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일반인이 모두 볼 수 있는 최대의 공연
CCTV가 골목길을 감시하듯 법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법정 실화(實話) 소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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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형사법정의 방청석에 앉아 있었던 일이 있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현실에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를 알고 싶었다. 법대(法臺) 위의 미국 판사는 며칠째 방청하는 나의 모습을 관찰하더니 어느 날 나에게 비어있는 배심원석에 앉아서 구경하라고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재판은 일반인이 모두 볼 수 있는 최대의 공연이다. 미국 변호사 존 그리샴은 자기가 체험한 사건을 소설로 만들어 미국 최고의 작가반열에 올랐다. 그는 작품을 통해 변호사와 사회가 어떻게 건전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일본도 그런 부류가 있다. 작가 중에는 법정을 다니면서 방청하고 재판장의 태도나 검사 변호사의 모습을 꼼꼼하게 묘사해 책으로 내는 이들이 있다. 그런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에 재판에 임하는 사람들은 한층 더 신중하고 주의를 기울이기도 한다.
  
  개인법률사무소를 시작하고 십 년쯤 지났을 때였다. 여러 법정을 다니면서 많은 재판을 보았다. 내남없이 사람들은 자기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큰 회사의 사장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어느 날 회의를 진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게 해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화면 속의 자신이 정말 '싸가지 없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사장이라고 혼자 회의의자 등받이에 눕듯이 기대어 있는 태도도 교만하고 눈길도 건방지더라고 했다. 자기가 그런 모습인지 정말 몰랐다고 고백했다.
  
  나는 십 년 동안 보아왔던 법정풍경 중에서 그런 건방진 판사의 모습과 겸손하고 감동적인 재판장의 모습을 반반(半半)으로 대비시켜 원고지 백 장 정도 분량으로 시사잡지 월간조선에 기고했었다. 얼마 후 잡지사 편집장이 내게 연락했다. 대법원 공보관이 잡지사에 항의하는 의견을 표명해 왔다는 것이다. 그 글로 인해 나는 법관들 사이에 ‘요주의 인물’이 되어 버렸다.
  
  이상했다. 법정은 지나가는 행인도 볼 수 있도록 공개가 원칙이다. 학생들도 단체로 방청을 하곤 한다. 방청을 한 사람이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자신의 느낌을 글로 쓰는 것은 비밀누설도 아니고 명예훼손도 아니었다. 변호사는 재판의 본질을 읽어낼 수 있는 코드를 아는 전문가다. 스포츠 해설처럼 재판의 이면(裏面)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쓸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직무상 지켜야 할 비밀은 지켜야 한다. 내가 말하는 건 법정에서의 공개된 재판풍경을 말하는 것이다.
  
  이십사 년 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재벌회장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그 내용은 법정에 올려진 정치고 역사였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꼬박 삼십 일간 한 재판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꼬박 방청석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재판장과 피고인들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법조기자들에게 아쉬움이 있었다. 그들은 마감 시간 때문에 재판의 일부만 방청했다. 또 그 안에 숨겨진 법의 비밀코드를 해석할 능력이 부족했다. 검찰이나 법원이 의도적으로 만든 보도자료에 의존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진실과 거리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법정 풍경을 글로 남겼다. 후세의 사람들이 법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야 할 것 같았다. 그 글로 오랫동안 친했던 사람을 잃기도 했다. 재판을 받던 인물 중의 하나가 그의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법정 풍경을 글로 엮어 오는 일이 삼십 년이 넘어간다. 많은 오해도 있었다. 공명심에 그 짓을 한다는 비난도 들었다. 형사와 검사에게 능멸을 받으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법대 위의 판사 앞에서 피고인이 되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은밀한 성역(聖域)같던 재판정이 민주화의 물결에 따라 많이 변했다. 판결문을 공개하고 법정에서 촬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번지고 있다. CCTV가 골목길을 감시하듯 법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법정실화 소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 2019-07-03, 14: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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