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을 받아내는 요강
법원을 다녀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는데 아내가 쓸쓸한 표정이 되어 내게 말했다.
“길을 묻는 사람이 있어서 옆에서 설명을 해 줬는데 그 젊은 사람의 얼굴에서 묘하게 무시하는 게 느껴졌어. 이제 좋은 일도 한발 물러서야 할 때가 된 거 같아.”
젊은 시절 만나는 사람마다 아내에게 활짝 미소를 짓고 도우려고 했다. 세월이 가고 이제 아내는 윤기 없는 백발에 고왔던 피부도 탄력을 잃고 늘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아침에 법원에 갔다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 나이를 먹으니까 이제는 모두가 싫어하는 것 같더라구.”
오전에 법원에 갔었다. 법원 직원의 표정에서 마치 파충류라도 보는 듯한 거부감을 보았다. 늙음이란 그런 것이다. 젊은 시절 우리들도 그랬다. 얼굴에 잔뜩 검버섯이 끼고 손등이 거북이 등껍질 같은 노인들을 보면 추한 느낌이 들곤 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젊음이 어느 순간 소리도 없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나와 아내가 그런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이제부터 어둠이 물들기 시작하는 이 황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사실상 용도가 끝난 그릇같이 찬장 귀퉁이에서 빈 공간만 차지하고 있어야 할까?”
내가 혼잣말 같이 내뱉었다. 인생을 그릇에 비유하니까 40년 저쪽의 눈덮인 전방의 광막한 들판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장교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고시에 실패하고 직업장교로 입대했다. 속칭 돈이나 백이 없어 최전방에 배치됐다. 그런 시절이었다. 밤새 순찰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왔다. 새벽 여명과 함께 허무가 밀물같이 가슴으로 스며들어왔다. 그때 부하인 하사관이 교회에서 보낸 전도용 성경을 책상 위에 놓고 갔다. 얇은 성경의 종이로 담배를 말아 피면 좋다고 했다.
호기심에 우연히 한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여러 종류의 그릇이 등장하는 비유가 있었다. 귀하게 쓰이는 도기(陶器)도 있고 막 쓰는 질그릇도 있었다. 큰 그릇도 있고 간장종지 같은 작은 그릇도 있었다. 자기가 어떤 그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조물주인 도공의 마음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니 어떤 그릇으로 세상에 나왔는지 탓하지 말고 그냥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살라는 것이었다. 그걸 보면서 내 자신은 투박한 뚝배기신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싸구려 선술집 선반에 있다가 배고픈 사람의 허기를 채워주는 국밥그릇 역할에나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 힘겹게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뒷골목에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리고 30여 년 시간의 강을 흘러왔다. 최선을 다하면 뚝배기는 벗어나 소품인 놋그릇 정도는 될 수 있겠지 하고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새 끝이 보이는 세월이 왔다. 앞에 앉아 있던 아내가 뜬금없이 한 마디 내뱉었다.
“아니야, 깨진 그릇이나 쓰지 않는 그릇보다는 요강이라도 되는 게 나을 것 같아.”
“뭐 이제 오줌이나 받는 요강이 되라고?”
“그래, 그게 뭐 어때서? 그래도 쓰임을 받으면 좋은 거잖아?”
백발인 아내가 오늘은 내게 요강이 되라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나의 영혼에 강한 울림을 줬다. 깨진 그릇 같은 궁색한 늙은이보다는 그래도 역할을 맡은 요강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위치를 파악하고 얼른 낮아지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요강이라도 되는 게 나을 것 같아”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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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24, 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