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심부름

“칠십년 전 시집와서 살 때 골목길 앞집 꼬마가 생각나.한번 만나 맛있는 것 사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했어. 엄마가 죽은 다음에 네가 대신 찾아가 맛있는 걸 사주던가 밥값을 전해 줘.”

조용한 시간이면 변호사 수첩을 뒤적인다. 평생 사용해 온 수첩 속은 악취 나는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 의뢰인들의 분노와 증오, 세상에 대한 원망, 거짓말 합리화가 켜켜이 층을 이루며 쌓여 있다. 그런 속에서 금싸라기 같은 한 마디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불의 정화(淨化)를 이겨내고 남은 반짝이는 순금 같은 말이다. 수첩 사이에 이렇게 한 마디가 메모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예수가 오천 명의 배고픈 사람을 먹인 것 같이 변호사가 자기가 벌어서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다면 그런 성공이 어디 있을까요?’

이웃의 법률사무소를 하는 칠십대 오 변호사가 무심코 내게 던졌던 한 마디다. 그 말이 나의 가슴 속 강물에 동그란 파문을 일으켰었나 보다. 오 변호사 부부는 아내와 오래된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다. 판사와 교수로 평생을 학(鶴)같이 살아온 분이다. 그 분 부부와 종종 건물 지하의 작은 밥집에서 소박한 음식을 나눈다. 인심 좋은 여주인이 따뜻한 밥과 김치 그리고 국을 파는 백반집이다.

그의 심부름을 하느라고 눈 내리던 겨울밤 한번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암을 앓던 시인(詩人)이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죽어가는 걸 보고 변협신문에 작은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글을 본 선배 오 변호사는 내게 이백만 원을 보내면서 시인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성경 속의 자캐오처럼 번 돈을 내놓겠다는 분이다. 그 돈은 외로운 시인에게 겨울밤 구들목 같은 따뜻한 사랑이었다. 살다보면 들꽃 같은 그런 작은 사랑들이 훨씬 아름다운 것 같다.

금년에 또 하나 심부름을 한 일이 있다. 지난해 아흔 살인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쯤 어머니는 돌아가신 후 아들인 내가 할 작은 일들까지 자상하게 챙기며 지시했다. 영정사진은 어떤 걸 쓰고 초상이 끝난 후 문상객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하라고까지 했다. 그리고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이런 말을 했다.

“칠십년 전 시집와서 살 때 골목길 앞집 꼬마가 생각나. 맨날 보면서 정이 들었어. 한번 만나 맛있는 것 사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했어. 엄마가 죽은 다음에 네가 대신 찾아가 맛있는 걸 사주던가 밥값을 전해 줘.”

어머니의 독특한 부탁이었다. 일 년 만에 꼬마였었다는 그 분을 만났다. 이미 칠십대 말의 노인이었다. 내가 어머니의 말을 전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인 돈이 봉투를 전했다. 노인은 어쩔 줄을 몰랐다.

“뒷집 아주머니는 내 아들을 살려준 은인이었어요. 내가 낮에 일하러 나간 사이에 혼자 있던 다섯 살 아들이 담장 위에서 놀다가 녹슨 쇠꼬챙이에 손바닥이 뚫려 매달려 있었어요. 그걸 아주머니가 발견하고 피 흘리는 아이를 엎고 동네의원까지 가서 살려주셨죠. 내가 오십 먹은 아들보고 지금까지 넌 뒷집 아주머니가 아니면 죽었을 거야라고 해요.”

어머니에게 앞집 꼬마였던 그 노인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영혼의 강물 속에 잔잔한 파동이 일어나 점차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전한 작은 돈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이웃과 나누는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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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스 2017-11-14 오후 8:54

    만세! 대한민국 만세! 좋은 사람 많이 사는 우리나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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