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꾼을 만난 거리 변호사

의뢰인들이 필요로 하는 건 대부분 불법이고 탈법이었다. 가을 햇볕이 따뜻한 목요일 점심시간이다. 탑골 공원 뒤쪽의 무료급식소 앞에는 비빔밥 한 그릇을 얻어먹기 위해 노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 나는 그 옆의 길바닥에 접이식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옆에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하는 삼십대의 김 변호사가 앉아 있다.

30년 전 처음 변호사를 시작할 무렵 법원 정문 앞에 있는 구두닦이 박스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사실 변호사는 화려하고 넓은 사무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의뢰인의 얘기를 듣고 글을 쓰고 법정에 나가 논리를 엮은 변론을 하는 거였다. 화려한 인테리어나 권위적인 응접세트는 높은 값을 받으려는 소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을 파는 점쟁이처럼 지나가다 부담 없이 변호사를 만나면 좋을 것 같았다. 로스쿨을 나온 젊은 김 변호사가 그렇게 거리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를 응원하기 위해 이따금씩 옆에서 동행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노인들의 정서는 노인이 된 내가 공감하기 쉬울 것 같았다. 우리 두 명이 나란히 앉은 자리로 칠십대쯤의 노인이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무슨 일이시죠? 상담을 하시려구요?”
김 변호사가 노인을 쳐다보며 상냥하게 물었다.

“아니요, 천원만 줄래요? 커피 사먹게.”
“무료로 상담은 해 드리는데 돈은 못 드려요.”

김 변호사가 웃으면서 거절한다. 이 사회에서 밀려나온 궁상스런 노인들이 모이는 탑골공원 뒷골목은 마치 영화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세트 같은 느낌도 든다. 싸구려 이발소, 국밥집, 고물상들이 보인다. 상자를 주워 카트 위에 포갠 허리 굽은 노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갑자기 우리가 앉은 텐트 앞으로 검은 선글래스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옆의 ‘무료변호’라고 분필로 적혀 있는 작은 칠판을 보면서 물었다.

“여기서 법률적인 걸 물어봐도 됩니까?”
속칭 깍두기머리라고 스포츠맨 같이 바짝 짧게 깎은 스타일이다.

“그러세요.”
젊은 김변호사가 서글서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제 신상을 밝혀야 됩니까?”
검은 선글래스가 물었다. 선글래스를 그대로 쓴 채였다.

“굳이 밝히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 변호사의 대답이다. 나는 옆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는 눈치다.

“사실은 제가 사채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주(錢主)가 따로 있어요. 그 사람들한테 돈을 받아서 빌려주는 거죠. 그런데 전주의 돈을 전부 갚지 못하고 지금 도망 다니고 있어요.전주가 저를 횡령죄로 고소한 것 같아요. 검사에게 가서 조사를 받을 때 장부를 보고 다른 범죄 사실도 털면 어떻게 하죠?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하죠?”

말하는 그의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유난히 하얀 얼굴에 검은 눈썹이다. 숨긴 눈빛이 날카로운 것 같다. 그의 손을 보았다. 예술가 같은 길다란 손가락이었다. 변호사 생활 30년 동안 많은 살인범들을 만나 보았다. 살인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험악한 인상에 우람한 근육질의 덩치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연약해 보이는 하얀 얼굴에 길다란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그에게서도 범죄의 냄새가 났다. 그는 젊은 김 변호사에게 수사와 법망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치밀하게 묻고 있었다. 변호사를 시작하는 김 변호사는 모범생같이 그의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내가 그들의 대화 중간에 끼어들었다. 검은 선글래스가 나를 쳐다보았다.

“저희가 거리의 변호사로 나온 건 이 사회에 향기를 뿜기 위한 겁니다.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까 죄를 지시고 어떻게 하든지 빠져나가는 방법만 물어보시는데 그래서 되겠습니까? 변호사가 나쁜 걸 가르쳐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옳지 않은 건 묻지 마세요.”
순간 그가 당황한 표정이었다. 내가 김 변호사를 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변호사는 법을 빠져나가는 술수를 알려주는 게 아닙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억울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 거죠.”
순간 김변호사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비쳤다.

“죄송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김 변호사가 사과했다. 앞의 선글래스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저도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는 일어서서 갔다. 의뢰인들이 필요로 하는 건 대부분 불법이고 탈법이었다. 성직자나 정의를 외치던 사람도 가족이 사고를 내면 예외적인 변칙을 희망했다. 불법에 당당하게 몸으로 맞서 목숨을 바친 소크라테스나 예수는 무엇을 추구했을까.

[출처] 사채꾼을 만난 거리변호사|작성자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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