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성(天才性)과 사회성

“나는 고향에 내려가서 마음의 병을 고쳐보려고 했지. 가서 보니까 고향에서 공부도 못하고 껄렁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행복하게 사는 거야."

은행에 입사한 신입 직원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연수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사업자 역할을 맡은 팀은 대출을 얻기 위해 완벽한 사업계획서를 만들려고 애를 썼다. 은행의 대출담당 역할을 맡은 팀은 사업계획서를 철저히 검토해 대출을 승인할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실전게임이었다. 리더십이 있는 두 팀의 팀장들은 최고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 행원이었다. 능력과 자존심이 부딪쳐 불꽃을 일으키는 금융연수원 실습과정이었다.

사업가 팀의 대표가 임원들과 공채 동기생들이 지켜보는 연수원 강당 위에서 사업계획서를 보이며 일목요연하게 이익이 난 상황을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그런 건실한 기업에 대해 대출을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은행의 대출담당 역할을 맡은 팀장이 일어나 사업계획서에 첨부된 상업장부들 속에 숨어있는 분식회계의 흔적을 지적하고는 대출을 거절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일본의 신입 은행원의 연수과정을 소개하는 한 드라마 속의 장면이었다. 그렇게 은행원이 된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을 해 가면서 임원이 되기도 하고 행장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갔던 친구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지점장이나 행장 한국은행의 부총재 금융그룹의 회장 등 금융계에서 여러 직책을 거치고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지점장은 지점장대로 행장은 행장대로 회장은 회장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대학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갔었던 친구와 집 근처의 작은 중국음식점에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정담을 나눈 적이 있다. 지방도시에서 수재로 소문났던 그는 서울의 명문고로 진학했다. 고교 시절 그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그의 앞에서 동급생도 기가 죽어 움찔할 정도로 논리에 빈틈이 없고 운동도 잘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가 당연히 금융계의 거물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날아오르지 못하고 도중에 날개가 꺾인 것 같았다. 그가 나에게 회한(悔恨)을 털어놓았다.

“따지고 보면 난 인생을 실패한 건지도 몰라. 처음엔 은행에서 잘 나갔어. 좋은 부서에 배치받았고 해외연수도 제일 먼저 나갔어. 난 일에 최선을 다했어. 모든 걸 나보다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개인생활은 희생했어. 리더 역할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어. 그런데 결정적인 흠은 철저히 기는 부하 노릇을 제대로 할 줄을 몰랐던 거야. 거기서 난 실패했어. 내가 공채로 들어갔고 잘못한 게 없는데도 외환위기 때 정치적 인사를 하는 명단에 나를 슬쩍 끼워 나가라는 명령을 받은 거야.”

너무 똑똑한 엘리트를 세상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회사의 요구는 천재성보다는 사회성인지도 모른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나는 고향에 내려가서 마음의 병을 고쳐보려고 했지. 나름대로 열심히 수양을 했어. 그런데 가서 보니까 고향에서 공부도 못하고 껄렁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행복하게 사는 거야. 낚시를 가서 물고기 잡아 매운탕을 끓이면 친구들이 모두 우르르 몰려들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지내. 평생 물려받은 자기 밭에서 농사들을 지었으니까 출세에 대한 욕망들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어. 가지고 있던 땅값이 올라서 그런지 시골 친구들이 철따라 해외에 골프여행도 가고 하는데 나는 거기에 도저히 다시 낄 수가 없었어. 어릴 적 나는 공부를 잘해 서울의 명문학교에 진학했으니까 출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았는데 이게 도대체 뭔가 싶더라구. 그래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 뭔가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는 일을 찾는 중이야.”

그가 은행장이 되었더라면 과연 출세한 것이 되고 성공일까. 그리고 행복했을까. 한 은행장의 변호를 맡은 일이 있었다. 은행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밑에 있는 몇 개의 지방은행은 퇴출될 운명에서 그는 뇌물공여죄로 구속이 됐었다. 그가 감옥 안에서 이렇게 살아온 과정을 털어놓았다.

“행원으로 들어와 평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행장이 됐죠. 은행장 임기 3년을 하려면 정치권이나 높은 관료에게 돈을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요구하는 액수에 못 미치면 도중에 무슨 트집을 잡아서든지 나가라고 하죠. 전국의 은행장 인사를 그렇게 하고 있어요. 선거 때가 되면 정치자금을 만들어 바쳐야 했습니다. 지점마다 할당액을 정해서 비자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정치자금을 대도 반대파가 잡으면 저같이 죽게 되는 겁니다. 정치권에서 누구에게 대출해 주라고 명령하면 뻔히 악성채권이 될 줄 알고도 대출해 줘야 합니다. 국민이 그 부담을 지고 자기네들끼리 나누어 먹는 거죠.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악성채권을 트집 잡아 은행을 없애버리기도 하구 말이죠. 저는 그렇게 죽어야 하는 운명이 됐습니다.”

그 후 어느 날 그는 감옥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과연 그는 출세하고 성공했던 것일까. 어느 조직에서건 엘리트는 자존심이 강하다. 부정한 짓을 하지 못한다. 상사에게 철저히 무릎 꿇지 않고 승진 청탁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삼류 인생은 그렇지 않다. 간이고 쓸개고 빼놓고 비굴할 정도로 고개를 숙인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탁을 하고 다닌다. 결국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밀어내게 되어 있는 게 인간사인 것 같다. 각 조직에서 출세하려고 변질되는 엘리트를 봤다. 그건 더 비참했다. 영혼이 없는 인공지능으로 변하거나 잘 길들여진 개가 되는 것 같았다. 그건 삼류 인생보다 더 못한 사류 인생이었다. 공부 잘하는 자식들에게 출세보다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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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팜파 2017-12-15 오후 2:04

    정치와 정치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줄 몰랏습니다.
    저도 처음 은행에 들어갔다가 얼마 후 나와서 신학을 하고 지금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육적으로는 많이 고되기도 하고 영적으로 부족하지만
    구원의 은혜와 영혼구원의 사명에 날마다 기뻐하며 충성하고 있습니다.
    인도하신 신의 은혜가 감사한것 같습니다.

  • 사과 2017-12-14 오후 9:00

    이나라는 유사이래 강대국 사이에 눈치밥을 먹고 이여온 민족이라 미국이나 유럽 처럼 눈치 안보고 사는 민족이 되기는 아마도 요원 할지도 모릅니다 정치리더 들도 지금 하는 짓거리들을 보십시요 저런 수모를 받아도 아무렇지 않게 변명만 하고 있잖아요 민족성 고치는거 쉽게 되나요

  • 이중건 2017-12-14 오후 2:25

    그래야 하는데 세상이 따라줘야 하는디
    그런 날 그런 사회가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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