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뒤에 태극기와 성조기는 왜 죽 달고 다녀? 박근혜 대통령 석방시키려고 그러는 거야?”…“아니, 내가 국제연합을 만들었잖아? 그거 몰라?”
무료급식소 옆 담 아래서 그곳에 모여든 궁핍한 노인들에게 추운 겨울을 견딜 두툼한 속을 넣은 바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줄을 선 노인들이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바지를 받아 갔다.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X팔, 왜 스몰 사이즈가 없어? 나는 그게 필요하단 말이야.”
노인의 입에서 욕이 쏟아져 나왔다.
“욕은 하지 마세요, 왜 욕을 하세요?”
옷을 나누어 주던 남자가 말을 했다. 몇 걸음 떨어져서 화난 눈으로 쳐다보는 바지를 든 노인의 몸은 온통 분노로 차 있는 것 같았다. 사라졌던 그 노인이 잠시 후 박스 옆으로 다가와 속을 뒤집은 바지를 보여주며 소리쳤다.
“이거 봐, 여기 바지 속에 검은 점이 있어. 이 따위를 입으라고 주는 거야? 나 원 더러워서, 안 입어, 도로 가져.”
그가 바지를 박스에 확 던지고 가버렸다. 늙은 속에서 타오르는 원인 모를 분노와 증오라는 불에 고통스럽게 타고 있었다. 인생의 밤을 맞은 노년의 군상들이 더럽고 우중충한 뒷골목을 흐르고 있었다. 급식소 앞에서 김 변호사와 나는 그런 모습을 망연히 보고 있다. 손으로 바퀴를 굴리며 휠체어를 탄 남자가 급식소 앞에 있는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휠체어의 뒤에는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가 여러 장 달려 있다. 휠체어의 발 받침대 위에는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그의 벗은 발이 보였다.
“여기 급식소지? 밥 좀 줘.”
휠체어에 앉은 남자는 내가 급식소에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밥시간이 끝났는데 대신 이걸로 짜장면 사먹어.”
내가 말하면서 천 원권 지폐 두 장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뒷골목에서는 이천 원이면 시뻘건 국물이 끓는 돼지국이나 국수를 사먹을 수 있다. 그가 내 옆에 서 있는 거리변호사 간판을 봤다.
“당신 변호사야?”
“맞아.”
“김대중 비서하던 박주선이를 알아?”
휠체어의 남자가 뜬금없이 물었다.
“알지.”
“내가 박주선이하고 또다른 변호사 아홉 명 그리고 법무사 아홉 명 노무사 아홉 명을 뽑아서 요 앞에 종합법률사무소를 차릴 생각이야. 거기에 들어와. 내가 앞으로 그 사무실을 키워서 총리를 하는 이낙연이를 대통령을 만들려고 해. 어떻게 불쌍하게 이런 데서 변호사를 하누?”
살짝 맛이 간 것 같았다. 그의 정신 사이클에 맞추기 시작한다.
“취직시켜줘서 고마워, 그런데 그 뒤에 태극기와 성조기는 왜 죽 달고 다녀? 박근혜 대통령 석방시키려고 그러는 거야?”
“아니, 내가 국제연합을 만들었잖아? 그거 몰라?”
“아, 그렇구나.”
나는 그의 퉁퉁 부은 발쪽으로 시선이 갔다. 돌보아 주는 사람 없는 불쌍한 인생 같았다.
“이 발은 왜 이렇게 다쳤어?”
내가 물었다.
“바퀴벌레한테 물렸어.”
“바퀴벌레가 물어? 난 물린 적 없는데?”
“아니야, 나는 물렸어. 그래서 아퍼.”
“그럼 이거 신고 다녀.”
나는 그의 무릎에 가지고 있던 겨울 면양말을 놓아주면서 말했다.
“변호사면 나 명함 한 장 줘.”
“명함 지금 없어. 빨리 가서 밥 사먹어. 배고프잖아? 나도 일해야 돼. 내가 휠체어 밥집까지 밀어줄까?”
내가 일어서서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으려고 하자 그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린다.
“아니야 내가 혼자서 갈 수 있어.”
그가 다시 성조기와 태극기를 휘날리며 골목길을 가고 있었다. 공원의 뒷골목에는 늙고 병들고 외로운 노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고통의 긴 터널을 거쳐 그 끝에 있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변호사를 시작하는 젊은 김 변호사가 말한다.
“여기 있어 보니까 노인들 사이에 수시로 고성이 오가요. 요즈음 그렇게 소리치면서 싸우는 거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인데 말이죠. 분노들이 조절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게 말이야, 속에 분노와 회한과 원망이 가득 차 죽기 전에 이미 불타고 있는 것 같아. 속에서 타는 꺼지지 않는 그런 불이 지옥의 고통을 먼저 주는 게 아닐까? 그럴 듯한 경전 속의 점잖은 문장을 보는 것보다 길바닥에서 늙고 병들고 아픈 모습을 우리가 직접 현장에서 보고 배우잖아? 우리나 저 분들의 종착역은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가 되는 거고 말이야. 이 길바닥 현장을 우리의 일터자 삶터고 수행터로 여기자고.”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참 신문에서 재벌 3세가 우리나라 최고 로펌의 변호사 열 명을 술집에서 군기잡고 때리고 여성변호사는 머리끄덩이를 끌고 행패를 부린 거 기사 보셨어요? 저 같은 길바닥 변호사는 정말 이해가 안가요. 자기 자신이 얻어맞으면서 저항도 못하고 정당한 항변도 못하는 그런 변호사들이 어떻게 남을 변호할 수 있는 겁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이라고 하는 거기서 그 사람들은 고르고 고른 최고의 엘리트들 아닙니까?”
“자네는 룸 쌀롱에서 화려한 옷을 걸치고 샤넬향수 냄새를 풍기는 접대부하고 쓰레기장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소박한 수녀의 악취를 어떻게 평가하나? 나는 진짜 향기는 수녀의 옷에 묻은 쓰레기 냄새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변호사도 진짜 좋은 향기는 최고 로펌에서 조화 같은 변호사들한테서 나는 게 아니라 이런 길바닥에 있는 자네 같은 변호사한테서 앞으로 뿜어져 나올 거야. 나는 말이야.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저 노인들이 공원 하늘에 떠 있는 맑고 투명한 달을 보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만.”
길거리에 폈던 전(廛)을 접고 우리는 잠시 후 길 건너에 있는 단팥죽 집을 향했다.
“X팔, 왜 스몰 사이즈가 없어?"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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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24, 09:50












수재민에게 라면을 가저다 줬더니
고맙다는 놈은 없고
아니 장작도 없는대 생라면 먹으라는거여 뭐여
하는게 우리수준입니다
엄상익 변호사도 이제 철이 좀 드는가 봅니다.
그러면,
박 시장 아들의 병역의혹에서도 정의의 편에 서야 하지 않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