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진술을 판소리로 한 作家 김홍신의 법정 저항
정치재판에서는 소리쳐야 한다. 덤벼야 한다. 거기서 조용하면 소리도 내보지 못한 채 살해당하는 수가 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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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홍신 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엊그제 신문 봤어요. 국정원장 변론기를 썼다고 하더라구요.”
  
  그가 내가 책을 낸 걸 알고 격려해 주기 위해 오랜만에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오래 전 그의 변호를 해 주면서 그와 알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다. 국회의원이던 그가 한 연설장에서 현직 대통령의 명예훼손을 하는 말을 했다고 해서 재판에 회부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김대중 대통령은 거짓말을 많이 해서 그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박아버려야 한다고 시중에 알려졌었다.
  
  법정에 선 그는 작은 고추 같은 인상이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재판장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최후진술을 할 때였다. 작가인 그는 최후진술을 판소리로 하겠다고 제의했다. 살아있는 권력을 질타하는 소리를 방청객들이 보는 법정에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혼이 강철 같은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법정에서 서 있는 피고인의 모습을 보면 참 다양하다. 거의 대부분은 강력한 천적을 앞에 두고 죽은 체 하는 벌레 같은 모습이다. 장관도 총리도 대통령도 재판에 걸리면 판사 앞에서 그저 조용조용히 하자고 한다. 법관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납작 엎드려 있자고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판사들이 동정을 해서 형을 감경(減輕)해 줄 거라고 착각들을 한다.
  
  나의 삼십 년 변호사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다. 정말 죄를 지었으면 참회하고 자백해야 한다. 그리고 침묵하면서 결과를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정치재판에서는 소리쳐야 한다. 덤벼야 한다. 거기서 조용하면 소리도 내보지 못한 채 살해당하는 수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권의 국정원장들이 재판을 받는 장면을 봤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국정원의 예산항목인 특활비의 일부가 청와대에 갔다. 청와대의 예산 일부를 국정원에 숨겨둔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소위 촛불혁명이 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이 됐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적폐청산의 파도 속에서 특활비의 사용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국정원장들을 처단하는 죄목이 됐다. 수십 년 관례같이 내려온 정보기관예산의 청와대 지원에 대통령이나 국정원장이나 죄의식조차 없었다.
  
  예전의 다른 대통령들에 비하면 박근혜의 특활비 사용은 너무 초라한 액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에 천문학적 금액의 달러를 빼돌린 정보들이 연기처럼 새어 나오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은 국정원의 수천억을 자기 쌈짓돈 같이 알았다. 재벌들로부터 받은 돈을 비자금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런 거대한 부정에 비하면 박근혜나 그 정권 국정원장들의 특활비 남용은 비교하자면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법정에서 본 그들은 판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죽은 체 하고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침묵하는 그들의 눈 속에서 파란 불이 타오르는 걸 보기도 했다.
  
  “어떻게 국정원장들 중에서 김홍신 의원 같이 법정에서 덤비거나 세상에 대해서 강하게 자기 변론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예전에 보면 운동권 출신들은 재판을 받을 때 검정고무신을 벗어서 판사석에 잘도 던지던데 말이에요. 이 사건은 정치재판이라 어차피 어디로 갈지 아는 사람은 다 알잖아요? 그런데도 판사의 눈치를 보면서 그저 조용히 있자고 그래요. 그게 말이 되나?”
  
  몇 년 전 출마를 했던 전 경찰청장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정치자금을 뇌물로 만들려는 담당 검사와 청와대 민정수석과 내가 싸웠다. 싸움 자체가 변호였다. 어느 순간 전 경찰청장은 자기를 죽이려는 검사와 한 편이 되어 나를 해임시켜 버렸다. 검사에게 고분고분 하면 그가 살려줄 것 같이 착각했던 것이다. 그 경찰청장은 나중에 검사를 고발했다. 내용은 자기를 속여 변호인인 나를 불법으로 해임했다는 것이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마음을 접은 사건이었다. 변호사와 함께 최후진술을 판소리로 한 작가 김홍신의 법정 저항은 보통의 용기가 아니었다.
  
  “그게 갑자기 되는 게 아니에요.”
  김홍신씨의 말이었다.
  
  
[ 2019-07-09, 11: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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