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칠십인데도 밥도 여기 탑골공원 뒷골목에 와서 2천 원짜리 국밥을 먹어야 하고 이발도 일부러 전철 타고 여기 와서 3천 원짜리 하는 게 버릇이 됐어요."
거리의 변호사를 마감할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옆에 앉은 젊은 김 변호사가 나를 보면서 말한다.
“지난주에는 너무 추웠어요. 여기서 벌벌 떨다가 무료급식소에 잠시 들어가 몸을 녹이고 또 다시 나오곤 했어요.”
“그랬어? 고생했네.”
지난주 재판이 있어서 거리로 나오지 못했다.
“이제 파장시간이니 슬슬 전을 걷자.”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김 변호사에게 말했다. 그때 칠십대쯤 되는 영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막 전을 걷을라고 했는데 운 좋으시네. 합시다.”
내가 화끈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운이 좋은가봐”
영감이 씩 웃으면서 앞의 등 없는 나무의자에 앉았다.
“그래 뭘 물으실려구?”
나는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 어조에 다정함을 실어 보낸다.
“사실은 내가 집이 한 채 있어요. 아들이 셋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나누어줄지 몰라서 그래요. 그걸 물어보고 싶어요.”
“그건 말이죠. 민법상…”
옆에 앉은 젊은 김 변호사가 법에 정해 있는 상속분을 자판기의 물품같이 바로 대답해 주고 있다. 나는 영감의 얼굴을 가만히 살피고 있다. 골 깊은 주름 사이에 험하고 거친 세월이 스며있는 것 같았다. 김 변호사의 대답이 끝난 후에 내가 영감에게 물었다.
“그 집을 어떻게 마련했어요?”
“평생 뼈빠지게 일해서 샀죠.”
“그렇게 일해서 산 집이면 누구 거죠?”
“내 거요.”
“그러면 자식한테 주지 말고 팔아서 잘 먹고 잘 입고 살아보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게 어떨까요? 자기가 벌었으니까 자기가 써야지. 쓰고 남은 걸 저승에 가지고 갈 수 없으니까 자식에게 상속하는 거죠.”
“내가 나이가 칠십인데도 워낙 천하게 살아서 그런지 밥도 여기 탑골공원 뒷골목에 와서 2천 원짜리 국밥을 먹어야 하고 이발도 일부러 전철타고 여기 와서 3천 원짜리 이발을 하는 게 버릇이 됐어요. 어쩌다 극장구경을 할 때도 여기 낙원동에 있는 2천 원짜리 실버극장을 가요. 그걸 벗어나지 못하겠어요. 비싼 음식점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겠어.”
그의 말에는 한 홉의 거짓말도 섞이지 않은 것 같았다.
“죽을 때까지 그런 굴레에 잡혀있을 거예요? 한번 그 굴레를 벗어나려고 노력해 봐요.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도 않잖아요?”
“나도 그런 생각을 해 보는데 우리 마누라쟁이 때문에도 안 돼. 집 한 채 남겨 아들에게 줘야 한대.”
“줏대 있게 그걸 이겨야죠.”
“나는 못 이겨.”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그는 답을 알고 찾아와 물었는지도 모른다.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돈을 버는 법은 배워도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돈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돈은 뺏는 수도 있고 얻는 수도 있고 버는 수도 있다. 강도나 권력의 뇌물은 뺏는 것이고 거지 근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냥 얻으려고 한다. 일의 대가만이 돈을 번다는 표현이 맞는 게 아닐까. 벌면 얼마나 벌어야 할까. 카알라일은 ‘속인의 속박을 면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자유를 얻을 정도면 된다는 뜻 같다. 그렇지만 자유를 얻으려고 돈을 벌다가 자칫하면 돈의 노예가 될 뻔하기도 했다. 그리고 돈은 쓴 만큼이 진짜 자기 것이라는 생각이다.
“천하게 사는 게 버릇이 됐어요.”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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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09, 13:03












참 성경이 따로 없네요. 감사한 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