어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의 비운을 뛰어넘어, 국토와 국민과 함께 영원할 것입니다. 박정희의 무덤에 침을 뱉는 자조차도, 그의 꿈과 업적을 뛰어넘지 못할 것입니다.
[ 2019-05-16, 18: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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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대가리    2019-05-17 오후 12:19
박정희가 처음엔 싫었다. 근데 돌아 보자. 1960년대 어느 신문에 연재기사가 있었다.
'보리야 나오너라' 사진엔 소나무슾이 있는데 나무밑엔 햐얗게 보였다. 왜인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는 백성들이 늘어나면서 소나무는 거이 햐얗게 변하고 잇었다.
당시 미 480호 원조계획이 확정되기전엔 예산편성을 하지 못한다고 신문에 실렸었다.
박정희가 집권한후 새마을의 노래는 동네마다 퍼져 나갔다. 밤나무. 대추나무 심었다.
이런 고초끝에 지금 대한민국은 지구상 최악의 빈민국에서 경제성장국 10위권이다.
박정희를 아무리 지우려 해도 그 흔적은 지울수 없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시 대중이를
비롯 모두들 반대 했다. 완공되자, 김일성이 땅을 치며 후회 했단다. '저넘의 고속도로
전쟁 나면 군 비행장이 되겠구나' 빈 말이 아니다. 가난을 극복하고 국위를 드높인
분을 폄하하면 안된다.
   월운    2019-05-16 오후 8:17
생각해 보면 5.16. 군사 혁명이야 말로 구국의 혁명이 였고 우리 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쾌거 였습니다. 그 덕분에 유사이래 처음 배고픔에서 해방 되었고 근대 민주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후세에 널리 전하여 민족의 자랑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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