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만드는 사람들
"국회의원 삼백 명중 어떤 사람을 찍어도 그 인물에 대해 일이십 분 동안 막힘없이 줄줄 얘기가 나올 정도의 실력 갖춰야 프로 정치인"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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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일간지의 정치부 기자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법조 출입기자 때 도움을 주고받았던 사이였다. 사무실 아래의 보리굴비집으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다가 호기심으로 물었다.
  
  “법조인을 보다가 정치인들을 만나니까 어때요?”
  “법조인들은 어떤 말을 할 때 장단점과 긍정과 부정적인 면을 얘기하고 나서 자기가 어떤 쪽인가를 말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런데 정치인들을 만나면 자기가 목적으로 하는 곳으로 그냥 일방적으로 가요. 법조인들은 듣는 데 비해 정치인들은 선동적으로 계속 자기 말만 하는 편이에요.”
  
  “정치인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요?”
  “여의도에는 정치꾼들이 득실거려요. 자기네들끼리 프로의 기준이 있더라구요. 그게 뭐냐면 국회의원 삼백 명중 어떤 사람을 찍어도 그 인물에 대해 적어도 일이십 분 동안 막힘없이 줄줄 얘기가 나올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런 말을 했다.
  “여의도에는 보좌관들끼리 모여 만든 회사가 있어요. 거기서 입법 로비를 해주기도 하고 출석해야 할 증인들의 증언날짜를 연기시켜 주기도 하죠. 그렇게 하고 돈을 받아요. 현역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그 회사에 절대적으로 협조하죠. 왜냐하면 자기들도 모시는 영감이 낙선하면 그 회사에 들어가야 할지 모르니까요.”
  
  국회가 있는 여의도는 이 사회 속의 또 하나의 사회였다. 드라마 ‘보좌관’을 보았다. 탤런트 이정재씨가 주인공이 되어 불빛이 비치는 밤의 국회의사당을 보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꿈을 꾸고 있었다. 법의 밥을 먹고 사는 변호사로서 정말 국회는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총을 들고 내전으로 혁명을 할 필요가 없다. 헌법을 개정해 인민민주주의로 하면 사회체제가 바뀌는 것이다. 법의 몇 줄만 고치면 막강한 권력기관들을 없앨 수도 있고 창조할 수도 있다. 세법 중의 세율만 올려도 합법적으로 모든 국민의 재산을 박탈할 수도 있다.
  
  아주 작은 법 하나를 만들어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한 의원이 ‘화장실법’을 제안해 통과시켰다. 그러자 더럽던 전국의 화장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청결함을 자랑하게 됐다. 또 다른 한 의원이 ‘자전거법’을 만들었다. 그 법은 전국의 강가에 쾌적한 자전거길을 만들고 많은 국민을 기쁘게 했다.
  
  어떤 가난한 시인이 임대주택에서 혼자 죽어갈 때 그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거의 무상인 싼 가격에 임대주택에 살게 해 주고 굶어 죽지 않게 해 주고 복지사들이 수시로 와서 몸까지 씻어주는 정말 좋은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 나라의 복지정책에 감사한다고 하면서 죽어 갔다. 복지에 관한 촘촘한 그물망 같은 법이 만들어진 덕분이었다.
  
  파고다 공원 뒷골목과 서울역 뒤의 노숙자 합숙소를 가 보았다. 내가 어릴 적 보았던 쓰레기통의 썩은 음식을 먹는 거지가 들끓는 세상이 아니었다. 신문방송을 보면 국회의원들은 진흙밭의 개싸움을 하는 악과 탐욕의 상징같이 표현되기도 한다. 그들을 비난하지 말고 삼백 명의 경쟁하는 모범생으로 만들어 좋은 법을 만든 사람은 좋은 점수를 주어 또 뽑아주고 게으르고 욕심 많은 사람은 국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 본다.
  
  
[ 2019-08-10, 20: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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