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관계의 미래 지향
일제(日製) 불매운동은 수출로 먹고사는 국제국가가 할 일 아니다

김영환(자유칼럼그룹 블로그)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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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6년 2월 조선이 일본과 ‘병자수호조약[朝日修好條規]'을 체결한 강화도에 독특한 이름의 아파트가 있습니다. 뜻도 모르고 기억하기도 어려운 외래어 홍수 속에서 돋보이는 이름인지라 머리에 각인되었는데 1965년 한일 국교 회복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진 요즘의 양국 관계를 보면서 그 이름 ‘미래지향’을 떠올립니다.
  
  한일 관계는 그간 국내외의 위안부 소녀상 건립,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광개토대왕함의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에 레이더 조사(照射) 논란 등 악재를 차곡차곡 쌓아왔습니다. 대법원이 확정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한일 기본협정과 상충 소지가 있다는 박근혜 정부의 의향대로 미뤘다는 직권 남용 혐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돼 '적폐'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은 못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작년 1인당 GDP는 한국이 3만 1900달러, 일본은 4만 1000달러입니다. 구매력 평가(PPP)로는 거의 차가 없죠. 식민지 지배에 따른 부수적 피해에 대가를 조르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일본은 국교 정상화 당시 한국에 준 청구권 자금 및 유상 원조를 계기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봅니다. 한국은 일본에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총 8억 달러를 1966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에 걸쳐 받았죠. 1965년 한국의 수출액은 1억 7000만 달러였습니다. 일본에게도 한국에 준 돈은 막대한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강제 징용에 보상이 필요하다면 이는 포괄적으로 청구권 자금을 받은 한국 정부의 책임이라는 논리도 당연히 등장하는 것입니다. 강제징용자 배상을 위해 사법부가 관련 일본 기업의 재산을 압류하는 판결을 내리고 이를 현금화하려고 합니다. 과거사는 돈의 문제가 아니죠. 일본은 국교 정상화 당시 개인에 대한 보상금을 정부에 주지 않고 개인에게 직접 지불하겠다는 안을 냈지만 경제개발을 위해 돈이 급했던 정부는 이를 마다하고 일괄해서 받았다고 합니다. 만약 강제징용자의 보상 문제가 대두되었다면 이는 소송으로 할 게 아니라 외교 차원에서 일본과 청구권 협정의 재해석을 논의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었나요? 실제로 일본은 협정 위반이라며 제3국이 참가하는 위원회를 설치하자고 했고 양국이 각각 제3국을 골라 심의위원을 18일까지 선발하게 되어있다고 합니다.
  
  멀쩡하게 수십 년이 지난 사안의 새삼스러운 ‘과거사 파먹기’를 보면서 암담한 생각이 듭니다. 그럼 6·25 남침을 일으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과는 어떻게 화해하며 6·25에 개입해 목전에서 통일을 막은 중국 앞에서 어떻게 ‘중국몽’을 읊조리나? 한 세기에 세 번 싸운 프랑스와 독일은 어떻게 화해했고 태평양전쟁에서 싸운 미국과 일본은 어떻게 최고의 동맹이 되었나? 이들은 모두 천문학적인 인명과 재산피해를 보았습니다.
  
  과거를 파는 것은 국민도 피곤하고 세계 시장을 상대로 싸우는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도 미칠 지경일 겁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다고 호언장담한 김영삼은 중앙청 폭파를 일제 상징 제거로 보았겠지만 그건 깊은 정신적 상흔을 없애는 일이기도 했죠. 일본 관광객이 옛 총독부 앞에서 수다를 떨며 자존심이 넘쳐 사진을 찍는 것도 굴욕이고 조선의 모든 소녀가 군대위안부였던 것처럼 곳곳에 소녀상을 세우는 것도 탐탁한 일이 아닙니다. 김영삼은 일본의 채권이 회수되어 국가 부도를 맞았습니다. 역사가 부끄러우면 정치는 피학 사실을 자랑할 게 아니라 국가 패망의 원인을 깊이 성찰하고 교훈을 얻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최근 오사카 G20 정상회담은 관계 개선에 호기였지만 정상회담은커녕 아베 총리와 8초간의 악수로 끝났습니다. 한국이 징용공 문제에 대한 유효한 타개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끝나자마자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관리 강화)를 발표했습니다. 가장 주목할 일본의 주장은 세계무역기구(WTO)에도 ‘안보문제에 관련된 품목은 수출관리가 가능하게 되어 있다’며 아시아에서 유일한 한국을 31개나 되는 화이트 우방 국가의 지위에서 지운다는 겁니다. 일본의 우익들은 한국과 통화협정(스와프)도 맺지 말라고 주장합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통상산업 장관은 불화수소(에칭 가스) 등 3가지 품목의 수출 규제 강화에 대해 “신뢰관계하에서 수출관리에 노력하는 것이 곤란하게 되었다고 판단했다”면서 “3개 품목 가운데 ‘수출관리를 싸고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하고 있다. 금년 들어 양국 사이에 쌓아온 우호 협력관계에 반하는 한국 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계속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방송에 나온 패널들은 독가스 등 화학무기의 원료로 전환될 수 있는 불화수소 등의 제3국을 통한 북한 유입 가능성을 거론합니다.
  
  일본의 외교청서에서도 한국의 지위는 계속 격하되었죠. 한때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였던 서술이 올해 4월에는 “한국 측의 부정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밝혔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일본인 중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가진 비율은 최저치인 20퍼센트로, 아베의 강제징용자 대응은 60퍼센트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본 축적이 없던 한국은 일본이 준 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 등을 만들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웠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의 성장에는 일본 기술자들의 힘이 컸습니다. 또 일제 불매운동이 나옵니다. 전에도 일본 전범 기업 제품 불매운동을 벌인다면서 스티커를 만들고 요란을 떨다가 흐지부지한 지자체가 있었죠. 중국의 사드 보복에는 찍소리도 못하더니…. 수출로 먹고사는 국제국가가 할 일은 아니죠.
  
  그런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쌀은 불매운동 안 벌이느냐고요. 오늘날 한국인이 즐겨 먹는 고시히카리 쌀은 일본의 농업 연구가들이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것입니다. 한·일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작년 753만 명의 한국인들이 일본에 갔습니다. 선진국이라서 보고, 먹고, 배울 게 많기 때문이죠. 일본에서 작년 294만 명이 한국에 왔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일본 소설은 스테디셀러에 오릅니다. 하시모토 아이가 주연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한국판으로 리메이크되었고 어머니 역은 문소리가 맡았죠. ‘관제 반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반면 ‘청연’이라는 일제하 조선의 여비행사를 그린 영화는 친일 논란 속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장진영은 암으로, 남주인공 김주혁은 재작년에 차 사고로 세상을 떴습니다.
  
  최근 돋보인 것은 거의 일방적인 한국의 매스컴과 달리 역사가 깊은 일본의 언론은 흥분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아사히는 “대한 수출규제 ‘보복’을 즉시 철회하라”, 마이니치는 ‘한국에의 수출규제, 통상국가의 이익을 해친다’, 일본경제는 ‘전 징용공을 둘러싼 대항 조치의 응수를 자제하라’고 사설로 주장했습니다. 물론 ’대한 수출의 엄격화, 부당함을 허락하지 않는 국가의 의사다”라는 산케이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과거를 위해 미래를 희생할 수는 없습니다. 결자해지가 필요하죠. 정부가 국제법상의 명분과 전략에 자신 있으면 밀고 나가고 아니라면 최악의 관계가 고착화하기 전에 개선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침묵 속에 대책 없이 미루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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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 등 역임. 우리 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 2019-07-09, 15: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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